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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김현임 칼럼...우리가 어제

by 호호^.^아줌마 2009. 7. 5.

 

우리가 어제

 

 

 

중국의 3대 기서(奇書)는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기괴한 것으로 치자면 단연 으뜸인 것이 ‘봉신연의’라고 한다.

 

관우, 악비처럼 범인(凡人)에서 출발하여 후세인들의 추앙으로 무릇 신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 한 둘이던가. 3천 년 전, 장차 중국의 신으로 봉해질 운명으로 타고난 영웅들, 상인(商人)이 장사꾼을 지칭하는 용어로 오를 만큼 상나라 백성들의 거간솜씨는 뛰어났다고 한다.

 

그 상나라의 폭군 주왕을 멸하는 혁명전쟁에서 수많은 인걸들이 펼치는, 바로 신이 되기 위해 한번은 죽어야하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봉신연의다.

 

어린 시절, 이야기 솜씨 뛰어난 큰고모님이 오시면 나는 밤이 기다려졌다. 바람에 몸 뒤채는 오동나무의 신음과 유리창을 기웃대는 음산한 달빛을 배경 삼아 듣던 모골송연한 귀신이야기에 대한 기대였다.

 

어디 그 뿐이랴. 이윤기 씨가 쓴 ‘그리이스, 로마 신화’를 접한 후부터 그의 이름이 붙은 책이라면 망설이지 않는 게 요즘의 나이니  유난스런 고사취향의 편벽증이다.

 

오늘도 나는 만사 제쳐두고 옛 설화 속을 헤맨다. 천년 묵은 여우가 변한 달기와 그녀에 빠져 포악한 왕으로 전락한 주왕, 그리고 난세에 어김없이 등장한다는 영웅 강자아와, 백읍고와 희창 부자의 이야기 속에서 허우적이는 것이다.

 

주색에 빠진 왕에게 충간을 하다가 7년 동안 유리성에 갇히게 된 아버지 희창이다. 부친을 구하기 위해 참모들의 간곡한 만류도 뿌리친 백읍고. 하지만 요녀 달기의 모함으로 거사는 실패로 돌아간다. 자신의 아들을 갈아 끓인 죽, 그러나 희창은 대의를 위해 단숨에 마신다.

 

이후 얼개 복잡하게 돌아가는 이야기는 다 생략하자. 다만 이 아침에 내게 딱 걸린 것은 ‘사백후 희창이 강자아를 만난 것은 주나라 800년의 번영을 얻은 것’이라는 이 대목이다.

 

옷자락 한 번 스침도 겁의 인연이라 했다. 역사 속 아름다운 가연들, 악연들은 천추만대에 이르도록 인류에게 회자되며 그 명맥이 이어진다. 나이가 들수록 일거수일투족마다 추억이 하나씩 껴들어 손사래에 걸리고 발치에 채인다던가. 하여 오래오래 마음 밭에 밟히는 어제려니 그 어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어제 우리는 누구를 만났던가? 누군가를 향한 아련한 그리움도 마음의 재산일 터. 낡은 일기장의 문구와 같은 부끄러운 만남들, 지우고 싶은 페이지는 또 얼마나 많은가. 긴 기다림 끝 단 한 번 만남으로 800년 주나라 번영을 일궜다는 설화 속 인연, 그 묘사 한 줄이 가슴에 턱 걸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