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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김현임 칼럼 '잃음과 잊음에'

by 호호^.^아줌마 2009. 8. 28.

  

 잃음과 잊음에


 

‘뙤약볕에서도 그의 쓸쓸함은 한기가 들 정도다.’

이는 ‘텅 빈 공간, 그 쓸쓸함에 대하여’란 제목이 붙은 미술 전람회 소개기사의 첫 문장이다.

 

유난히 햇살 뜨겁던 날 치러진 국장, 큰 어른의 영결식 후유증인가. 8월 염천에 불현듯 돋는 소름이다. 떠난 분이 남긴 빈자리의 불안과 적막감에 텅 빈 회랑을 쓸쓸히 배회하는 바람처럼 헛헛하다.  

 

구름 떠난 하늘 빈자리  

바람 떠난 숲의 빈자리 

꽃 져버린 들의 빈자리 

너 가버린 내 맘의 빈자리


오래 전 만나 나의 애창곡이 된 이 노래의 작사자가 점층법 표현 중 가장 마지막에 사람을 둔 이유가 뭘까. 구름도, 바람도, 꽃도 머지않아 뭉게뭉게 다시 피어오르고 산들산들 푸른 나무 건드리며 상큼하게 불어오며 꽃 또한 절기 맞춰 벙싯벙싯 피어나리라. 하지만 눈 사무치게 그리운 이는 결코 다시 올 수 없다는 안타까움 때문 아닐까.

 

누가 말했나. 세월이 우리에게 주는 유일하게 아름다운 상처가 그리움이며 사람의 마음은 과거의 경험이 가득 찬 거대한 도서관이니 그곳의 한 칸을 차지한 우리의 지독한 슬픔도 결국 아름다운 목록 중 하나라고. 지만 이 말들도 큰 위로가 되지 못했다. 이 세상 망연한 것 중 가장 부피 큰 사람 잃음의 후유증을 혹독히 앓으면서 곰곰 생각해 본다. 잃음과 잊음에 대하여.

 

천하에는 원만한 일이 없다. 따라서 결함이 일상이다. 천하에는 이로운 일이 없다. 따라서 손해가 일상이다. 이런 사실을 알아채는 것이 우리 생의 완성 단계란다. 소중한 무엇을 잃는다는 것, 망실 또한 우리의 일상이다.

 

다행히 우리에겐 그 누구도 영원히 훔쳐갈 수 없는 완벽한 보완장치를 갖춘 기억이라는 창고가 있다. 그 속에서 여전히 빛을 발하는 그리움의 실체들을 여느 보석에 비할까.

 

누군가에게 잃어버린 존재가 되는 건 두렵지 않다. 종착은 동시에 시발이려니 졸지에 놓쳐버린 그의 손으로 비로소 시작되는 그 향한 간절한 그리움이다.

 

잎사귀 동그랗게 파먹은 벌레의 흔적도 따지고 보면 무지렁이 벌레가 제 힘을 다해 한 세상 깊이 통찰했다는 증거라 했다. 그 분 남기신 자취 새삼 눈부시다. 바라건 데 남은 생 그저그저 살아가지 말자, 지상의 어느 것치고 영원한 것 있던가.

 

언젠가 잃어질 나라는 존재가 빛나는 보석이길 바라겠는가. 다만 진저리 치며 누군가의 기억에서 떨치고 싶은, 잃음과 동시에 서둘러 잊고 싶은 이가 되지 말기를 기원해 본다.

 

* 지금 흐르는 노래는 필자 김현임 씨가 즐겨듣는다는 최백호의 '빈자리'라는 노랩니다.

음반 취입 연대별로 다른 맛을 느끼게 합니다. 뒤로 갈 수록 더 아련한 맛이 납니다.   

병원에 입원해 계신중에도 글을 쓰신 투혼, 아무도 못 말립니다

하필 오른손을 다쳐 깁스를 한 상태에서 왼손 검지손가락으로 이 글을 완성했다니...

이 좋은 가을날의 시작을 병원에서 보내셔야 하는 사정이 딱합니다만,

생전 처음 해보는 입원생활이시라니 이 나름 작가의 글 소재로 남겠지요.

김현임 선생님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