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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상식

비오는 수요일에 빨간 장미가 생각나는 과학적인 이유

by 호호^.^아줌마 2010. 1. 27.

 

 왜 사람들은 사랑을 고백할 때

일생에 도움 안 되는 꽃다발 선물 공세를 취하는 걸까?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정재승 교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신이 처음 장미를 만들었을 때 ‘사랑의 사자’ 큐피드는 이 아름다운 꽃을 보자마자 반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입맞춤을 하려고 입술을 살포시 꽃에 가져갔다.

 

그러자 꽃 속에 있던 벌이 깜짝 놀라 자신의 침으로 큐피드의 입술을 콕 쏘고 말았다.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여신 비너스는 벌에 쏘여 아파하는 큐피드가 안쓰러워 벌을 잡아 침을 빼낸 뒤 장미 줄기에 침을 꽂아두었다. 이것이 장미 가시의 신화적 유래다.


이처럼 장미의 가시는 나도 모르게 향기를 맡고 싶고 입맞춤을 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상징하다. 가시가 돋친 꽃이기에 그것을 얻었을 때 더욱 기쁜 것 또한 장미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아마존 돌고래의 구애 물건


장미에 얽힌 신화에 따르면, 장미꽃 색은 원래 흰색 한 가지뿐이었다. 그러나 여러 신들의 장난(혹은 실수)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다양한 색들이 물들게 됐다. 어느 날 큐피드의 실수로 엎지른 선주(仙酒)가 흰색 장미에 묻어 붉은색으로 물들게 됐는데, 그것이 바로 빨간 장미의 탄생 비화다.

 

장미 중에서도 빨간 장미의 꽃말은 ‘열정적이며 아름다운 사랑’인데, 이것은 사랑의 신인 큐피드가 엎지른 술방울로 인해 ‘붉게 타는 열정의 색’으로 변했다고 해서 붙은 꽃말이다.


연인들은 언제부터 장미꽃을 주고받으면서 사랑을 속삭였을까? 내 사랑을 받아달라며 장미꽃 다발을 건넨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역사적 문헌에는 구체적인 기록이 없지만, 최근 과학자들은 인간이 ‘구애의 선물’로 꽃을 주고받은 역사가 매우 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증거들이 있는데, 얼마 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영국 남극탐사팀의 토니 마틴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돌고래를 관찰해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얻었다. 사람들이 데이트를 할 때 연인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듯, 돌고래들도 장차 짝이 될 상대에게 구애하기 위해 선물을 선사하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그들은 열대우림 지역에 사는 6천 마리의 돌고래를 3년 동안 관찰한 결과, 약 220마리의 돌고래들이 맘에 드는 짝에게 구애 물건을 선사하는 광경을 관찰했는데, 그들이 주로 선사한 선물은 진흙이나 잡초 또는 나뭇가지였다고 한다.

 

이런 선물들이 생존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수컷들이 성적인 과시를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물처럼 꼭 필요한 물건을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진흙이나 나뭇가지처럼 상징물을 선사하는 특징이 돌고래 같은 동물들에게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보도한 영국의 과학주간지 <뉴사이언티스트>는 특히 아마존강 유역의 돌고래들이 다른 지역의 돌고래들보다 선물 공세를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진흙이나 나뭇가지 같은 구애물을 열심히 선물한 수컷들이 교미에 성공할 확률이 높고, 교미의 성공적인 결과인 새끼들을 가질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이었다.


돌고래와 인간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생물학적 상상력으로 사뿐히 건너보면 “사람들이 왜 사랑을 고백할 때 삶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꽃다발 같은 선물 공세를 취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남자들은 연인에게 생필품이 아닌, 한순간 근사하게 보이는 꽃다발을 기꺼이 선사할 만큼 자신의 경제적 지위가 높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결혼 뒤 자식을 함께 기꺼이 키울 ‘자상함’을 가지고 있다는 신호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꽃다발을 선물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특히나 당신이 진화심리학을 믿는다면 이 해석이 그럴듯하게 들릴 것이다.


맹맹한 코에 자극적인 장미향


최근 사회심리학자들은 성관계 같은 깊은 관계를 맺기 전에는 꽃다발 같은 실용적이지 않은 선물이 유용하지만, 결혼을 약속하거나 결혼한 뒤에는 꽃다발 선물이 덜 반갑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것 역시 꽃다발은 ‘성적인 과시행동’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최근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사랑을 고백할 때 왜 빨간 장미가 최고인가?”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해 주목받고 있다. 미국 럿거스에 위치한 뉴저지주립대학 연구팀은 다른 선물보다도 장미꽃 다발을 선물받은 사람들이 ‘얼굴에 기쁨이 넘치는 미소’가 가득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꽃다발은 대개 기쁜 날에 주고받는 것이어서, 꽃다발을 선물받은 사람들은 이를 통해 지난날의 즐거운 경험과 기억을 떠올리게 돼 미소를 머금는다는 것이다.


이때 장미의 향기도 한몫을 한다는 사실은 과학자들에게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장미 향기의 주성분인 게라니올과 모노테르펜 등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화학물질인데,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느끼게 하는 페로몬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최근 보고되고 있다.

 

장미꽃 향기는 우리를 침착하게 해주며 성적인 흥분을 유발하는 성분도 포함돼 있다(그래서 장미꽃의 향기는 스트레스나 불안을 줄이고 우울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치료 목적으로도 활용된다). 과거에 우리가 경험한 즐거운 기억과 장미꽃 특유의 향이 행복한 분위기를 유발해 프러포즈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아직은 추정일 뿐이지만 말이다).


게다가 빨간 장미의 ‘붉은빛’은 선물을 받은 사람의 마음에 더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을 전할 때 노랑이나 흰색, 또는 분홍색의 장미꽃보다는 빨간 장미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빨간 장미의 꽃말이 왜 ‘열정적인 사랑’인지를 과학자들이 증명한 셈이다.


특히나 대기오염으로 꽃향기가 귀해질 미래엔 장미꽃 다발의 위력이 더욱 막강해질 전망이다. 미국 버지니아대 환경과학과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150여 년 전에 비해 대기 중에 꽃향기가 90%나 감소했다고 한다.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 날아가다가 자동차가 배출하는 배기가스에 의해 분자구조가 바뀌기 때문이다(가까운 예로, 얼마 전만 하더라도 계절마다 꽃향기가 도시를 가득 메우지 않았던가!). 자동차에서 배출된 산화질소는 햇빛을 받으면 분해돼 오존을 만드는데, 꽃향기에 오존이 결합되면 꽃향기의 분자가 파괴되면서 냄새를 잃게 된다.

 

이런 이유로 19세기 중반 평균 1km 이상 날아가던 꽃향기는 오늘날 도심에서 200∼300m밖에 날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꽃향기를 평소 맡지 못하는 도시인들에게 꽃다발 선물은 앞으로 더욱 자극적인 선물이 될 전망이다.


수요일에 비가 내리면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종합해보면, 사랑하는 연인에게 ‘비 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선물해야 하는데 명백한 이유가 존재한다. 비가 와서 감성적인 모드에 젖어 있을 때 사랑하는 연인에게 빨간 장미꽃을 선물하면, 맑고 깨끗한 대기에 장미꽃 향기가 그윽하게 퍼져 행복한 감정이 유발되면서 성적 과시 행동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수요일이냐고? 최근 사회학자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주일 중 가장 우울한 요일이 (월요일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수요일’로 나타났다. 가장 우울한 날, 사랑하는 연인에게 빨간 장미꽃 한 다발을 선물하는 것. 그것이 다음 세대가 역사 속에서 계속 이어지게 된 원동력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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