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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사람들

2010 늦가을 오후...심향사에서

by 호호^.^아줌마 2010. 12. 4.

2010년 가을의 끝자락

심향사에서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

 

 

심향사 주지 원광스님과 전숙 시인, 시인이자 화가인 김종 선생님, 그리고 만년 흰머리 소년 동화작가 정무웅 선생님

 

 

 

 

 

 

 

 

 

 

 

 

 

 

 

 

 

 

김종 시인의 시화집

'그대에게 가는 길'을  받아들고

므흣한 표정의 원광스님.

전숙 시인이 선뜻 시낭송을

자청하신다.

 

 

 

 

번뇌를 꽃대로 밀어올리다

-심향사에서

 

                                                                  김종

 

박쥐머리 같은 이승의 꽃송이를

진흙바닥 발효시킨 억만 겁 번뇌를

허리 정정한 꽃대로 밀어올리다

 

천길 뚫고 올라온 어둠이

천년 향기 모아 합장하다

 

내 그림자 바라보며 기도하는 그대

또 다른 어둠을 헐어 극락보전을 짓고

대낮같은 극락왕생을 밤새워 깁는 거다

 

부처님 높은 미소를 처음부터 뵙는 거다.

 

 

 

전숙 시인의 낭송에 김종 시인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채,

원광스님은 저윽이 치어다보며 감상한다.

 

 

뒤늦게 조용환 시인 부부가 자리를 함께 했다.

시와 차와 음악이 흐르는

늦가을 어느날 오후에...

 

전숙 시인은 이날의 만남을 이렇게 노래했다.

 

 

 

아란야* 

                               전숙


‘아란야’가 ‘알았냐’로 들리는 절집이 있다

심향사 마당에 서면

쇠지팡이를 짚은 나이든 팽나무 한 그루 

썩은 고목이라도 마음자락을 얼마나 키울 수 있는지

조단조단 길러낸 실핏줄 같은 그늘로 고요히 들려준다


어린 나무를 마당에 앉히며 노승은 당부했다

세상을 좇지 말고 ‘아란야’가 되거라

스님을 알아듣지 못한

나무는 공명을 좇아 하늘로 하늘로 길을 잡았다

우연히 땅을 내려다본 나무는

뙤약볕에서 이글대는 불목하니를 만났다

나무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굽혀 그늘을 넓혔다

그늘에 들어 뜨거운 번뇌를 내려놓는 불목하니를 보고서야

나무는 비로소 스님을 알아들었다

하여도 오르는 일보다 내려서는 일이 더 눈물겨운 법

나무는 벼락을 불러

한사코 하늘로 달려가는 다리를 불칼로 잘랐다

생살을 지지는 아리고 아린 시간이 억겁처럼 흐르고

젖이 덜 떨어진 상처는 궂은날마다 비명을 질렀다

환지통을 겪을 때마다 새살 같은 어린 가지를 토해

그늘을 키운 나무는 모든 번뇌들의 적정처가 되었다


노을 지는 유시에 그 마당에 서면

세상의 수고를 위해

삼십삼천을 기원하는 종소리에 빈 마음이 울린다

강물에 던지고 싶은 돌멩이 하나 무겁게 얹힌 날

시커멓게 타버린 하늘다리를

불두처럼 이고 있는 목불의 그늘에 들어

그 장한 울림을 알아듣고 싶다.


*아란야: 적정처, 쉬어가는 곳이라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

 

 

 

*흐르는 음악은

살바토레 리치트라와 마르첼로 알바레스가 부르는

'그대는 영원히 나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