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나라가 구해야지 누가 구하나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 것도 못 먹어서, 남은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드려 주세요.”
50~60년대 영화에나 나올법한 이 한 마디는 실제로 한 시나리오 작가가 남긴 말이다. 그런데 비극적이게도 영화대사가 아닌 그녀의 유언이 되고 말았다.
촉망받던 예비 시나리오작가 최고은이 32세의 나이에 굶주림과 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다른 집 문에 붙여놨던 쪽지란다. 비극적인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했다. 혼자서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굶어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현실에 피눈물이 솟구친다.
‘가난은 나랏님도 못 구한다’고 했던가? 말도 안 된다. 정말 무책임하고 무능한 책임회피일 뿐이다. 정부는 다른 일 다 차치하고라도 굶어죽는 사람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영산강 물고기 살리는 것보다 사람의 목숨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말이다.
정치권에서는 연일 보편적 복지와 재정을 둘러싼 논쟁을 벌이고 있다. 물론 지금 이 시기에 중요한 논쟁거리임에 분명하다. ‘의무급식’에서 시작해 ‘무상의료’, ‘무상보육’ 등 보편적 복지에 대한 논쟁은 결국 ‘돈’으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보편적 복지를 하려면 재정이 많이 드는데, 그러려면 돈을 써야 하는 국가가 기존 재정을 아끼거나 세금을 더 거두어 재정 여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렇게 해서 국가가 더 많은 복지를 제공하게 하면 복지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돈을 마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 아닌가.
경증장애인 고용장려금이 줄여서 중증장애인 고용 늘린다고 하니까 멀쩡하게 일 잘하던 장애인들이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는 이 상황에서 부자감세까지 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국민들에게 세금 더 걷어서 복지를 한다면,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 호주머니 푼돈 털어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 아픈 이 놔두고 생이빨 빼주는 국민의 심정을 아는가.
올 겨울 우리는 유난히 춥고 가난한 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나주시가 지난 연말부터 올해 1월까지 2개월 동안 동절기 사회취약계층을 파악한 결과 총 1천2백73가구를 발굴해 지원했다는 소식이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다. 교육당국과 협조해 학교별로 학비와 급식비를 못 내고 있는 학생들은 없는지, 주변에 혼자 사는 노인은 없는지, 또 관계 기관에 알아보면 전기, 가스, 전화, 수도가 끊긴 가구를 파악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 뿐인가?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이 체납돼 금융계좌를 압류당하고, 살던 집과 자동차, 세간을 압류당한 사람들, 이들 가운데 극복할 수 없는 빈곤으로 인해 극한에 처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그들의 무거운 어깨를 부축해주는 것이 진정한 복지일 것이다.
복지는 분명 국가와 자치단체의 확실한 정책과 대안에서 나와야 한다. 하지만 복지는 국가의 것만은 아니다. 지역과 시민사회의 역할을 함께 생각해야만 완성될 수 있다. 복지에는 인지상정이 먼저다. 돈은 나중이다. 어떤 위대한 사업도 재정계획부터 출발하지는 않았다. 먼저 뛰어들고, 헌신하고,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낸 다음, 투자자와 후원자가 등장했다. 그리고 돈이 모였고, 성과를 증폭시킬 수 있었다.
이 시간, 오랫동안 기척이 없는 당신의 이웃이 있다면 지금 한번 문을 두드려 보라. 그들의 형편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복지요, 이웃에 대한 의무가 아닐까 싶다.
'나의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페이스북과 트위터로도 만납시다 (0) | 2011.03.09 |
---|---|
정치, 빼앗지 말고 빼앗기지 말고 (0) | 2011.02.21 |
시민고발에 공무원 징계까지...동토(凍土)의 제국 나주 (0) | 2011.01.31 |
“저 초등학교 가요” (0) | 2011.01.23 |
올 설에는 선물 주지 마십시오 (0) | 2011.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