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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야기

벽오동 마른잎에 깃든 가야산

by 호호^.^아줌마 2011. 2. 28.

 

구진포 지나 영모정 가는 길에 영산강과 벗하며

긴 세월을 같이했던 산, 가야산.

애먼 강 살린다며 동원된 굴삭기와 덤프트럭이

연일 굉음을 울리며 바닥을 훑고 기슭을 깎아내 야단법석인 풍경을

산은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다.

저 강에 물고기떼 깃들고 억새풀 새로 움트기를 소망하면서...

나주 회진 영모정과 이웃한 김현임 선생의 반가(畔佳)에서

김종 화백이 벽오동 마른잎에 봄빛 물들어가는 가야산을 그려 넣었다.

 

 

 

 

 

백호 임제 선생의 문학혼을 좇아 귀농한

우진 김현임 선생 부부가 봄향기처럼

찾아든 귀한 손님들을 맞아

공산막걸리와 묵은 총각김치, 봄나물

한 접시를 내놓고,


흰머리 소년 동화작가 정무웅 선생은

백호 임제 선생의 남성성을 얘기하고,

시인 겸 화가 김종 선생은

벽오동 마른잎에

봄빛 무르익어가는 가야산을

그려넣고 있다.

 

 

 

역사

                                                                        김종


사람들은 초롱초롱한 눈을 뜨고

언제나 변함없는 것은 역사라고 한다.

어두운 상처 밑에 신음하는 사람도

모두 모두 역사라고 한다.

그것이 뭐길래 그리 믿어쌌느냐

무슨 부모 자식간이나 되느냐 아니면

제삿상 받아먹는 선영이기라도 하느냐 묻지는 않았지만

목숨이 붙어있는 한 일편단심 믿고 또 믿는 것,

그것은 틀림없는 역사라고 한다.

못 볼 것을 보여 주고 주먹을 쥐면서도

역사가 말하리란다. 저녁 끓일 것이 없는 시인 나라도

큰 배를 앞세우고 근엄하게 말씀하시는 분네도

역사가 반드시 반드시 말해준다고 한다.

어느 누구이건 절로 터진 입이면 늘 은혜롭고 향긋한 역사

분하고, 뒤가 구리고, 몸을 또아리 틀어 사리는 사람 모두

떳떳하게 당당하게 역사는 늘 위대하고 거룩하단다.


사람들은 잠을 자면서도, 이빨을 갈고 잠꼬대하면서도

역사를 베고, 깔고, 숨쉬고, 보듬고 산다.

친구도 부모형제도 보이지 않아 무섬증이 든 허허벌판에서

역사를 앞세우고 그 뒤에 숨어서 식은땀을 흘린다.

가랑잎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오뉴월 물꼬 속에도

역사는 숨 쉬고 살아서 하늘을 날아다닌다 한다.

하다못해 돌멩이나 껴안고 물에 빠진 어느 촌놈도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가 되려고

춘향이 남편 이도령이라도 되려고 설레이고 쌩방귀를 뀐다

이 시시한 시를 쓰는 나도 역사를 들먹거리며 휘파람을 분다.


그러나 역사는 얼굴 깊이 흘러가는 주름살이다.

몸부림도 잊어버리고 화석 속에 누워 지내는 공룡이다.

모랫바람 속에서 사라지는 사하라 사막의 신기루다.

우리들의 비어있는 뼈마디 아련히 차오른

흐린 얼굴 갖가지 모양새다.

저기 저 사는 일이 신물 난 사람들의 꽁무니에

산사태의 요란한 소리로 무너져내리는 흙탕물이다.

불꺼진 토담집 모퉁이에서 우리의 어깨를 덮는 채알귀신이다.


역사는 토란잎 위에 굴러 내리는 아침 이슬이 아니다.

쌩방귀는 어떨지 모르나 큰 바위 얼굴은 아니다.

어제 진 달 다시 돋아 삼천리강산을 비추는 시간에

서로 껴안고 뒹굴던, 사랑하는 청춘들의 밀어가 아니다.

역사는 역사일 뿐 어느 누구의 노래도 포부도 아니다.

떠도는 혼들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시간에

태연히 코를 고는 하나님의 참으로 민망한 사투리다.

눈만 크게 떠도 무한히 작아지는 몇몇 사람의 마스코트다.

들여다보면 무심히 알아지는 허망하디 허망한 돼지쓸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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