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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김정음자...효자뎐

by 호호^.^아줌마 2011. 10. 17.

 

효자뎐

김정음자

나주시 대호동 호반리젠시빌

2011년 7월 16일 우리 딸이 시집을 갔습니다. 사위가 신혼살림을 따로 차린다는 말을 듣고 장인인 내 남편이 펄쩍뛰었습니다. 어머님을 모시는 일은 당연한 일이고 두 집 살림을 하면 경제적으로 손해라고 말입니다. 착하기만 한 딸도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기로 하고 시집을 갔습니다.


이렇게 지극히 당연한 시집살이를 반기는 사람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하는군요. 따로 살면서 서로 섬기면 되고, 행복한 신혼생활이 조금은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가족을 이루어 가는 것은 불편한 관계가 이지만, 그 불편함을 참아 가면서 사랑의 가족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요? 행복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 그 삶의 방향도 다르겠지요? 


나는 육남매의 맏며느리로써 허리 펼 날이 없었습니다. 시어머님이 일찍 하늘나라로 가셔서 시아버님을 모셨습니다. 그리고 동생들을 가르치고 결혼시키고 그렇게 살았지만 나는 그 일을 보람으로 여기고 살았습니다.


친정어머님이 나를 좋아해서 시아버지와 친정어머님을 모시고 10여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대가족이 함께 살기 때문에 난방비를 절약하려고 시아버님과 남편과 아들이 한 방에, 친정어머님과 나와 딸이 한 방에 살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아들이 “우리 집은 공산당처럼 집단생활을 하군요.” 하여서 우리가족은 크게 웃었지요. 이렇게 힘든 생활을 하였지만 이 일을 나의 자랑이며 긍지입니다.

공직을 핑계로 발령장 들고 도망 갈 줄도 모르고 바보같이 살았다는 가끔 생각을 해봅니다만. 그래도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부모님을 모시는 일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복을 받는 일입니다.


그래도 가슴 한 편에는 둘이만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긴 시집살이의 터널을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그 둘이만의 생활이 내게도 왔습니다. 시아버님께서 먼저 돌아가시고 친정어머님은 백세의 수를 다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딸아이가 시집을 가니 집은 텅텅 비웠습니다.


이렇게 둘이만의 생활이 내게도 왔지만 온 식구가 함께 살면서 시끌벅적했던 그날이 이제 그리워집니다. 그렇게 섬기고 사랑했던 동생들로부터 형과 누나로써 존경과 사랑을 듬뿍 받고 있음이 너무 행복합니다. 동서들의 신혼살림을 들여다보면서 때론 동서들을 부러워했던 그 철없는 시절을 부끄럽게 뒤돌아봅니다.


모두들 함께 사는 조금한 불편을 이기지 못하고 홀로 서기를 좋아하는지요. 내 가정에서 내 부모님께 효도를 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 밝고 행복하여 질 것입니다.


얼마 전에 보았던 효자뎐은 울고 웃고 재미있는 극이었습니다. 극으로만 즐기지 말고 효자뎐이 주는 교훈을 마음에 새기면서 우리 모두 부모님께 효도합시다.


우리 딸이 최고의 효부가 되기를 날마다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