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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음식

김치를 아십니까?

by 호호^.^아줌마 2011. 11. 21.

 

김치, 우리 고유 음식이지만 고유어 아니다 

 

우리네 밥상에 오르는 여러 전통 음식 가운데 '김치'만큼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켜온 음식도 드물다. '김치'는 그 하나만으로도 식사를 거뜬히 해결할 정도로 주식인 ''과 짝을 이루며 반찬 중 최고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이러한 '김치'가 이른바 신세대에게는 기피 음식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니 충격적이다. 나라 밖에서는 세계적인 음식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터에, 나라 안에서는 기피 음식 품목에 들어간다는 것은 여간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김치'는 특정 세대가 기피하고 혐오한다고 해서 사라질 음식은 아니다.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의 자연 풍토와 고유 체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토종 음식인데 그렇게 쉽게 우리 밥상에서 멀어지겠는가. '김치'는 여전히 맛과 영양, 그리고 저장성貯藏性에서 우리 음식 문화를 대표하는 걸작 중의 걸작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김치'를 아주 이른 상고上古시대부터 먹어 왔다. 물론 초기의 모양새와 그 명칭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초기에는 무, 부추, 죽순 등과 같은 남새, 채소를 그저 소금에 절인 형태였다. 그리고 그것을 '디히'라 불렀다. 고추를 양념으로 하는 빨간 김치가 나타난 것은 고추가 국내에 들어온 16세기 후반 이후의 일이다.

 

'디히'는 김치에 대한 순수 우리말이다. 옛 문헌에 보이는 '디히겨울김치''앳디히장아찌'디히'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디히'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이에 대해 옛말 '-떨어지게 하다'에서 파생된 명사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물론 '-'라는 어형은 문증文證이 되지 않는다. '-'는 지금 '-'로 남아 있는 중세국어 '-'의 사동형쯤으로 이해된다. 소금에 절인 채소는 가라앉기 때문에 '떨어지게 하다'는 의미의 '-'를 이용한 단어 만들기가 가능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디히'''를 거쳐 ''로 이어진다. '''디히'로부터 변한 어형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를 한자 담그다로 보려는 견해도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우연히 우리말 ''와 한자 ''가 음이 같고 또 의미까지 상통하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일 뿐이다.

''는 지금 서울말에서는 독자적으로 쓰이지 못한다. '싱건지소금물에 삼삼하게 담근 무 김치, 오이지, 젓국지조기 젓국을 냉수에 타서 국물을 부어 담근 김치, 짓독김치독, 짠지' 등과 같은 보수적 성격의 합성어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아직도 경남 및 전남 지역에서는 '''김치'를 뜻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고유어 ''를 대신하고 있는 단어가 바로 '김치'이다. '김치'는 한자어 침채沈菜에서 온 말이다. '침채沈菜''절인 채소' 또는 '채소를 절인 것'을 의미한다. 초기의 김치는 그저 채소를 소금에 절인 음식이었기에 이러한 의미를 지니는 새로운 명칭이 나올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유어 '디히'에 이어 한자어 '침채沈菜'가 만들어진 것은, '디히'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잘 쓰이지 않게 되자 그것을 대신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침채沈菜' 16세기에 '' 또는 ''로 표기되어 나온다. 두 단어는 제1음절 두음頭音에서만 차이를 보인다. '' 16세기 당시의 현실 한자음을 반영한 것이라면, ''는 그보다 앞선 시기의 한자음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는 각기 다른 변화 과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병존하고 있다. '''' 또는 '짐츼'를 거쳐 '' 또는 '김츼'로 변한 뒤 지금의 '김치'로 이어졌다. 한편, ''''를 거쳐 '침채'로 이어졌다. 그런데 현대국어에서 '침채'는 제수祭需, 제사에 쓰는 여러 가지 재료의 하나인 '절인 무'를 가리킬 때나 쓰일 뿐 '김치'에 밀려나 잘 쓰이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김치'라는 단어가 한자어 '침채沈菜'에서 온 것이며, 그것도 ''가 아니라 ''에서 변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김치'처럼 소중한 말이 우리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라니 조금은 실망스럽지만, '침채沈菜'라는 한자어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조금은 위안을 삼을 만하다.

 

_ 조항범

출처_<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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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범

현재 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의미론을 전공하였으며, 우리들이 자주 사용하지만 그 뜻을 정확히 모르는 말의 어원에 관한 책을 여럿 펴냈다. 주요 저서로는 <국어 어원론>, <지명 어원 사전>, <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 1, 2>, <선인들이 전해준 어원 이야기>, <청주 지명 유래>, <국어 친족 어휘의 통시적 연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