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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전국에 부는 공동체바람 ‘마을 만들기’ 현장을 가다⑤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by 호호^.^아줌마 2013. 6. 10.

전국에 부는 공동체바람 ‘마을 만들기’ 현장을 가다⑤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 해발 150m 산비탈에 빽빽이 들어선 집들. 서로 전망을 가리지 않고 겨우 한 두 사람이 어깨를 스치며 지나갈만한 골목길에 문화가 덧칠해져 명소가 되고 있는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꿈꾸는 부산의 마추픽추 ‘감천문화마을’ 도시관광의 지평을 열다

 

부산시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전쟁 피난촌에서 도시재생 모델로

 

전국에서 마을 만들기 열풍이 불고 있다. 농촌에서는 특산물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체험활동을 곁들여 도시민들을 끌어들이는 관광형 마을 만들기가, 도시에서는 삭막한 도시공간을 문화와 건강한 삶이 어울리는 공동체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사업이 한창이다.

 

경기불황 속에 녹록치 않은 도시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눈을 돌리는 도시인들이 늘면서 오랜 타성에 젖은 농촌을 갈아엎고 그들이 원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살아보려고 하는 도시인들이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과 열정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 또한 마을 만들기 사업의 현주소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부산사무소가 지난달 8일부터 사흘 동안 전국의 지역일간지와 지역신문 기자들을 대상으로 ‘관광문화, 도시의 지형을 바꾸다’는 주제로 전문연수를 실시했다.

 

부산광역시 사하구가 추진하고 있는 감천문화마을 조성사업은 더 이상 물러 설 곳이 없는 낡은 산동네에 문화와 향수를 덧입혀 도시관광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주민들이 그들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새로 비집고 들어 온 이방인들이 거부감 없이 뿌리를 내리며 또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감천문화마을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본다. / 편집자 주

 

 

 

50년대 신앙촌으로 시작 현대사의 흔적 그대로

 

부산광역시 사하구 산동네에 위치한 감천문화마을은 딱히 내세울 역사도, 자랑할 만한 문화도 없다. 1950년대 태극도 신앙촌 신도와 6·25피난민의 집단거주지로 시작됐다.

 

태극도는 1918년에 조철제가 증산사상에 기초해 세운 종교로, 4천여 명의 태극도 신도들이 반달고개 주변에 모여들어 집단촌을 만들어 살았던 것.

 

특히, 한국전쟁 당시 힘겨운 삶의 터전으로 시작돼 현재에 이르기까지 민족 근현대사의 흔적과 기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후 도심권에서 밀려난 서민들과 지방 이주자들이 집세가 싼 동네를 찾고 찾아 모여든 곳이 이 마을이다.

 

옥녀봉에서 천마산에 이르는 해발 150m 산자락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계단식 집단 주거형태와 모든 길이 통하는 미로미로 골목길의 경관은 감천만의 독특함을 보여주고 있다.

 

겨우 한 명이 통과할 수 있는 비좁은 골목과 허리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대문이지만 뒷집을 가리지 않게 지어진 주택의 미덕이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는 도시 소시민들의 미덕을 보여주고 있기도.

 

감천의 이런 특색과 역사적 가치를 살리기 위해 지역 예술인들과 마을 주민들이 모여 시작한 ‘마을미술 프로젝트’는 감천문화마을 만들기 사업의 디딤돌이 되었다.

 

이 사업을 시작으로 각종 공모사업을 유치하면서 지금은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감천문화마을, 관광사업 아닌 주거공동체사업으로

 

지난달 10일 전국에서 모여든 30여명의 기자들을 인솔하고 마을을 안내하던 부산시 사하구 창조도시기획단 이귀향 창조전략계장<오른쪽 사진>은 마을을 향해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는 기자들을 향해 “당신들은 관광객들이 아니다. 방문객이다. 우리는 관광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불편 없이 살아가게 하기 위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 있다”는 말로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천문화마을은 최근 부산의 어엿한 도시관광 1번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감천문화마을을 찾은 관광객은 올해 1분기에만 이미 1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에 9만8천383명이 다녀간 것에 비춰보면 폭발적인 증가세다.

 

이귀향 계장에 따르면, 평일에는 평균 500명이 마을을 방문하고, 주말이면 1천 명도 넘는 방문객들이 마을을 찾고 있다고.

 

뿐만 아니다. 이미 국내는 물론 일본·중국·탄자니아 등지에서도 벤치마킹을 하러 온다고.

 

하지만 전국적인 명소는 됐지만 숙소가 없어 대부분 마을 방문객은 감천문화마을을 잠시 들렀다가 송도, 남포동, 자갈치시장으로 이동한다.

 

결국 ‘도시재생’이라는 타이틀로 수많은 관광객을 모았지만 잠시 보고 스쳐가는 장소에 그치고 있다.

 

사하구는 감천문화마을에 민박집을 만드는 등 아이디어를 짜냈지만 관광진흥법 시행령에 의해 도시에서는 내국인을 상대로 민박업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실정이며, 여행객을 위한 모텔도 생각해봤지만 마을 입구에 초등학교가 있어 이마저도 녹록치가 않은 상황이다.

 

꿈꾸는 부산의 마추픽추, 도시관광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감천문화마을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9년 지역예술인들과 주민들이 모여 시작한 마을미술 프로젝트를 하면서부터다.

 

골목은 좁고, 집집마다 화장실도 없어 공동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 결국 자녀들을 하나 둘 도시로 떠나보내면서 나이 든 부모세대만 남아있는 것이 여느 농어촌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다.

 

여기에 몇몇 예술단체들이 문화관광부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2009년 ‘꿈을 꾸는 부산의 맞추픽추’, 2010년 콘텐츠융합형 관광협력사업 ‘미로미로(美路迷路) 골목길 프로젝트’ 등의 사업들이 펼쳐졌다.

 

여기에는 주민과 예술가, 마을 전문가, 공무원들이 너 나 없이 하나가 됐다. 그러면서 떠나는 마을에서 돌아오는 마을이 됐고, 빈 집에 문화예술을 담아 공동화지역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업화를 경계하고 원형을 거의 보존했다는 점에서 도시재생을 꿈꾸는 지역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마을경관 보존 위해 주차장도 안 만들어

 

본격적으로 마을사업이 추진되면서 마을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목욕탕을 개조해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센터 ‘감내어울터’를 개관했다.

 

마을경관 보존을 위해 주차장도 만들지 않았는데 올해 관광버스 몇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주민들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커피숍과 아트숍, 맛집, 문화상품 판매소도 잇달아 문을 열고 있다.

 

 

감천문화마을은 예비사회적기업과 일자리창출사업 지정을 받았고 2011년에 도시대상, 2012년에 아시아도시 경관상과 문화체육관광부 지역전통문화 프로젝트 우수상도 받았다.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자식들 도시로 떠나면서 젊은 사람 못 본지 오래됐는데 요새는 동네가 북적북적 시끄럽기는 해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니까 재미있는 일들도 많고 심심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가운데 관광전문가들은 부산지역의 문화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대형 관광지 개발보다는 감천문화마을과 같은 도시재생에 기반을 둔 마을을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부경대 관광경영학과 양위주 교수는 “대규모 관광개발로부터 도시재생사업을 관광에 접목하는 대안적 접근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가 됐다”면서 “문화융합과 시민복지, 공유경제, 해양관광 등이 주요 이슈인 시대를 맞아 공간보다는 콘텐츠를 창조하는 방향으로 관광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예전 목욕탕을 그대로 살린 감내어울터 입구<위 사진>

 

◇ “젊은 사람 못 본지 오래됐는데 요새는 동네가 시끄럽기는 해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니까 재미있고 심심하지 않다”고 말하는 감천문화마을 주민<오른쪽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