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새해에 붙여
수필가 김현임 씨
어느 시인이 읊었던가. ‘영하 5도보다 1월이라는 단어가 더 차고 신선하다’고. 旬은 10일을 뜻하는 옛말, 맞다. 2009년의 커튼을 열어 旬, 어느덧 열흘에 이르렀으니 새해 타령을 하기엔 늦은 감 없지 않다. 그런데도 신정의 떡국을 거른 채 아직은, 아직은 아침은 멀었노라 눈 뜨기를 거부하는 늦잠쟁이 아이처럼 지난해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진다.
코끝을 간질이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거슴츠레 눈을 뜨면 새 신발, 새 옷의 설빔이 머리맡에 얌전히 놓여있던 구정 아침이 내게는 진정한 새해맞이다. 삶은 토종닭 살점 쭉쭉 찢어 맑은 조선장에 볶아 국물을 잡고 대떡 길숨길숨 썰어 노랗고 흰 계란 지단의 고명을 얹는다. 그릇에 뜨기 전 마지막으로 윤이 나는 완도산 김을 손 부벼 넣은, 정성스런 음식이 주는 따뜻한 기운과 피붙이의 정겨움과 새날의 설렘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설날의 그 아침상! 그를 상상하는 내 입엔 어느새 침이 가득하다.
그렇다고 자꾸 미루고 있는 새해맞이가 제대로 된 떡국의 감미, 그 기대 때문일까. 솔직히 내 이 고집의 근원은 따로 있다. 새해벽두에도 여전한 정치판의 풍경, 치고받고 어느 시정잡배들의 난투장을 연상시키는 텔레비전 화면을 마주하노라면 화가 치민다. 마치 한 점 먹이를 두고 죽기 살기로 다투는 짐승들의 행태처럼도 보인다.
‘새해엔..... ’ 심심찮게 울리는 핸드폰의 문자함을 열면 어김없이 새해라는 말로 시작되는 지인들의 새해 덕담이다. 이렇듯 새해라는 말에는 뭔가 확연히 달라지리라는, 그것도 좋은 쪽으로 변화되리라는 희망이 깃들어져 있지 않은가. 그러니 낡은 구습이 사라지지 않는 한 진정한 우리의 새해는 까마득히 먼 셈이다.
새해, 새 날엔 사람, 참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정답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싶다. 그 답답함이 부른 가당찮은 욕심이다. 책장을 두리번대며 ‘論語’를 찾았다. 어느 분이 자료 삼아 보내주신 이 메일 속의 빽빽한 한자 구절을 해독하기 위해서였다. 공자께서 수레를 타고 가다가 장저와 걸익을 만나 대화하는 논어의 미자편을 더듬더듬 읽다가 문득 적어보는 한 대목이다.
夫子憮然曰
‘鳥獸는 不可與同羣이니 吾非斯人之徒를 與오 而誰與리오 天下有道면 丘不與易也니라’.
공이 길게 한탄하며 말씀하시길
‘사람이 새와 짐승과 더불어 가히 같이 어울리지 못하나니 내 누구와 더불어 살리오.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내 어찌 바꾸려 하겠는가’
**필자 김현임 씨는 수필가로 현재 광주여류수필문학회 회장이며 문화해설사, 굿뉴스피플의 문화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백호 임제 선생을 흠모하여 12년 전 백호선생의 기념관 옆에 ‘반가’라는 집을 짓고 살며 문학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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