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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사람들

여성컬럼-아름다운 품앗이

by 호호^.^아줌마 2009. 1. 18.

아름다운 품앗이

 

수필가 김현임


뜻밖의 수확이었다. 인사차 들른 사이언스 워터의 이시온 사장으로부터 나주와 함양, 그러니까 영호남의 지자체 간 오랜 가연에 얽힌 사연을 들었다. 막상 현지에서 느끼는 상호간의 체감 온도야말로 온화함 그 자체이어서 선거철만 되면 도지는 골 깊은 두 지역 간의 편견과 오해는 이제는 식상된 감마저 든단다.

‘난 그 집안의 개만 봐도 화가 나’

이런 말을 뱉는 하인의 대사가 암시하듯 아름다운 베로나의 명망이 엇비슷한 두 가문에서 벌어지는 비극이다. ‘오래 묵은 원한으로 새 폭동을 일으켜’라는 해설을 시작으로 ‘로미오와 줄리엣’, 그 비련의 막이 열린다. 실상 두 가문 역시 그리 뿌리 깊은 원한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헛말로 생겨난 세 번의 소동으로 거리의 고요가 세 번 깨어졌고’하는 대사가 그 증거다.

헛말이란 말 그대로 항간에 떠도는 근거 없는 유언비어다. 이 작은 땅덩어리의 영호남의 갈등 또한 그렇다. 사실 어느 시대나 지역 간 이해다툼은 있기 마련이다. 사람살이의 바탕은 지역이기에 그로 인한 불가피성이랄까.

어느 날이던가. 불구대천의 원수를 뜻하는 ‘수(讐)’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 눈에 읽힌 대로라면 아름다울 ‘가(佳)’의 두 번 중복, 그리고 아래 말씀 ‘언(言)’의 조합의 글자다. 조석으로 얼굴 마주치며 서로 고운 말과 인정 주고받던 친근한 이웃 간에 빚어지기 쉬운 게 사소한 트러블, 그래서 그 작은 앙금이 ‘불목(不睦)’으로, 마침내 배척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리라는 때늦은 깨달음이다.

호남과학자의 이론을 믿고 ‘사이언스워터 함양’이라는, 아토피와 대머리 방지 치료제의 물공장을 현지에 세워 전국에 적극 홍보 육성 중인 함양의 천사령 군수다. 이번엔 목사골 나주의 감사답례 화답이랄까. 장장 6개월에 걸친 나주시청 공무원 대상 약효 체험효과에 따른 결정이다. 함양이라는 경상도의 지명이 들어간 상호를 가감 없이 수용하여 공장건립을 적극 추진한 신정훈 나주시장이다.

공장 준공식 때 두 분 나란히 테이프 커팅을 하시는 모습이 흐뭇했다. 두 지역의 정 나눔은 더 나아가 머지않아 함양에서 열릴 예정인 4월의 꽃 축제에 나주지역에서 투어버스를 동원해 축하 사절로 참석할 것이란다. 지역 갈등 해소의 물꼬가 신나게 가동 중인 두 곳의 물공장에서 들리는 세찬 물소리인양 반갑기만 한데 더더욱 반가운 것은 나주 축제의 주인공인 ‘홍어’의 산업화 소식이다.

영산포 일대의 특산물인 홍어가 농림수산식품부가 주관한 향토산업 육성대상사업으로 선정되었다는 희소식이다. 올해부터 2012년까지 30억 원을 들여 홍어 가공식품의 개발 및 유통시설의 현대화, 인력 양성, 홍보 마케팅 등의 사업을 펼친단다.

가내 수공업 형태에 머물던 홍어 가공 산업이 종합적인 식품 산업으로 탈바꿈 하는데 큰 의미가 있지만 내심 ‘나주의 축제에 우리 함양에서도 버스투어로 적극 참여 하겠다’는 함양 군수님의 그 아름다운 품앗이의 약속이 있기에, 우리가 맞을 저 영남의 귀한 손님들의 잔칫상이 더더욱 성대해지리라는 기대로 한껏 기꺼워지는 것이다.

향상하고 퇴보하는 것은 단지 발걸음 한 번 떼는 데 달려 있다던가.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의 행위로 인하여 드러난다고 했다. 농경사회의 필수인 영농일손에서만이 아니다. 오늘은 내 집의 잔치에 내 이웃의 따뜻한 손이 거들고, 며칠 후 부르지 않아도 나또한 잰걸음으로 달려가 내 이웃의 애경사를 거들던 우리의 미풍양속이 품앗이다.

바야흐로 ‘시절이 봄이니 어느 곳인들 꽃답지 않은 곳 있으랴.’는 옛 시구처럼 경상도의 함양과 전라도의 나주, 영호남의 두 지역이 구가하는 화합의 노래 가락에 절로 어깨가 덩실거려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