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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사람들

여성칼럼...사또관사에서 하룻밤

by 호호^.^아줌마 2009. 2. 9.

 

여성칼럼...사또관사에서 하룻밤


 

 

 

 

 

 

 

 

 

 

 

 

 

 

 

 

수필가 김현임

 


무화과꽃이 피는 그 나라를 아시나요

검은 잎으로 된 금빛 오렌지가 열려 있고

도금향 나무는 조용히, 월계수는 높이 서 있는

그 나라를 아시나요

큰 방들이 번쩍번쩍 빛나고

대리석 조각들이 나를 응시하는

그 나라, 그 나라


괴테의 이런 시가 노래로 흘러나오는 순간, 귓속 가득 잉잉대던 수천, 수만의 꿀벌소리다. 언젠가는 꼭 돌아가리라 다짐하고 다짐하던 에이츠의 이니스프리의 호반 같은 곳이 아니래도 좋다. 가끔 아주 가끔 그대는 흙 내음 물씬 풍기는 한가로운 곳이 그립지 않은가. 거두는 손길 없어 누런 모과 뚝뚝 떨어져 뒹구는 퇴락 직전의 외갓집도 좋다. 잠시 이 고단한 현실을 벗어나 지친 영혼을 재충전할 유예의 시간을 꿈꿀 수 있는 곳이라면.

 

세월 묵은 고가구가 배치된 아늑한 한옥에서의 하룻밤은 황홀한 초대다. 전통 찻잔에 담긴 그윽한 차 한 잔으로 도회의 먼지 묻은 마음을 정갈히 닦고 천연 염색된 비단 이불에 누우면 그야말로 여느 왕족 부럽잖은 호사려니 그 밤 한지 창으론 은은한 달빛 기웃대면 더더욱 금상첨화리라. 

 

1892년 건립되었으니 세기를 훌쩍 뛰어넘는 연륜을 지닌 고택이다. 당시엔 정3품에 해당하는 문관, 지금의 도지사쯤 되는 지위가 목사다, 하니 그의 살림집인 나주목사 내야는 조선 후기 상류층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다. 옛 시절 신분 높은 벼슬아치께서 곤한 몸을 뉘었던 장소가 일반인들을 위한 숙박시설로 공개된다는 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옥의 특성상 텅 비워두고 전시, 관리하는 것보다는 사람의 훈기가 드나들어야 더 오랫동안 보존된다는 점이 이번 결정의 최우선 항목이었으리라. 아울러 천년고도 나주라는 역사성을 살려 현대인들에게 과거와 소통할 수 있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기회를 주고 싶었단다.

나주시는 내아 안채와 문간채 등을 한옥여관으로 개조 단장해 관광객들에게 제공키로 했다. 사라져가는 옛 정취를 되살린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도록 하는 반면 안채 옆 ‘영빈관’은 탈의실과 수세식 화장실, 초고속 인터넷망을 두루 갖춰 소규모 세미나도 열 수 있도록 만반의 대비도 했다.

 

하늘 올려다 보이는 마루에서 무릎에 베고 누운 아이 등을 토닥이며 별 헤기로 밤 깊어도 좋으리라. 눈 속 보다 빗속이, 빗속 보다는 달빛 속이 낫다지만 비 내리는 밤이라고 어찌 서운하랴. 처마 끝에 떨어져 내려 댓돌 적시는 빗물 소리도 정겨우리니  ‘물무미악종귀용(物無美惡終歸用)’ 무릇 좋고 나쁜 일이 어디에 있는가. 마지막에는 쓰임새에 있는 것이라 했다.

 

사또 객사의 널찍한 앞마당은 널뛰기와 투호 등 전통놀이 체험 공간이다. 옛 선조들의 놀이를 아침 운동 삼아도 좋으리라. 간단한 운동 후 숙박객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가마솥의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내야에서 200m 떨어진 향교로 가서 유생체험을 해 보면 어떨까.

 

나주 향교는 국내 현존하는 향교 중 규모나 격식 면에서 가장 우수한 건축물이다. 그 유서 깊은 곳에서 한번쯤 반문해 보자. 과연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가’고. 애초 이 특별한 여행의 목적이 거기에 있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