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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사람들

여성칼럼...벽(癖)에 관하여

by 호호^.^아줌마 2009. 2. 14.

여성칼럼


벽(癖)에 관하여

  


 

 

 

 

 

 

 

 

 

 

 

 

김현임


 K시인은 전화를 받자마자 꾸중이다. 그 부탁을 받은 지 벌써 2주일째니 당연하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우정을 어떻게 지속시키겠냐며 은근한 협박성 발언도 이어진다.

 

참으로 황홀한 청탁이었다. K시인 같은 대가께서, 더더구나 내게 그런 류의 부탁이 감히 들어올 수 있다니 내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백호 임제 선생과 회진 마을에 얽힌 일화를 수집 발췌하여 보내주십사는 부탁 말씀은 내겐 숨 막히는 황홀함 이었고말고! 어떤 까닭이든 집안의 인정받지 못하던 여자가 드디어 시댁 호적의 채 잉크 마르지 않은 제 이름자를 보는 감격적 심정이었다면 비약이 너무 심한가. 그래서, 그래서 차마 보내지 못하였노라 변명도 못하고 고스란히 K시인의 꾸중을 감내했다.

 

나라는 사람은 참 묘하다. 무언가에 빠지면 아주 저돌적 기세다. 발톱으로 후비든 제 배설물을 바르든 여기는 제 영역이라 표시해야 직성이 풀리는 살쾡이와 기질을 닮았다. 십하고도 몇 년 전 맑은 이름의 매화주에 그러하였고, 사실 나는 그 술을 의인화해 나와 속마음 나누는 벗이라 칭하는 장문의 글을 써서 술회사로 보내는 용감무쌍함을 보였고 그 글의 주요 대목을 액자로 해 그 술이 제조되는 공장에 보내는 만용도 부렸다. 그 답례로 술 회사의 사장님께서 보내주신 세 권의 책이 백호전집, 그게 시동이었을까.

 

때는 바야흐로 봄. 연례행사인 문학순례지가 하필 백호 선생의 기념관 마을인 나주의 회진리인 것이 화근이었다. 강변 마을에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휘늘어진 수양버들의 초록은 내겐 왜 그리도 눈부셨는지!

 

다들 귀로의 차에 오르는데 나는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백년 전의 옛 시인과 내가 염문이 난 것은 정확히 그날부터다. 내가 누구던가. 남의 집 방문은 절대 사양하는, 그러니까 가벼운 자폐증적인 성격에다 걸핏하면 길을 잃어 어리둥절 거리를 헤매는 지독한 길치. 그런 내가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는 낯 선 마을을 하루가 멀다 않고 찾았다.

 

유물은커녕 마루뿐인 텅 빈 기념관을 빗자루 들고 청소를 하기 몇 달 결국 일을 벌였다. 식구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예 기념관 옆에 집을 짓고 기거하기에 이른 것이다. 의도적으로 내 집의 주소에 덧붙이는 ‘백호기념관 옆’이라는 문구도 내겐 감당 못할 호사다. 어쩐지 내 생과 백호 그 분이 크게 연관된 느낌이 뿌듯하다. 단지 백호 선생의 싯귀를 더듬대면서라도 읽기 위해 6개월 매달려 딴 한문 1급도 백호 선생과의 인연이 만든 뜻밖의 수확일 터, 어언 강산이 바뀌는 세월 넘게 설친, 이런저런 기득권으로 나는 백호 선생의 시를 지면에 소개하는 필자로까지 나서게 되었다.

 

문득 생각난 길버트 카플란이다. 그는 말러 교향곡 2번, 일명 ‘부활’의 지휘에 관한한 독보적 존재다. 음악에 문외한이었던 스물일곱의 청년은 우연히 가게 된 연주회에서 말러의 교향곡, 부활을 듣게 된다. 물론 그 순간 그도 나처럼 숨이 멎는 감동에 휩싸였고, 그날 그는 일생일대의 결심을 한다. 언젠가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기필코 음악공부를 해서 말러의 부활을 손수 지휘해 보리라고. 그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불철주야 열심히 노력하였고 마침내 그의 나이 40에 이르러 그토록 바라던 음악수업을 받게 된다. 그는 말러의 교향곡 2번 외에 다른 곡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癖을 고집하여 전 세계적으로 그 곡 연주의 대가가 되기에 이른 것이다.

 

일찍이 박제가는 글에 밝혔다. ‘사람이 癖이 없으면 그 사람은 버림받은 자다. 벽이 편벽된 병을 뜻하지만 고독하게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전문 기예를 익히는 것은 오직 벽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평범하고 상식적인 세계에 안주하며, 틀에 짜맞춘 규격품 같은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마니아를 이해하지 못한다.

 

벽이 없는 사람, 흠이 없는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했던가. 그들에게는 깊은 정도 진실한 기운도 없다고 했다. 기이하고 빼어난 기상이 벽이니 그것이 없으면 어떠한 사물이든 속됨에 빠진단다. 이를테면 산에 이 기운이 없으면 부서진 기와조각이요, 물이 이 기운이 없으면 썩은 오줌, 학자가 이 기운이 없으면 묶어놓은 꼴이요, 무인이 이 기운이 없으면 밥보따리요, 문인이 이 기운이 없으면 때주머니에 불과하단다.   

 

맹목으로 치닫는 기운, 그러니까 병적이라 할 만큼의 지나친 집착이 癖인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도 백호 선생을 향한 나의 癖이 창출한 선한 결실이 자랑스럽다. ‘네가 세계의 중심에 서고 싶다면 네 마을을 노래하라했다’던가. 명실상부 내 마을의 큰 시인이신 백호 선생님이시다. 싱글벙글한 내 표정을 들키지 않아 다행이다. 백배사죄하며 열 댓 장의 자료를 당대의 대시인이신  K시인에게 송부하는 내 기꺼운 마음을 그 누가 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