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정착금, 거저 받는 것 아닙니다”
20~30대농업인 풀뿌리공동체 정착위한 대책 강구
창업농에 대한 멘토링.인큐베이팅사업 활성화 돼야
지난 23일 나주시 동수동에 위치한 나주시농기계은행에서는 귀농인과 후계농업인을 대상으로 농기계 활용교육이 실시됐다.
이날 교육에는 나주지역 귀농인과 후계농업인 35명이 참석, 새로 나온 농기계에 대한 정보와 함께 실제 조작하는 훈련을 받았다.
이날 교육현장에서 만난 귀농인과 후계농업인들은 농촌에서 희망을 일궈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들의 얘기를 통해 나주지역 귀농인과 농업인후계자 정책의 현주소를 살펴본다.<편집자 주>
“애들 커 가는데 뭐라도 이뤄놔야죠”
…여성후계농업인 박단오(45.나주시 세지면 송제리)씨
“농촌이 기계화돼서 다들 기계로 농사짓는데 예전처럼 삽 들고, 호미 들고 농사짓다가는 못 당해내죠. 경운기 운전은 어느 정도 하는데 트랙터 조작이 서툴러서 배우러 왔습니다.”
농기계 교육현장에서 만난 박단오(45.여.나주시 세지면 송제리)씨. 농촌이 노령화되면서 놀리는 논․밭도 많고 빈집도 늘어간다는 데 실제로 농사를 지으려고 달려들어 보니 ‘그림의 떡’이라고 한다.
후계농업인으로 선정돼 농지구입자금과 농기계 구입자금이 지원되기는 하지만 절차가 복잡한데다 실제 땅을 사려고 해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지원조건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농지구입자금의 경우 밭이 제곱미터당 12,100원, 논과 과수원은 15,125원씩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거래가격은 평당 4~5만원선에 이르고 있으니 현실적으로 정부 지원기준에 맞춰 쓸 만한 농지를 구입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더구나 이같은 농지구입자금이 연리 6%라는 고금리인데다 5년 거치 10년 상환이라는 빠듯한 조건 때문에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박 씨는 “아이들이 커가는 데 부모로서 뭔가 하나는 이뤄놔야지 하는 생각으로 농사규모를 늘려갈 계획”이라고 한다. 앞으로 농촌에 땅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다른 직장생활이나 도시생활 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고.
“어릴 때부터 보고 배운 농사 제가 이어야죠”
…후계농업인 안형태(22.나주시 동강면 진천리)씨
교육생 가운데 아직 앳된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청년농업인 안형태(22․나주시 동강면 진천리)씨.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농사를 지어왔기 때문에 웬만한 농기계는 다 조작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안 씨가 소형 포크레인에 올라 조작법을 익히고 있다.
왜 농사를 짓게 됐느냐는 질문에 “빨리 돈을 벌고 싶고, 젊어서 고생을 하면 나이 들어서는 남보다 낫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안 씨.
다른 직장생활을 해볼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부모님께서 애써 일궈놓은 농지를 남에게 넘길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라고 잘라 말한다.
수도작 뿐만 아니라 전문적으로 시설하우스를 경작해보고 싶다는 안 씨는 농촌사회의 문제가 되고 있는 농촌들의 결혼 문제와 관련해 “여자 친구 있으니까 염려 없습니다”라며 넉넉한 웃음을 보여준다.
“농사는 농사꾼이, 농촌살리기는 전문가가...”
…귀농인 박성태(31.나주시 산포면 덕례리)씨
지난 2007년에 귀농해 현재 나주시 산포면 덕례리에서 진달래농원을 운영하고 있는 박성태(31)씨는 “‘귀농’은 단지 도시를 떠나 직업을 바꾸는 삶의 단순한 전환이 아니다”고 못 박고 있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회사를 다녀보기도 하고 광고업에 종사도 해보고, 심지어 노래방까지 운영해봤다는 박 씨는 대학 때부터 꿈꿔온 공동체생활에 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귀농을 하게 됐다.
박 씨는 자신의 이같은 결단을 “도시라는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생명을 가꾸며 아름다운 삶을 찾아나서는 것이며, 모든 생명의 존립을 위협하는 절망적인 오늘의 문명을 버리고 새로운 ‘대안의 문명’을 찾아 나서는 거룩한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박 씨가 꿈을 이루는 과정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데다 농업에 대해서는 ‘까막눈’이었던 그에게 농업을 장벽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우선은 귀농정책자금의 문제이다.
현재 전남도내 각 자치단체에서는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2천만원~3천만원에 이르는 귀농정책자금은 주고 있다. 여기에는 필수적으로 자기 부담금이 포함돼야 한다.
이에 대해 박 씨는 ‘귀농 정착금’이라는 용어가 아주 잘못 쓰이고 있다고 지적하며 “'정착금은 ‘그냥 준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정부와 자치단체가 지원자들을 현혹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 단어를 ‘농림사업보조금’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 씨는 최근 창업농업인 모임을 꾸리기 위해 분주하게 뛰고 있다. 아울러 지역의 우수 농산물을 효과적으로 판매하기 위한 방안으로 광주.전남지역 쇼핑몰운영자 모임도 결성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젊은 박 씨는 20~30대 농업인들이 풀뿌리지역경제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이에 걸맞는 귀농지원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말잔치뿐인 귀농지원, 현실적 대안 필요해
최근 몇 년 사이 전라남도를 비롯한 도내 각 자치단체에서는 경쟁적으로 귀농인과 창업농, 후계농업인에 대한 지원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런 돈을 보고 들어오는 귀농인의 경우 백에 아흔아홉은 거의 실패하고 오히려 더 큰 상처만 입고 돌아가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
모든 준비가 확실히 되어 있고 사업에 대한 구상이 완료돼 자기부담금으로라도 사업을 시행하려고 하는 농업인들마저 성공할까 말까한 농업현실 속에서 청년실업자들이나 도시 실직자들이 단순히 귀농에 대한 환상만을 갖고 달려들었다가는 현재 농촌 곳곳에 흉물처럼 남아있는 창고와 축사, 비닐하우스와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3일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위원장 이낙연 의원)는 전체회의를 열고 농가부채 경감과 귀농 정착지원 방안 마련 등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촉구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한나라당 황영철 의원은 “‘농어업인 부채 경감을 위한 특별조치법 개정법률안’ 시행에 대비, 상호금융저리대체자금의 상환 연기에 따른 신규 소요 보증액 466억원을 추경예산에 반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은 “절박한 심정으로 귀농하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현재 191억원만 반영된 귀농정착지원금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밝히는가 하면 역시 한나라당의 김학용 의원은 “귀농정착지원금 중 집수리비를 500만원씩 일괄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빈집을 수리할 때 훼손 정도에 따라 수리비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여당의원들의 이같은 말잔치 속에 지난 2007년 당시 민주노동당 대통령 예비후보였던 심상정 의원이 내세운 귀농관련 정책이 새삼 떠오른다.
심 의원은 젊은 영농인이 농촌에 살아야 농촌공동체를 복원할 수 있다며 농지은행을 활용해 귀농인들이 농촌에 초기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특히, 지역별로 친환경 재배기술 촉진을 위한 영농기술 지원과 숙련된 농업인을 멘토링 방식으로 활용해 귀농인들에게 인큐베이팅형 교육훈련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심 의원의 이같은 주장은 정부가 올해부터 ‘창업농 멘토제’를 실시하기로 함께 따라 그 성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함께 기존의 영농후계자 대체복무를 확대해 귀농에 대한 동기를 지속적으로 부여하고, 우리밀과 같은 재래종자와 비탈지 등 생태보존형 농업에 대해서 준공무원 성격을 지닌 기간농민제를 적용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 김양순 기자
<사진> 귀농인과 후계농업인 등이 나주시농기계은행에서 실시하는 농기계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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