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면 가운리 운암마을 광장에
떡~ 버티고 서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 두 그루, 오른쪽 옆에 살짝 보이는 세 그루,
그리고 사진사 뒤편에 또 한 그루...
"엄청 오래 됐나봐요?"
"한 오백년 됐제?"
"하이고, 나 에랬을 때도 오백년이라고 하데."
"할아부지가 몇 살이신데요?"
"아흔 다 됐제."
"아, 그러면 오백팔십년은 됐겠구나."
"사람이나, 나무나 나이를 많이 묵으믄 그런 거이 필요읎어. 그냥 오래됐는갑다...하믄 돼."
"이 마을은 언제 생겼어요?"
"그것이사 우리야 모르제만은 황씨들, 장수황씨들이 젤 먼저 들어와서 타를 잡아다고 해.
그 후로 1760년경에 반남박씨 박필건이 문평 대실에서 건너왔고, 1780년경에 광산김씨 김필연이가 공산 백사리에서 이거해 왔다고 하드만. 청송심씨 심능섭과 수성최씨 최윤관이도 장성에서 옮겨와서 지금까지 자자일촌하고 살제."
"오~~ 할아부지, 박사네?"
"박사는 뭔... 이 정돈 기본이제."
"근데 왜 운암마을이라고 했대요? 구름이랑 바위가 많아서?"
"저기~ 마을 뒷편에 구름바위가 있거든. 그래서 운암이라고 한거랴."
" 저 산이 신걸산인가?"
"그렇제. 신걸산에서 내려온 자락이제."
"어라? 근데, 저 아저씨들은 형사들 아녀?"
"마을에 행사가 있응께 보러왔는갑제."
"뭔 행산데요? 나쁜 건가? 경찰들이 몰려온 거 보믄..."
"뭔 소리. 한전에서 마을에다 철탑을 세울라고 한께, 뒤만큼 멀찍이 떨어지게 세우라고 주장하는 것이제
나쁜 짓은 안해."
"음! 근데 저기 돌기둥에 삽초골이라고 써진 건 뭐여?"
"우리 마을 이름이 운암마을이라고 하기 전에 삽초골, 삽작골, 출동이라고도 불렀다고 해.
삽초라고 알랑가 모르겄네. 약초여. 암컷은 백출이라 하고, 숫컷은 창출이라고 한다드만..."
"마을에 자랑거리도 많겄네?"
"우리마을이 들노래가 유명했제. 1977년에 나주들노래보존회를 만들어서 전국대회를 나갔는디
우리가 국무총리상을 탔어."
"할아버지도 나갔겠네?"
"암만..."
"알았어. 할아버지. 고마워."
"근디, 어째 나한테 계속 말을 놓아?"
"할아버지, 나랑 동갑아녀? 얼추 비슷해 보이는디?"
"떽끼~"
"^-------------^"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에
고압송전탑이라니...
저기 저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가리는
조그만 전봇대도 눈엣가시처럼 보이는데...
여우는 죽어서 옛 마을을 향한다는데
운암마을 사람들은 또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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