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 바리톤 오현명
김지향 시, 김규환 곡
기약하고 떠난 뒤 아니올 동안
그 꽃밭엔 잡초만이 우거져 있네
그 후론 날마다 아니피는 꽃이여
행여나 오늘은 맺어지려나
보내고 한세월을 방황할 동안
그 창문엔 달빛조차 오지를 않네
그 후론 날마다 아니 여는 창이여
행여나 오늘은 열려지려나
이별 하나.
초등학교 6학년 5월에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말을 듣고 살 것이 두려워
친구들에게도, 선생님에게도 내색을 하지 않고
결국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 않고 보냈습니다.
가정환경 조사 같은 것, 정말 쓰잘떼기 없는 짓입니다.
그러다 결혼을 앞두고 펑펑 울었습니다.
아버지가 없는데 누가 내 손을 잡아줄 것인가...
정말 그때 아버지가 그립고, 서럽고, 두려웠습니다.
이별 둘.
대학교 졸업반이 되던 해 1월에 띠동갑 오빠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바로 제가 사는 집에서 마지막 서너달을 같이 보내다 갔습니다.
그때 오빠 나이가... 서른 여덟...세상에나 서른 여덟밖에 안됐다니...
죽음이 멀다고만 생각했는데 죽음과 삶은 가까운 것이더군요.
5남2녀 남매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오빠였고,
그래서 오빠가 결혼할 여자라고 어떤 여자를 데려왔을때
하늘이 무너지는듯 눈앞이 깜깜해짐을 느끼게 했던 그런 오빠,
그런 철부지 동생을 달래기 위해
"네가 싫어하면 오빠 장가 안 가불란다."
라고 말해주던 오빠...
그런 오빠가 떠난 뒤 석달쯤 후에 울었습니다.
목표로 하던 시험이 있어서 학교 도서관 정독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누가 찾아왔다는 전갈,
나가 보니 바로 오빠...
책상에 앉은 채로 백일몽을 꾸었던 것입니다.
그대로 앉아서 한 시간 동안 울었습니다.
주변사람들이 뭐라하든 그때는 울고 싶었습니다.
오빠를 잃고 정신을 놓다시피 했던 엄마와 초등학교 2, 4, 6학년이던 조카들 때문에
억눌렀던 슬픔이 100일쯤 지나자 그런 식으로 터져나온 것이었습니다.
이별 셋.
연애하다 운 적도 있습니다.
좋아했던 선배오빠가 있었는데
한 이년 남짓 마음으로만 그리다
마음을 전하기로 하고 만났습니다.
아니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 만난 것이었죠.
그런데 그에게는 이미 내가 아는 선배언니가 情人으로 있었습니다.
아니, 내가 아는 그 언니가 저처럼 그 선배오빠를 연모하고 있었던 거지요.
똑똑하고 참한 언니었는데
가난한 집안의 장녀인지라 여상고를 나와 일찌감치 직장생활을 해야하는 언니였죠.
그런 언니에게 슬픔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웃으면서 돌아섰는데 눈물이 나더군요.
웃음이 나는데 눈물도 같이 나는 겁니다.
지금도 그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정말 열심히 사는데도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그 선배오빠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그런 오빠를 묵묵히 내조하는 그 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그러면서 그들의 삶에 행복이 깃들기를 기도합니다.
그때 내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과 함께...
이별 넷.
그런데 벌써 한달이 지났습니다.
그 양반이 홀연히 곁을 떠난 게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세상에 계실때 절실히 느끼지 못했는데
내 삶의 가치관과 생활의 괘적이 그와 많이 닮았다는,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에 그가 늘 앞장서 있었다는 생각을
그 양반을 떠나보내고 난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슬펐습니다.
그 양반이 없음으로 인해서
이 세상 더욱 캄캄해질 것을 생각하니 두려웠고
이 세상과 다시 힘겨운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갈등이 일고 그러면서 속울음을 울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이 벌써 한달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또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이별 다섯.
그 양반이 떠난 것은
제 삶에 다른 형태로나마 인정이 되는데,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아직 제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양반을 떠나보내면서
제가 스스로 결심하고 떠나보낸 것이 하나 있는데
마음으로는 떠나보낸다 하는데 제 영혼이 아직 인사를 못했나봅니다.
자꾸 미련을 갖습니다.
그러면 안된다, 안된다 하면서도 계속...
그러다저러다 결국은 굳어지겠지요.
화석처럼, 돌덩이처럼 굳어지면 아픔도 느낄 수없게 되겠지요.
이미 많은 이별을 경험했기에
이젠 경험을 통해서 치유를 할 수있다는 신념 뿐입니다.
그렇지만
아픕니다. 자꾸 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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