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에서 살아남기 -싸움의 定石 2탄-
"막고 품는다"
어릴 때 동네사람들이 천렵을 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지켜본 적이 있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개천의 물을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모두 퍼낸 뒤 물고기를 건지면 됐다. 물이 많을 때는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니던 물고기들이 물이 줄어들면서 저절로 바위틈에서 고개를 내밀기도 하고, 꼼짝없이 생포되고 만다.
‘막고 품는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기술인가?
나주세무서 김동일 계장이 연일 언론과 인터넷에서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계장이 일했던 나주세무서는 어떤 분위기일까, 아무래도 동료가 큰일을 당한 마당에 직원들이나 지역민들에게 기관장으로서 한 말씀 하지 않을까 싶어서 서장실을 찾았다.
부속실 여직원이 서장님 결재중이니 기다리란다. 기다렸다. 5분, 10분...그러는 사이 직속상관이라며 모 과장이 들어와 자기와 이야기를 하잖다. 어떤 얘기를 해 줄 수 있냐고 하자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할 말이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면 당신에게 들을 얘기가 없지 않느냐, 그래서 서장을 직접 만나겠다... 승강이를 벌이고 있는 사이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서장을 면담하러 왔다며 들렀다.
서울에서 새벽바람에 내려왔다는 그들은 서장을 만나 김 계장 징계경위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또 그 직속상관께서 “서장님 만날 필요 없이 자신과 얘기 하자”는 것이다.
무슨 소리냐, 서장에게 들을 말이 있고, 과장에게 들을 말이 따로 있지 않느냐, 서장을 만나겠다. 그러면 인원수가 많으니 옆방에서 기다리란다.
그러면서 그 과장 왈, 서장님 취재하려면 취재 요청서를 써야 한단다. “뭐요? 기자생활 20년 만에 이런 일은 또 처음이요만, 이 곳 풍속이 그렇다면 씁시다. 서장을 만나려는 이유, 무슨 얘기를 나눌 것인가, 어디에 쓰려고 그러나...” 작성해서 넘겼다.
그러면서 그 과장에게 물었다. 솔직히 이번 일을 어떻게 보십니까?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답변을 했다 “솔직히, 우리가 왜 그 한사람 때문에 이런 피해를 봐야 하는지 화가 납니다. 그 한사람 때문에 우리 세무서 전체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잖아요.” 동문서답이었다. 아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답변이었다. 그래도 함께 일해 온 동료직원이 공무원으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파면을 당했는데, 동병상련의 말 한마디 없이 오히려 원망의 말을 쏟아놓을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그를 제2의 미네르바라 하여 구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는 마당에 정작 한솥밥을 먹었던 동료직원의 느낌이 전혀 딴판이었다.
그러면서 서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서장님 면담이 어렵겠습니다. 방금 나가셨습니다.”
뭐요? 점심시간까지는 20분도 더 남았고, 취재요청서까지 써가며 기다렸는데 나가다니요? 옥신각신 하는 사이 공무원노조 관계자들은 서장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서장실 문 앞에 연좌를 했다.
하지만 나는 “서장님 오시면 연락드리겠다”는 직원의 말을 곧이듣고 돌아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뿔사, 그런데 그로부터 30여분 뒤 나갔다던 서장이 방에서 나오더라지 않은가? 그리고 공무원노조 관계자들과 짧은 면담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뒤에 전해 들었다.
인터넷 용어로 ‘헐~’이라고 한다던가? 안타까움에 눈에 습기가 차오른다 해서 ‘안습’이라는 용어도 있다고 했지.
결국 막고 품는 것이 싸움의 정석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김동일 계장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 세무공무원들을 다시 보게 됐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앞으로 세무서를 상대할 때는 막고 품는 전법이 필요하다는 새로운 사실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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