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이라 하는 것은
나는 좀처럼 공개적인 게시판에 글을 쓰지 않는다.
더구나 실명을 요구하는 관공서 홈페이지에는 그렇다.
내가 써야할 공간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나주시홈페이지에서 지역에서 익히 알려진 언론인이 올린 글을 두고
사면에서 공격을 가하는 것에 의아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그 기자는 10여 년 전 나주시의 어떤 잘못에 대해 집요하게 글을 올리는 것을 보고 수소문 끝에
취재를 한 것이 인연이 돼 지금까지 알고 지내오고 있다.
나름 정의감 있고 열성적이고, 굴하지 않는 성격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이 기자는 나주에 뜨거운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생각지도 못했던 근거와 자료를 제시하며 자신의 주장을 폈고,
글이 올라오기가 무섭게 최고의 조회수를 갱신한다.
그런데 요즘은 공개적으로 그 기자의 글을 반박하는 글이 눈에 띈다.
심지어 ‘기자가 자기가 소속한 언론사에 글을 올릴 것이지 왜 관공서 게시판에 글을 올리느냐’는 둥
‘정치기자’라는 둥 다소 빈정거리는 댓글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 그 기자, 정공법으로 막아내고 있다.
“나는 기자가 되기 전부터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소통의 공간으로 시 홈페이지를 이용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요즘 나주에서 언론활동을 하는 기자들을 두고 말들이 많다. 저 기자는 누구 편, 저 신문은 누구 편.......
기자가 편을 두고 기사를 쓴다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자격상실이며, 기자에게는 최대의 ‘욕’이다.
정당한 비판에 대해서도 누구의 편이기 때문에, 누구의 편이 아니기 때문에... 하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우면서도 억울한 일이다.
객관적 공정성에 따라 공평무사한 언론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이럴 때 내가 바라보는 사람이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그 시대 홍문관, 사헌부, 사간원,
이 세 관서에서 일하는 관리들은 벼슬아치면서 언론인의 구실을 맡았던 사람들이다.
다산은 1810년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날 고향에 두고 온 큰아들에게
교훈적인 내용이 가득담긴 편지를 보낸다. 제목이「시학연가계(示學淵家誡)」라는 글이다.
“언관의 자리에 있을 때에는 모름지기 날마다 격언(格言)과 당론(讜論; 곧고 바른 의논)을 올려야 한다.
위로는 임금의 잘못도 공격하고 아래로는 알려지지 않은 백성들의 고통이 드러나게 해야 한다”고
명확한 정의를 내려 언관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를 거론했다.
가장 중요한 언관의 임무는 임금의 잘못을 공격해야 하며,
그 다음이 알려지지 않은 백성들의 고통을 통치자에게 상달하여 해결책을 강구하도록 촉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악한 관료들을 퇴출시킬 때의 원칙도 설명했다.
지극히 공정한 마음으로 처리해야지 치우친 의리에 근거하거나
당동벌이(黨同伐異:같은 당인과만 함께하고 타당인은 공격함)의 정신으로 처리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경고도 빠뜨리지 않았다.
다산 시대의 언관과 오늘의 언론인 역할에 여러 가지 다른 점이 많지만, 원칙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중앙언론이나 지방언론이나, 지역 언론까지...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매정한 몇몇 언론기관의 논조를 읽으면서,
다산의 언론관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후려친다.
나는 지금 어떤 입장에 놓여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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