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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김현임 칼럼… 나마스테

by 호호^.^아줌마 2009. 7. 11.

김현임 칼럼… 나마스테

 

이제 막 새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 심정이 될 때가 있다.

살면서 만난 어떤 말이 주는 큰 충격에 휩싸이는 순간이다. 그래서 속마음 깊숙이 간직하게 된 귀한 말, 아끼는 이들에게만 살짝 귀띔해주고 싶은 말들이다. 나마스테가 그렇다.


지금은 너무 알려져 불교국의 인사말 정도로 흔해진 말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  수 년 전 그 말이 내게 다가와 주던 감격, 한 밤중 잠 깨어 달빛 아래 드러난 눈 쌓인 마당을 보았을 때의 경외감 섞인 눈부심의 느낌은 여전하다.

 

타국에서의 에티켓을 다룬 책의 한 구절이었다고 기억한다. 법당 바깥에서 절할 때도 신발을 벗고 엄숙한 자세를 갖춰야한다고 했던가. ‘나는 당신께 온 몸을 바쳐 충성을 다 한다’는 오체투지의 경배어가 마치 내 온몸으로 흡입되는 것 같았다.

 

책을 읽다가 나마스테에 나는 다시 감격한다. 나마스테는 인도문화권에서 ‘당신에게 깃들여 있는 신께 문안드립니다.’라는 뜻이라고도 한다는 구절이 주는 서늘한 감회에 책장 가득 낙서를 하고 말았다.

 

요즘 내게 신탁된 운명, 그것에 대해 곰곰 되새김하는 날이 많다. 잘 짜 내리던 스웨터를 풀어 되짜기 하듯 지금까지의 내 인생의 경로를 샅샅이 살펴 뜯어보는 시간이랄까. 생의 등판도 앞판도 어지간히 완성되는 시점이다. 한데 잘 이어붙이기만 하면 되는 생이란 스웨터를 두고 나는 자꾸 조바심하고 있다. 애초 빚으려던 문양과 빛깔에서 어긋난 자책이다.

  

  나는 고운 성품 지니고

  그 위에 훌륭한 재능 더하여

  맑은 물가의 향기로운 풀을 몸에 걸치고

  연보라 난초꽃 꿰어서 노리개 만드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어라

 

굴원이 노래한 유년의 회상이다. 하지만 굴원처럼 자신의 능력에 만족한 사람은 드물다. 언젠가 읽은 크레용을 소재로 쓴 소설에서다. 삼원색에 흰색과 검정색이 추가된 크레용으로 출발하여 금색, 은색 두루 갖춘 구십 육색의 크레욜라 크레용까지, 크레용의 빛깔은 그 사람이 갖는 인생너비의 은유였다.

 

‘당신께 깃들여 있는 신께 문안드립니다.’ 바꿔 말하면 나마스테는 그러니 ‘네게 주어진 명운에 순응하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사실 모자람은 내 운명이었다. 나마스테, 나마스테 두어 번 되풀이하는 사이 내게 새겨진 신의 섭리를 비로소 해득한 듯 생의 결이 유순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