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9일 장마뒤끝 후텁지근하고 무더운 날씨,
금성산 산행을 마치고 나주시 대호동에 있는 천년고찰 심향사를 찾았다.
올해 들어 두 번째 방문이다.
심향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미륵원’이라는 이름으로 세운 절이다.
언제부터 심향사로 이름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신왕사’로 기록하고 있고,
미륵전 건물에서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정조 13년(1789) 무렵 까지는 ‘신황사’로 불렸던 듯하다.
고려 현종 2년(1011)에 거란군이 침입하자 현종이 이곳 나주로 몽진하여
나라의 평안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고 전하는데,
‘신황사(神皇寺)’라는 이름에서 황제 황(皇)자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임금이 이 절의 대법회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심향사 일주문이다. 문이 좁다.
이 좁은문에도 의미가 있을 터인데 사람들은 좁은문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이 곳 보다는 옆에 트인 공터로 드나든다.
경내에는 미륵전, 극락전을 비롯해 고려시대에 제작한 석탑과 석불이 남아 있다.
미륵전에는 석불좌상이 있으며, 극락전에는 아미타여래좌상이 있다.
특히, 심향사 아미타여래좌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9호)은 베에 칠을 한 건칠불상으로
고려시대 즉 13∼14세기경에 제작되어 고려말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모감주나무다.
심향사에는 모감주나무가 많다.
모감주나무는
열매로 염주를 만든다고 해서
염주나무라고도 하는데
세계적으로 희귀식물이란다.
6~7월이 되면 노란색 꽃들이
날아갈 듯 활짝 펼치다가
9월이 되면
마치 꽈리의 열매처럼
겉은 얇은 풍선 모양의
막이 둘러싸고 그 안에 까만 열매가
익는데 아주 단단하고
광택이 뛰어나 염주 재료로
사용된다.
6월에 방문했을 때 찍은 모감주나무 꽃
오잉?
저게 개냐, 사자냐?
심향사 문지기개, 귀염둥이 '차오차오'다.
중국 황실에서 키우던 개 종류라고 하는데 우연히 절에 들어오게 됐다고 한다.
덩치가 커서 첫 눈에 딱 보고 겁이 났지만
눈빛이 그리 매서워 보이진 않는 게
사나운 개는 아니어 보인다.
원래 이 개가 사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곰처럼 보이기도 한단다.
얼핏 보면 사자라고 오해하기 십상인 차오차오. 혀가 검다.
이전에 있던 이 개도 차오차오라고. 꼭 곰 같다.
심향사 경내에 있는 왕버들나무.
국립산림과학원 관계자가 이렇게 큰 왕버들은 처음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실제 크기는 이 정도나 된다.
원래 밑둥부분에서 두 갈래로 나무가 자랐는데 한쪽이 잘려져 나갔다.
같이 있었으면 꽤 귀했을 듯...
드디어 점심시간이다.
절에서 음식을 먹어본 적이 한번도 없다.
어렸을 때 초파일에 다보사에서 음식을 먹다 향냄새 때문에 기겁을 한 뒤
여지껏 먹어보려는 시도도, 먹어보라는 권유로 없었다.
식당에서 몇 번 사찰요리 전문가의 음식을 먹어 본 것이 고작이다.
기대된다.
주방 앞에 걸린 글귀가 의미심장하다.
금성산 야생차 탐사팀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전국의 차 관련 공무원과 박사들이다.
가장 특징적인 맛은 산초열매장아찌.
누군가 다이알비누 냄새가 난다고 한다.
정말 진하고 독특한 열매다.
작은 염소똥처럼 생겼다.
씹히는 맛이 '짜그락짜르락' 특이하다.
산마늘장아찌, 이파리로 밥을 싸서 먹는다.
정말 알싸하고 쫄깃하고 씹히는 맛이 좋다.
맛과 향이 일품이다.
지금까지 먹어본 장아찌요리 중에 으뜸이다. 줄기부분은 또 다른 맛이 난다. 진짜 맛있다.
호박잎을 손바닥에 펼치고 밥을 한 술 떠서 얹고, 막장을 살짝 얹어서 먹는다.
된장에 갖은 양념을 넣어 끓인 것이 막장이라고. 이것도 맛있다.
방앗잎부침개는 옆 사람이 접시째 가져다 놓고 먹는 바람에 못 찍었다. 어렸을 때 부침개 많이 해먹었는데...
방앗잎 향과 맛은 정말 독특하다. 천연의 향신료가 따로 없다.
음식이 전체적으로 싱겁지 않으면서 입에 딱딱 엉긴다.
재료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소박한 밥상 그대로의 상차림이다.
고기와 생선이 없는데도 이처럼 푸짐하고 넉넉한 상차림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그런데다 인공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니 보약을 먹는 기분이다.
그 뒤로 요리가 몇 가지 더 나왔다.
흑미떡, 잡채, 오이냉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온 입가심 음료가 압권이다.
선홍빛이 감도는 음료수를 보고 복분자차니, 포도쥬스니 말들이 많았지만 결론은...
포도주였다.
절에서 손님들에게 술도 주는구나...
식사가 끝나갈 즈음 심향사 주지 원광스님이 한말씀 하신다.
심향사 주변과 금성산 주변에 지천으로 자라나고 있는 야생차를 잘 가꾸고 개발해서 지역의 산물로 삼아야 한다는...
스님이 입고 있는 복장이 꽤나 럭셔리하다. 원래 승복이 그랬던가?
장례식이 있어서 예복을 갖춰 입으셨다고...
이전에 방문했을 때 원광스님이 주셨던 차맛이 그립다.
금성산 야생차는 일곱 여덟번을 우려도 똑같은 맛과 향이 난다.
이 작은 도시의 古刹에서 점심식사로 얻어먹은 한 끼를 통해
내 몸과 영혼이 갈구하는 바를 알겠다.
"네 몸의 다이어트가 필요하듯,
네 영혼의 군더더기, 네 생활의 군살도 빼야지.
더 이상의 풍요는 욕심이야.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낫게 되지.
죄는 뭐겠어. 죽음이잖아."
그렇다. 살기 위해서는 한 끼 식사에도 깨달음이 필요한 것.
그것은 감사와 봉사하는 마음이다.
"한방울의 물에도 절대자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 알의 곡식에도 많은 사람의 노고가 담겨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바로하여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이웃을 이롭게 하고자 이 식사를 대접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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