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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이야기

“불시점검 나가도 될까요?”

by 호호^.^아줌마 2009. 9. 6.

“불시점검 나가도 될까요?”

-칼날행정과 친절행정 사이에서-


요즘 공무원들이 행정을 하는 모습을 보면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어떤 공무원은 법규에 어긋난다며 칼날 같은 행정을 하고, 또 어떤 공무원은 규정대로 하면 탓 듣는다고 안 해도 될 친절까지 베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일이다. 시와 교육청, 농산물품질관리원 등 관계기관과 학보모단체 등이 합동으로 실시하는 학교급식 식재료 검수현장을 동행한 적이 있다.

 

물론 요청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취재 도중 우연히 계획을 알게 돼 따라붙은 것이다. 하지만 웬걸, 기자가 따라붙으니 염려되는 부분이 있었던지 일정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불시점검이라 당일 아침에 점검 대상학교를 정한다고 해서 7시 20분께 나주시 관계자와 통화를 하고 현장으로 나갔다.

 

하지만 학교 현장 방문은 9시로 늦춰졌고, 교육청에서 나온 공무원은 친절하게도 방문할 학교에 “학교급식 검수를 나갈 텐데 가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아닌가.

 

평소 같으면 7시10분부터 8시30분 사이에 모든 식재료가 도착하는데 9시까지 미뤄진 것도 마치 납품업체에 “검수 나가니까  알아서들 하라”고 귀띔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아예 공무원은 “나가도 되냐?”는 식으로 친절까지 베풀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 검수의 목적은 친환경 무농약 농산물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학교급식 식재료에 대해 농약잔류검사를 하는 것이었다. 만약 기준치에 어긋날 경우 해당 생산자에 대해서는 3년 동안 학교급식 납품을 할 수 없는 ‘패널티’를 가하게 되니 허투루 볼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긴장되고 긴박했어야 할 검수현장은 마치 잘 훈련된 조교의 시범을 보는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너무도 친절한 행정의 결과라고 보여진다.

 

이에 앞서 지난달 말쯤의 일이다.

농림수산식품부 장태평 장관과 민승규 제1차관이 남평농협에서 농민들과 행사를 가졌다.

 

변화되는 농업환경에 대한 교육과 농업현안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취지로 이뤄진 행사였다.

전남지역 농민회 간부들이 장관 방문을 저지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행사를 앞두고 긴장감이 감돌기는 했지만 장 장관은 이들 농민회 간부들과 예정에 없이 이뤄진 간담회도 의미가 있었으며, 이번 나주농민들과의 대화가 무척 고무적이었다는 소회를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 밝혔다.

 

그런데 문제는 행사가 끝난 뒤 참석자들과 지역민들 사이에서 시작됐다.

남평농협에서 장 장관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거리에 게시를 했는데 행사 이틀 전에 철거가 됐다는 것이다. 그것도 남평읍에서 철거를 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의문이 증폭되는 가운데 읍장과 담당 계장은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며 담당직원에게 책임을 돌렸다.

그런데 그 현수막을 거둬냈다는 공무원 왈 “시에 허가를 받지 않고 게시한 불법 설치물이었기에 철거를 했다”는 것이다.

 

소가 웃을 일이다. 그동안 수도 없이 이 지역을 오가며 봐온 사실이지만, 일반 친목단체 행사에서부터 학교 동창회니, 체육대회니, 또 솔밭유원지 문화행사니...

 

당연한 듯 게시돼 있던 현수막들이 아니었던가? 장관이 지역에 오는 것을 알리는 현수막이 불법게시물이라 해서 철거하는 나주시 말단행정의 칼날행정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 이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후일담을 기약하기로 하겠다.

 

행정의 모토가 ‘친절·신속·정확’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최근 지역에서 분출하는 집단민원을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 것인지 곰곰이 생각을 해본 결과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데 왜 저렇게 몰려와서 난리를 칠까?”

이렇게 생각하는 공무원이 있다면 책상에 앉아 서류로 일을 하지 말고 현장에서 지역민들의 마음을 읽는 행정을 펼쳐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