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김대중, 죽어서도 외롭다
지난 9일이었다. 남평 드들강(지석강)유원지에서 소설가 한승원 선생이 초청강연을 하던 중, 누군가와 귀엣말을 주고받더니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방금 서거하셨다는 소식입니다. 다 같이 애도하는 마음으로 묵념을 합시다.” 하는 것이었다.
순간 가슴이 턱 막히고, 눈앞이 깜깜해지는 느낌으로 한참동안 눈을 뜨지 못했다. 나중에 행사 진행자가 ‘위독하신 상태’라고 정정해주기는 했지만 고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는 이미 예고된 터였다.
그런데 결국 지난 18일 향년 85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셨다.
1987년 12월, 내 인생에 최초로 치른 대선에서 꿈과 열망을 모아 투표했던 분, 하지만 밤새 뜬눈으로 지켜본 결과는 쓰디 쓴 패배였고, 80년대 광주의 처절했던 몸부림을 눈앞에서 지켜봐야했던 나에게 김대중의 낙선은 곧 내 청춘의 좌절이기도 했다.
그렇게 고배를 함께 마시며 5년을 기다려 선거를 치렀건만 또 낙선, 이제 정계를 은퇴하신다는 말씀에 위로조차 할 수 없었던 무능한 유권자였지만, 그 다음 세 번째 치른 선거에서 나는 그를 당당히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내가 당선시킨 대통령 김대중,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고작 한 표를 드리는 것이었지만 거기에는 자주, 민주. 통일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실려 있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또 5년 뒤에 당선시킨 고(故) 노무현 대통령. 내 인생행로에서 각기 따로 만났던 분들인데 어찌 한 해에 다들 가시는 건지. 겨우 아물어가던 가슴애피가 다시 도진다.
대통령 김대중, 그런데 그는 죽어서도 외롭다.
국장으로 치르는 장례가 어찌 이리도 소홀한가? 사뭇 노무현 대통령 때와는 다른 분위기라는 게 이구동성이다.
국장이 결정돼 국회의사당에 빈소가 차려진 뒤에도 엉성한 장례의전과 어수선한 분위기에 조문객들의 불만이 쏟아졌고, 대부분의 자치단체에서도 단체장이 민주당 출신이 아닌 지역에서는 분향소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는 지적이다.
나주시가 시민회관에 분향소를 차린 것을 두고도 말들이 많다.
국장이라는 상징성을 살려 나주시청 대회의실이나 시청 앞 광장에 분향소를 차렸어야 마땅하다는 의견이다.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면 시민들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목사내아나 금성관을 분향소로 삼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상주로 참여하도록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필이면 인적이 드문, 나주지리를 썩 잘 아는 사람이 아닌 한 발걸음조차 하기 힘든 시민회관이어야 했느냐는 구설이 난무하다.
그런데 문제는 장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발 빠르게 분향소를 차리고 추모행사를 통해 추모의 정을 드높였던 나주지역 시민단체들이 이번 국장에는 왜 침묵으로 일관했는지 의아해하는 분위기다.
혹여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추앙이 현 정부와 집권여당에 대한 반발로 이어질까 두려워서 침묵하는 한나라당과 같은 맥락은 아닌지, 자신들과 뜻을 달리하는 민주당에서 상주를 자처하고 나선 것에 대한 반발심리가 작용한 것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미뤄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김대중 그는 적어도 대한민국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금자탑을 쌓은 민주주의 신봉자, 통일정책의 선봉장 아니던가? 굳이 호남대통령이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가 대통령을 지냄으로 인해서 소위 민주세력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독재의 서슬 퍼런 시대를 뛰어넘어 대접을 받았고, 통일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외칠 수 있는 시대를 맛보지 않았던가?
물론 천수를 누렸으니 호상(好喪)이라는 점에서 생이별로 생을 마감한 노 전 대통령과는 추모의 정이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할지라도 나주지역 시민단체들이 이번 국장에 보여준 태도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 전 대통령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민주와 자주 그리고 통일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마지막 임종하는 순간까지도 화합을 염원했다.
나주의 지도자, 정치인, 또 나주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시민운동가들이여!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두고 무엇을 계산하는가? 화합을 이루라는 유지(遺旨)를 듣지 못하는가? 제발 눈을 뜨고 가슴을 열기 바란다. 나와 뜻을 달리한다고 해서 적(敵)은 아니지 않은가. 아니, 때에 따라서는 ‘적과의 동침’도 할 줄 아는 성숙한 정치를 펼치기 바란다. 시민으로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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