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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이야기

범인은 먼 곳에 있지 않다

by 호호^.^아줌마 2009. 10. 30.

이런 넋두리 자체가 무책임하고 허무한 얘깁니다만,

왜 세상이 이렇게 갈수록 패악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27일 저녁, 아는 분과 저녁식사를 하던 중에 놀라운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오전에 봉사활동 차원에서 반찬을 돌리러 들른 할머니댁에서 살인사건을 목격했다는 것입니다.

혼자 사는 할머니였는데 반찬을 갖다드리고 인사를 하는데 인기척이 없어 방안을 들여다보니

잠자는 듯 누워있는 할머니가 기척이 없자 이상한 생각이 들어 119에 신고를 했는데 돌아가셨더랍니다.


저녁을 먹고 목격자 진술을 하러 나주경찰서에 간다는 말씀에 걱정이 되어 동행을 했습니다.


이 분의 진술과 경찰의 얘기를 이리저리 짜맞춰 사건을 구성해봤더니

혼자사시는 80대 할머니가 강도강간살해를 당한 사건입니다.


아마도 정신병자이거나 술 취한 사람의 소행일 거라는 추측과 함께

나주에 사이코패스가 출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오후 한창 회의 중에 목격하신 그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방송국에서 당시 목격상황에 대해 인터뷰를 해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저는 당연히 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분은 좋은 일도 아닌데 인터뷰를 하는 게 좋을 지 어쩔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되셨던 겁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을 쉬쉬하다보면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는 일이고,

제2, 제3의 모방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일수록 주변사람들이 목격자가 되어 단서제공을 하고 경찰의 수사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또 지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필요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어제 경찰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이틀 만에 범인을 잡았다는 겁니다.

 

참, 어처구니없게도 범인은 바로 이웃동네에 사는 60대 남자였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이웃에 사는 김 모(66)씨가 26일 밤에 

피해자 신 모(88세) 할머니 집을 찾아가 "잠시 잠을 자고 가겠다"며 안방으로 들어와 잠을 자던 중

이튿날 새벽 할머니를 성폭행하려다 반항하자 숨지게 했다는 겁니다.

얼굴에 심한 멍자국이 나있고, 늑골이 골절돼 있었는데 늑골이 심장을 눌러 숨을 멈추게 했다는 설명입니다.

 

경찰은 현장에 남아있는 캡 모자와 족적 및 타액을 채취한 뒤

인근 주민의 우발적 범행으로 판단하고 탐문수사를 벌이던 중 이웃주민으로부터

모자의 주인이 누구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김 씨의 가족을 상대로 확인 후

신발장에서 현장 족적과 같은 종류의 신발을 발견 증거를 확보한 뒤 주거지 부근에서 잠복 중

귀가하는 피의자 김 씨를 발견 범행사실을 자백 받아 긴급체포했다는 겁니다.


나주경찰, 박수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신속하게 사건을 해결해주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습니다.

목격자에게는 마음 깊이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이 분으로서야 평생 씻을 수 없는 악몽이 되겠지만,

그래도 그 날 이 분이 반찬을 갖다드리러 그 할머니댁에 가지 않았더라면,

할머니가 계시는 지 안 계시는지 관심있게 살펴보지 않았더라면...

아무도 찾는 이 없이 혼자 사시던 그 할머니의 주검이 언제까지 방치되었을 지...

생각만 해도 아뜩해집니다.


하지만 이런 일 때문에 ‘자나 깨나 이웃조심’이라는 불안감으로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암담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