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가족사랑 나주학생 글짓기 대회 ‘최우수상’ 수상작
우리 가족 이야기
봉황고등학교 3학년 양지혜
나는 부족하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아버지의 교통사고로 시골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도 생활에 불편함 없이 초등학교에 다녔고, 부모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채워주셨다. 그래서 난 우리 집이 잘 사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의 사업은 손댈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갔고, 그때부터 집안 분위기도 바뀌기 시작했다. 서로 이해해주고 아껴 주던 그런 가족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족 간에 웃음을 잃고 대화가 줄었다. 그리고 매일 보던 아버지의 얼굴을 6개월, 심지어 1년에 한두 번 정도 밖에 볼 수 없었다.
“엄마 왜 아빠 안 와?”라고 물어보면 늘 엄마는 “아빠가 좀 바쁜가 봐. 내일은 오실 거야.”라며 우릴 안심시켰다. 어린 나는 점점 갖고 싶은 물건을 가질 수 없게 되고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게 되자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아졌다.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엄마에게 상처를 주며 지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사정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부모님은 우리를 위해 합의 이혼한 상태였다.
그렇게 지금까지 아버지 밑이 아닌 엄마 밑으로 우리 삼 남매가 기재되어 있다. 아빠가 전국을 돌며 연락이 없을 때 엄마는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하시며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셨다.
엄마는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에 학생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호떡 장사를 했다. 오빠와 동생은 누구보다 엄마를 이해하며 도와드렸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어린 마음에 나는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그런 일을 하는 게 싫었다. 그리고 학교에 소문이 날까 봐 두려웠다.
다른 친구들은 자유롭게 놀기도 하고 사고 싶은 것도 마음껏 사며 최신 유행하는 것들을 따라가는데 나는 그럴 수 없다는 것에 화가 났고 자존심이 상했다. 일찍 찾아온 사춘기를 핑계로 나는 엇나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엄마는 우리가 잘못된 길로 빠져나갈까 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까 봐,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까 봐 남들보다 더 엄격하게 우리를 교육시켰다.
우리가 커가면서 엄마는 우리에게 솔직하게 가정사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지금은 사정이 어려워도 엄마는 오빠, 지혜, 홍제, 그리고 지금은 떨어져 있는 아빠, 우리 다섯 식구가 아픈 데 없이 건강하게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해. 경제적 어려움은 살면서 누구나 겪는 일이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냐는 것은 사람마다 생각하는 마음에 따라 다르다.”
엄마의 사랑 때문인지 내 철없는 반항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때쯤 연락이 없던 아빠에게 연락이 왔고, 집안 사정은 그래도 숨 쉴 수 있을 정도 여유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힘들수록 서로 등지고 가족을 멀리하고 어렸을 때 상처를 잊지 못해 피해망상에 잠기거나 자신감을 잃기도 한다.
나도 예전에는 누가 부모님에 대해 묻거나 학교에서 가족사항에 대해 물으면 거짓말을 한 적이 많았다. 무조건 행복하게 보이려고 이혼한 사실도 숨겼다. 그때는 그게 내 상처를 가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또 우리 가정사가 가십거리처럼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는 게 싫었다.
하지만, 거짓말할수록 고생하는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고 떳떳하지 못한 나 자신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엄마가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우리가 먼저 가족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나는 아직도 아빠와 떨어져 생활한다. 하지만, 숨길 이유가 없다. 요즘 사회가 어지러워 부모님 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두 분 다 건강히 살아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비록 매일매일 얼굴을 보며 이야기할 수 없지만 떨어져 살아도 예전보다 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누구보다 더 애틋한 마음을 가지며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오빠는 군대에 가게 되고 나는 고3이 되어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고, 동생은 고1이 되었다. 우리가 커가면서 엄마의 얼굴은 주름이 늘었으며 흰 머리가 생겼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바르게, 예쁘게 컸단 말을 자주 한다.
그것은 외적인 면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 어려워도 늘 웃으면서 어른들께 인사를 하며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하신 말씀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정말 철이 없었고 엄마의 속을 썩였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이해심 있고 가족에 대한 사랑도 남다르다고 자부하고 있다.
또한, 그런 아픔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도 쉽다고 생각한다. 엄마에게 늘 표현을 못 할 뿐이지 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누구보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매일 툴툴거리며 투정을 부리게 되는 것도 결국엔 엄마와 딸, 사랑하는 가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친구가 가족에 대해 물어봐도 웃으면서 이야기해 줄 수 있을 만큼 컸고 마음의 여유도 생겨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던 것들도 편하게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을 만큼 험난하고 어려운 일이 많이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정상적인 가정을 가진 사람들이 줄어들고 저마다 아픔을 숨기며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추위에 떠는 사람, 배고픔에 쩔쩔매는 사람, 먼 외지에서 부모님을 등진 채 바쁜 현실에 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해마다 우울증 등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현실적인 장애를 가지고 자살하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나는 남들보다 잘사는 것도 아니고 남들처럼 부모님의 좋은 배경으로 쉽게 인생을 살 수도 없지만,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따뜻한 품 안에서 새로운 도약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돈이 없다고 작아질 이유가 없다. 떨어져 산다고 가족이 아닌 게 아니다. 난 가족이 있기에 언제나 혼자가 아니다. 어느 곳이든 내 능력을 발휘할 곳은 존재한다. 고로 나는 포기하지 않으며 지쳐 쓰러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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