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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이야기

남도, ma님과 한바퀴 휭~ 돌아보기

by 호호^.^아줌마 2009.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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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 ma님과 한바퀴 휭~ 돌아보기

 

 

 

여름부터 시작된 호호아짐의 성화에

남도로 가을여행을 결심하게 된  alongma 님이

2009년 11월 13일 KTX편으로 광주에 도착했다.

 

목사내아 금학헌 누추한 방에서 첫날밤을 지내시고

이튿날 아침 남도 한바퀴 휭~ 돌아보자고 나섰다.

 

 

첫 번째 행선지는 나주향교.

나주향교는 교동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어서 

나주사람들에게는 무척 가깝고 친숙한 곳이다.

원래 향교는 성(城)밖에 세우도록 하고 있어서 나주읍성 중 서성문 밖에 있다.

지금 서성문 복원이 한창인데 내년에 완공되면

나주향교와 서성문이 어울려 더 좋은 볼거리가 될 것 같다.

향교에 들어서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은행나무들.

대성전 앞뜰에 두어 그루, 명륜당 뒤안과 숙소인 서재 뒷편에 여남은 그루의 은행나무가

가을정취를 물씬 풍긴다.

특히, 수령이 6백년이나 된다는 아래 은행나무는

향교의 역사와 전통만큼이나 위엄있고 당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나주향교는 규모나 격식 면에서 전남 제일의 향교일 뿐 아니라,

남아 있는 것을 기준으로 할 때 전국의 향교 가운데서도 가장 빼어난 곳으로 손꼽힌다.

1398년(태조 7)에 창건되었다 하나 정확한 근거는 확인할 수 없다.

1597년(선조 31)에 교복(校僕)인 김애남이 정유재란으로

향교가 위태롭게 되자 죽음을 무릅쓰고 성묘(聖廟)의 위패를 금성산으로 옮겼다가

왜병이 물러간 후 다시 안전하게 봉안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조정에서 듣고

그를 위해 사우를 건립토록 하였다는 내용의 충복사유허비(忠僕祠遺墟碑)가 남아있다.

  

  

나주향교 대성전은 1963년 9월 2일 보물 제394호로 지정되었다.

 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에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대성전은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교육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명륜당보다 위쪽에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주향교는 공자의 아버지를 모시는 계성사가 있어

명륜당과 대성전의 자리가 바뀌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나주시청 앞 국도 13호선변에 있는 완사천.

 

완사천의 유래는 이렇다.

906년, 궁예가 서울을 다시 철원으로 옮길 것을 정하자

왕건은 군사를 이끌고 궁예의 뒤를 따라 새 서울 철원으로 가게 되었다.

이 때, 왕건의 나이 29세였다. 왕건의 군사가 나주에 이르렀을 때,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왕건은 군사들을 마을 어귀에 멈추게 하고, 마을을 찾아 들어갔다.

왕건이 샘을 발견했고, 문득 버드나무 아래에서 한 처녀가 물을 긷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왕건은 말에서 내려 천천히 버드나무 아래로 다가갔다.

왕건은 오씨 처녀에게 물을 권했고 처녀는 말없이 일어서더니 버들잎을 주르륵 훑었다.

그러더니, 그 잎을 씻어 물을 뜬 바가지에 띄워 왕건에게 두 손으로 공손히 바쳤다.

왕건은 바가지에 떠있는 버들잎을 후후 불면서 물을 마셨다. 물을 다 마신 후 왕건은 오씨 처녀에게 버들잎을 띄운 이유를 물었고, 처녀가 대답하길 목이 몹시 마를 때 급히 물을 마시면 체하기 쉬우니 천천히 드시라고 띄웠다는 것이다.

왕건은 다시 한번 처녀를 바라보았다. 맑은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얼굴에는 덕성스러운 기운이 감돌았다.

그 인연으로 왕건에게 일생을 맡겨 그 왕자가 고려의 태자가 되었고, 태조의 붕어 이후 왕위(고려 2대 혜종^^)에 오르게 되었다. 완사천 샘가에는 나주 오씨 문중에서 세운 장화왕후 기념비가 서 있다.  

 

 

 

영산포에 남아있는 일제시대 동양척식주식회사 문서고와 일본인 저택을 보려고 했으나

대문이 굳게 닫혀있는 바람에 근처에 있는 담쟁이 덩굴만 담아왔다.

 

 

바로 이렇게 생긴 집인데...

얼마전까지만 해도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었는데

검정색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광주에 사는 반씨 집안에서 휴양지로 쓴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 있다.

 

영산포에는 일본인 대저택 두 곳이 있는데 당시

영산포 일대의 최대 농토 소유자였던 ‘구로즈미’는

모든 건축자재를 일본에서 들여와 집을 지었다고.

 

지금도 온전히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그의 대저택과 이곳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문서고는 일제 수탈의 역사를 그대로 드러내 주는 대표적 상징물이다.

 

 

 

동척 문서고 앞뜰에 있는 나무.

담장 너머로 윗부분과 찍었다. 

그런데 가지 많은 나무는 정말 바람 잘 날이 없을까?

 

 

주영상테마파크.

나주시 공산면 신곡리에 있다.

주몽, 이산, 일지매, 태왕사신기, 바람의나라, 쌍화점 촬영지

 

 

비상하는 삼족오와 어깨를 나란히 한 ma님

  

 '삼족오의 비상'이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조각가 김숙빈이 청동으로 만든 3,300×1,700×1,900mm의 동상이다.

삼족오란 고구려벽화 성신도(星辰圖:천체의 그림)에서 나오듯이

우리 역사 속에서 우리민족의 태양과 같은 존재로 섬겨져 왔다.

주몽을 비롯한 역사 속의 장군들과 로보트 태권브이가 합성된 형태로

지하에서 힘차게 기상하는 우리민족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발전을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 열강 속에서 우리나라는 유구한 역사와 민적적 자긍심으로

광개토대왕이 넓은 대륙을 정벌하였듯이

우리민족이 무궁한 잠재력과 저력으로 비상하기를 바라는 희망을 담았다 한다.

  

 

테마파크 안에서 만난 또 다른 볼거리 명화미술관

고흐, 밀레 등 유명 화가들의 명작을 모조품으로 전시해뒀다.

클림트의 여인 유디트가 어떤 남성과 포옹하는 장면이 바로 눈에 띈다.

  

 

오 예~~

토종닭들이 마음대로 돌아댕기며 자라고 있어요.

신맛도 아닌데 왜 침이 고이는 걸까?

 

 

테마파크 나가영 대리와 함께 한 ma님.

나 대리는 중학교 동창이다. 덕분에 뜨끈한 커피 한 잔 얻어 마셨다.

 

 

테마파크에 기거하며 죽물공예를 선보이는 김막동(79) 할아버지 내외.

두 분이 만든 죽물은 주변에 지천으로 자라난 대나무를 사용한다.

3대째 이어온 일이고, 김 할아버지 역시 70년 가까이 해 온 일인데

자치단체건 정부건 너무도 무심하다는 서운함을 토로하신다.

이 일도 이 분들 아니면 명맥이 끊어질 텐데

기능전수를 할 수 있도록 문화재 지정이든 장인 지정이든 좀 해드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옛날, 학교에서 돌아와 부엌 천정에 걸어둔 이 소쿠리에서 밥을 덜어 먹고

들에 나가 일하시는 부모님께 새참을 갖다드리곤 할 때 사용했던 소쿠리다.

마침 집에 홍시 몇 개가 있는데 초파리가 날아들어 귀찮게 하길래 담아두면 좋겠다 싶어

ma님과 하나씩 샀다.

하나에 2만원이라니 비싸기도 하지만 평생의 업으로 일을 해오신

두 분에게 대한 예우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 담뱃대 꼬나문 밤송이 머리의 총각

아마도 김막동 할아버지의 아들이 만든 작품이리라.

지난 여름 딸이 이곳에 와서 대피리를 얻어온 것과 상관이 있을 것 같다. 

 

 

 

ma님은 송일국 팬.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지긋이 눈까지 감으셨다.

소서노, 너 낚였다.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고분군을 지나쳐왔다.

아파트형무덤으로 유명한 곳이다.

 

 

 발굴현장을 배경으로...

 

저런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들은 비애 한가지.

고분이나 문화재 발굴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래도 고고학이나 사학과 출신 석사, 박사가 대부분인데

지나가던 어르신이 아이들에게 타이르시며 하신 말씀이란다.

"쯧쯧... 느그도 공부 안 하고 삔질거리면 저렇게 된다잉? 알듯냐?"

"헐~~~~"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 나주천연염색문화관에서 

 

 

    

 

   

  

 

빛으로 색으로 마음으로...

예藝 잡雜 전(展)

 

 

우리나라 최초의 목분공예가

안명수 씨와 함께.

 

원래 목공예를 전공한 안 씨는

우연히 톱밥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톱밥을 이용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생활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자신의 예술영역으로 만들어 가는 일. 그런 삶 자체가 바로 예술이 아닐까?

 

그런데 두 분이 닮아보이는 것은 어인 일일꼬? 

  

 

 작은 것 하나에도

세심한 관심을 보이는 ma님. 

  

 

아침부터 쌀쌀하더니만 점심나절부터 날씨가 저녁 굶은 시어머니상이다.

그런데 혹시 ma님도?

아침을 못 챙겨드렸다.

곰탕을 대접해드리려고 했는데

원래 아침을 안 드신다는 말씀에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다 그만...

그런데다 점심까지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버렸다.

점심은 홍어정식으루다...

 

 

홍어애 얼린 것이 먼저 나와 기름장에 찍어먹고 있으면

홍어회무침과 홍어삼합이 나온다.

홍어삼합 맛있게 먹는 방법.

김을 한 장 깔고 그 위에 홍어 초장 찍어서 놓고

삼겹살 놓고 홍어젓갈로 담은 3년 묵은 배추김치를 얹어서

먹으면 맛있다.

그 뒤로도 홍어튀김, 홍어전, 홍어애국이 뒤따른다.

그런데 이렇게 홍어로만 먹다보니

속이 좀 쓰린다.

뭔가 보완할 디저트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영광 불갑사 입구.

이 고운 미소의 여인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불갑사 들어가는 길

나무다리 위에 서서 나에게 웃음을 지어 보이는 이 여인은...

 

 

첩첩산중에 있는 절 치고는

제법 평탄하고 주변이 어지럽지 않다.

한창 관광철인데도 사람들 발길이 뜸하다.

덕분에 아주 여유롭게 단풍구경을 할 수 있었다.

 

 

붉음과 초록의 극단의 대비

불갑사 들어가는 길 옆으로

이런 오솔길이 조성돼 있다.

아무래도 초록은 외래종같다.

 

 

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온유함과 선한 눈매를 가진 이 여인,

단풍이 그녀를 빼닮았다. 

 

 

 

 

 

 

 낙 엽


레미 드 구르몽(1858~1915)


시몽, 나뭇잎 떨어진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몽,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위에 흩어져 있다.

시몽,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몽,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몽,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몽,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모악산에 있는 불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1909년에 쓴〈불갑사창설유서 佛甲寺創設由緖〉에 의하면

384년(침류왕1)에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창건했고,

805년(애장왕 5)에 중창했으며

그 뒤에도 여러 차례의 중창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각진국사(覺眞國師)가 머물면서부터 크게 번창했는데

당시에 머물던 승려는 수백 명에 이르렀고,

사전(寺田)도 10리에 달했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80년에 중건한 뒤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팔상전·칠성각·일광당·명부전·요사채 등이 있다.

이밖에 각진국사비(1359)와 여러 점의 부도가 있고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거상인 사천왕상이 있다.  

 

 

저 물 한 모금 마심으로

마음을 씻을 수 있다면

한 바가지 떠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끼얹었으면 했는데

앗, 추워라!!!

물 마실 엄두도 나지 않은 호호^L^

 

 

 

  이 곳 대웅전 안팎에는 나한을 그린 나한도를 비롯해

까치와 학 등을 표현한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고 하는데

왜 들여다 볼 생각을 못했을까?

 

원래 부처님을 모신 좌우 벽면에 매화도가 그려져 있고

그 안에 졸고 있는 까치의 모습이 표현돼 있었는데

지금은 훼손이 심해 까치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 한다.

 

하지만 벽화와 관련된 설화는 아직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설화에 따르면 어느 화사(畵師)가 대웅전에 벽화를 그리면서

절대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하지 말란 짓은 더 하고 싶은 법.

결국 사람들은 그림 그리는 모습이 너무 궁금한 나머지

화사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안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그러자 벽화를 그리던 화사는 그만 피를 흘리며 죽었고,

그 피가 까치가 되어 날아갔다는 전설따라 삼천리~

Believe or not.  

 

 

  

    

 

불갑사는 가을 뿐만 아니라

봄과 여름, 겨울까지 공존하고 있는 말 그대로 묘한 세상이다.

개망초에서 동백까지

천연기념물 112호인 참식나무에서 삼나무까지...

ma님은 곧고 푸르고 정갈하게 자라난 삼나무에

무척 관심을 보이셨다.

아마도 동질감이었으리라.

 

 

 

영광 백수해안도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중

전국에서 9번째로 아름다운 도로에 선정된 곳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갓봉 줄기가 서해바다를 향해 내달리며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에 맞추어 조성한 급경사지대에 닦여진 도로라서

동해안을 뺨치는 풍경들이 전개된다.

 

 

백사장에 모여 앉은 갈매기떼. 

 

비가 오락가락 하는 바람에 서해낙조를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드넓게 펼쳐진 수평선과 하늘, 출렁이는 파도에

여심이 따라서 출렁거렸다.

 

 

 

금방이라도 바닷물이 넘실거릴 정도로 가까운 곳에 구불구불 조성된 아름다운 길로

때로는 물이 빠져 나가 헐벗은 갯벌을 드러내기도 하고 때때로 맑고 푸른 물이 출렁거릴 때도 있다.

영광 백수읍 백암리 석구미 마을에서 대신리를 거쳐

원불교 성지가 있는 길용리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총 16.5㎞에 이르며

해안절벽과 만나는 해안에는 거북바위, 모자바위 등의 멋진 바위들이 솟아 있는가 하면

고두섬을 비롯 여기저기에 암초들이 자리를 잡아 풍경에 변화를 주기도 하며

멀리 칠산도, 안마도, 송이도 등 여러 섬을 바라보며 드라이브를 즐길 수가 있다.

 

 

나는 ma님을 찍고

ma님은 나를 찍고

두카메라의 조우다

 

 

 

 

 有朋而 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이 자원방래 불역락호)

나에게 서울ma님이 계셔

그 머나면 길을 달려 남도를 찾아주니

어찌 반갑지 아니하랴.

서울ma님과 시골아짐의 만남에 남도가 들썩였던

하루였습니다.

 남도, ma님과 한바퀴 휭~ 돌아보기

다음편을 고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