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도 칼레의 시민처럼
흔히 힘 있는 자나 가진 자, 사회지도층 인사의 도덕적 의무 등으로 불리는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서양세계에서 일종의 전통과도 같은 것이었다.
전성기 로마에서는 엘리트 귀족의 자제들이 17세가 되면 군대경험을 쌓고 무보수로 공직생활을 경험하면서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경력을 쌓았다. 그들은 귀족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종종 자신의 재산을 털어 공공기관 및 가도를 짓기도 하였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이나 ‘양 아흔 아홉 마리 가진 부자가 가난한 농부의 한 마리 양을 탐내는 것’과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행동양식이다.
그런데 사회지도층 인사들 즉, 가진 자의 의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실화가 있는데 그것은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벌인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작은 항만도시 칼레라는 시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1349년 9월 잉글랜드 군대는 프랑스 북부의 칼레시를 포위한다. 칼레시는 이듬해 여름까지 11개월간이나 저항했으나 프랑스정부의 지원이 없자 결국 항복을 결정하게 된다. 칼레시의 항복사절은 도시 전체가 불타고 모든 시민이 처형되는 운명을 면하기 위해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게 되고, 에드워드 3세는 항복의 조건을 내놓는다.
“좋다. 시민들의 생명은 보장하겠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동안의 이 어리석은 저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들 중 시민 대표 6명이 나서서 교수형에 사용될 밧줄을 목에 걸고 맨발로 잉글랜드 진영으로 와서 도시의 열쇠를 건넨 후 교수형을 받기를 감수한다면 나머지 시민들과 도시를 살려주겠다.”
칼레의 시민들은 끝내 항복하게 됐다는 패배감과 그럼에도 대다수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 그러나 이를 위해서 자신들 가운데 여섯 명은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불안감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이때 이 도시에서 가장 부자인 ‘위스타슈 드 생피에르’라는 사람이 먼저 죽기를 자처하고 나서고, 시장과 법률가, 상인 등 도시의 귀족들이 하나 둘 묵묵히 자원한다. 그러다보니 지원자가 일곱 명이나 된다.
이에 위스타슈는 “내일 아침 광장에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빼자”고 제의하고 모두 이에 동의한 가운데 고통과 고뇌의 마지막 밤은 깊어갔다. 이튿날 이른 아침, 광장에는 위스타슈를 제외한 여섯 명만이 모였다. 어찌 된 일일까?
곧이어 위스타슈가 전날 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는 죽음을 자원한 나머지 사람들의 용기가 약해지지 않도록 칼레의 명예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칼레의 시민 여섯 명은 비장하게 에드워드 3세 앞에 나아갔고 모두 처형을 눈앞에 두게 된다. 그러나 이 소식에 감동한 잉글랜드 왕비의 간청으로 에드워드 3세는 그 용감한 시민 6명을 사면하게 된다.
결국 칼레의 용감한 시민 여섯 명이 죽음을 각오한 것에서 역사는 그들에게 해피엔딩을 안겨준 것이다.
요즘 나주사회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온통 선거열풍에 휩싸여있다. 나주를 대표해서 정치를 해보겠다는 선량들의 각오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그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백척간두에 선 나주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버릴 사람을 선발하는데도 그렇게 당당하게 나설 수 있을 것인지.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질 것’이라는 성경구절이 그 답을 대신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가 지금 축제를 열어야 하는가? (0) | 2010.04.05 |
---|---|
나주시, 오불관언(吾不關焉) 놀이하나? (0) | 2010.03.27 |
도대체 자네라는 말이 어쨌다고들 그러시는지... (0) | 2010.03.15 |
똑바로 가는 교육을 위해 (0) | 2010.03.13 |
밀레니엄 베이비 용띠 딸아이의 꿈 (0) | 2010.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