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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이야기

<알 수 없는 내일>작가 문순태 “우연은 없다”

by 호호^.^아줌마 2010. 5. 27.

◇ <알 수 없는 내일> 저자 문순태 씨는 광주학생독립운동과 5·18민중항쟁은 역사적 필연에 의한 사건이었음을 강조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에서 5·18민중항쟁까지  

 

<알 수 없는 내일> 작가 문순태 “우연은 없다”

 

나주학생독립기념관 주최 저자와의 대화에서 


“날이 갈수록 광주학생독립운동이 희미한 역사의 기억 속으로 멀어져가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습니다. 3·1운동과 8·15는 알아도 11월 3일은 모릅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에서 5·18민중항쟁까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은 없습니다. 그것은 필연이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역사 장편소설 <알 수 없는 내일>을 펴낸 작가 문순태 씨의 일갈이다.

 

지난 19일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주최로 열린 저자와의 대화에서 문순태 선생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뿌리는 나주였으며, 그 이면에는 궁삼면 토지투쟁을 이끈 나주 민중의 힘이 원동력이 됐다고 밝혔다.

 

<알 수 없는 내일>은 나주 영산포를 배경으로 한 장편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의 후속편으로 우리지역의 이야기이자 역사적 사건인 광주학생독립운동을 다루고 있다.

 

문순태 작가는 “동학농민운동이나 5·18민중항쟁은 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높아 그 위상만큼의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으나 아직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대한 연구와 자료 확보는 미진한 상태”라면서 “나는 이 소설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게 된 정치적, 사회적 배경과 그 배후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단순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처가가 영산포(부덕동)인 것을 계기로 소설 <타오르는 강>을 집필하게 됐다는 문 작가는 이번 <알 수 없는 내일>의 주인공 양만석이 자신을 양반집 자식으로 알고 온갖 위세를 부리다 나중에 자신이 노비의 핏줄을 받았다는 사실에 절망, 일본유학을 떠났다가 사회주의자가 되어 돌아온다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한편,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은 경술국치 100년, 5·18민주화운동까지 3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근·현대를 배경으로 나주지역의 이야기를 써내려간 작품을 통해 우리지역의 역사적 의미를 조명해보는 시민역사교실을 운영한다.

 

그 일환으로 지난 19일 첫 강의를 시작으로 오는 10월까지 진행되는 역사교실은 ▲6월16일 ‘나주학생독립운동의 배경 및 일제침탈(김남철, 나주고 교사)’ ▲7월14일 ‘학생독립운동과 청년단체의 활동(이기훈 목포대교수)’ ▲8월18일 ‘근대교육과 학생독립운동의 정신계승(박만규 전남대역사교육학과 교수)’ ▲9월15일 ‘일제의 나주 토지수탈과 수리조합(박태선 전남대역사교육학과 출강)’ ▲10월 20일 ‘일제강점 100년과 나주(한규무 광주대교수)’를 주제로 열린다.

 

아울러 다음달 26일 영산포·목포 근대문화권역을 찾아가는 1차 현장답사와 10월 23~24일 부산 근대문화권역 ‘다른 고장으로 떠나는 근대여행’ 등의 2차 현장답사도 함께 이뤄진다. 

 

 

 

 

‘광주학생독립운동’ 우발적 사건 아니다


문순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일제에 저항하여 일어났던 대표적인 민족운동의 하나이다. 그 규모나 역사적 의의에서 볼 때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우리 민족적 자존감의 표상이며 광주정신의 뿌리이기도 하다.

 

광주정신은 동학농민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5.18 광주민중항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학농민운동과 항일의병전쟁, 광주학생독립운동, 5.18 광주항쟁은 모두 민족적 민주적 자존을 찾기 위한 저항으로 동일한 역사 선상에 있다.

 

  그동안 동학농민운동이나 5.18광주항쟁은 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높아, 그 위상만큼의 역사적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아직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대한 연구와 자료 확보는 미진한 상태이다. 오히려 군사독재시대 ‘학생의 날‘을 폐지하여 그 역사적 가치가 훼손당하기까지 했다.

 

특히 동학농민운동이나 5.18광주항쟁에 대해서는 문학적 형상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그 정신 계승에 지침이 되고 있다. 이에 반해 일제 강점기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유신시절에 폐지되었던 ‘학생의 날’이 10년 만에 부활되었을 뿐, 학자들의 광범위한 연구와 작가들의 문학적 성과는 매우 미흡하다. 특히 소설적 형상화는 전무하다. 60년대 초, 시나리오 작가 최금동씨가 쓴 <이름 없는 별들>(영화)이 전부이다.  그나마 아쉽게도 그 내용도 한. 일간 학생들의 마찰 때문에 우발적으로 일어난 단순사건으로 전개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게 된 정치적 사회적 배경과 그 배후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단순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말 하고 싶었다. 우발적이라고 한 것은 이 운동을 단순화시켜 역사적 가치를 훼손시키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성격을 제대로 밝히기 위해서는 사회. 정치적 배경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있어야 한다. 당시 사회. 문화적 환경을 보면 3.1운동이후, 일제의 기만적인 문화정책과 1929년부터 시작된 세계대공황과 20년대 이후 노동자 농민과 학생운동의 성장 등 국내외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광주학생독립운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특히 동경 유학생들에 의해 20년대 초부터 광주지역에도 사회주의 사상이 유입하였고 이들을 중심으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회과학 학습이 시작되었다. 1926년 당시 광주고보 학생인 장재성 등이 비밀리에 조직한 ‘성진회’를 중심으로, 교육을 통해서 치밀하게 준비해왔다. 이들은 일제의 차별교육에 저항하는 강한 민족의식을 지니고 민족의 독립을 위해 사회주의 사상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광주청년동맹 등 여러 사회단체들이 집결해 있던 흥학관(興學館)을 출입하면서, 일본유학에서 돌아와 사회과학이나 조선 역사를 강의하는 청년들과 자주 만나 사상적 영향을 받기도 했다. 성진회가 해체된 후 이들은 ‘독서회’ 를 주축으로 항일운동의 역량을 키웠으며 마침내 11월 3일 폭발하게 된 것이다. 

 

 광주학생운동에서 학생들이 그 중심세력을 이루고 있으나 신간회. 근우회. 조선청년동맹 등 당시 주요사회단체와 성진회. 독서회. 조선학생전위동맹 등 비밀결사의 지원활동도 적지 않았다. 따라서 이 운동에는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다양한 정치. 운동세력이 관련되었다. 이념적으로도 일제의 억압에 대한 저항과 식민지 교육에 대한 불만을 바탕으로 하여, 민족주의 사회주의 등 다양한 사상이 중첩되기도 했다.  

 

 11월 3일 일어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30년 3월까지 5개월 동안 국내 194개교 5만4천명이 투쟁에 가담, 광주에서만 1백 70명이 재판을 받았다. 이후 항일민족의식이 불붙어,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억압과 수탈에 대한 항일민족 해방 투쟁의 전국적 확산을 가능케 했고 그 영향으로 30년대 항일민족운동 전개는 물론 소작쟁의 등 농민운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우리 근대사에서 대표적인 민족투쟁으로 그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큰데도, 보다 심층적인 연구가 미흡하고 문학적 형상화가 전무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첫 번째는 분단 상태에서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군사정권의 비민주성 때문이었다. 학계에서도 이데올로기적인 제약으로 사회주의와 관련된 부분은 모호하게 축소해서 서술하고 민족주의적인 면만 부각시켰다. 특히 일부 주요 관련인물의 경우, 사회주의와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더욱이 안타깝게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끌었던 핵심 인물들은 6.25 때 후퇴하던 경찰에 의해 처형당하고 말았다. 대표적인 인물 장재성도 광주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사상범으로 몰린 1백20명과 함께 집단 처형당했다. 일제 강점기 민족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대부분 사람들이 그랬듯이, 광주학생독립운동 중심인물 역시 민족주의. 사회주의 노선이었다. 이들 중에서 사회주의자들은 군사독재 기간 반공이데올로기에 묶여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역사의 그늘 속에 묻히고 말았다. 다행히 참여정부로부터 이들의 역사적 공적을 인정받았다. 따라서 이제 통일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전체 민족주의 차원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새롭게 조망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그동안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대한 연구가 광주중심이라는 지역성을 극복하지 못한 이유 때문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광주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전남 곳곳을 비롯하여 서울 부산 등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그 불길은 만주 일본 등 해외까지 번져나갔다. 전남에서는 29년 11월 3일 이후, 목포, 나주,함평,여수.담양,순천.옥과.창평 등 전남 여러 곳의 학생들이 가담했고 서울에서는 2차에 걸친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12월 9일에 시작하여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서울의 대규모 시위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이후, 개성.부산.평양.함흥.춘천.회령.진주.전주.정읍.청진.김해 등 194개 학교에서 광주 운동에 호응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그 투쟁의 불길은 연길. 용정. 간도. 상해. 도쿄. 오사카 등 해외까지 퍼져나갔다.

 

  세 번째는 그동안 광주학생독립운동과 관계된 단체와 지역사회. 학자들의 역사적 책임의 소홀함과 무관심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유관기관에서 ‘학생의 날’ 부활과 매년 학술대회를 여는 등 그 공적을 인정하지만, 자료정리나 폭넓은 연구 기념사업 등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올해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난 지 80년이 된다. 그리고 20년 후면 1백주년을 맞는다. 80주년을 맞고 1백년을 준비하기 위해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그 위상에 합당한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할 뿐만 아니라, 보다 충실한 연구와 자료 확보, 그리고 종합적인 기념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운동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생존 시에 육성녹음을 통해 생생한 증언을 확보하여 당시 사건에 대해 완전하게 복원작업을 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날이 갈수록 광주학생독립운동이 희미한 역사의 기억 속으로 멀어져가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3.1운동과 8.15는 알아도 11월 3일은 모른다. 특히 광주시민들 중에서도 5.18은 알아도 학생의 날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제 80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1백주년을 준비하기 위해,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역사적 위상에 맞는 자리매김을 하고 보다 인식을 확대하여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나는 이 작품에서 철저하게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었다. 또한 취재를 통해 확인된 인물은 모두 실명으로 표기하였다. 다만 소설적 구성을 위해 논픽션과 픽션을 적절히 배합시켰다. 이 때문에  유족들로부터 광주학생운동에 가담하지도 않은 인물들이 왜 등장하느냐고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소설적 구성을 위해 가상인물을 등장시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학생독립운동 사건을 중심 줄거리로 설정하고, 당시 정치. 사회적 환경과 함께 픽션을 덧붙인 것이다 . 픽션 부분은 88년에 출간된 <타오르는 강> (전 7권. 창작과 비평사)의 후속 이야기이다.  

 

     

문 순 태

1941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 숭실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5년 <현대문학>지에 시가 추천되고 1974년 <한국문학>신인상에 소설

<백제의 미소>가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작품집으로 <징소리><철쭉제><된장><울타리><생오지 뜸부기> 등이 있고

장편소설< 타오르는 강><성자의 지팡이> <그들의 새벽><41년생 소년>등을 발표했다.

광주시문화예술상. 한국소설문학 작품상. 이상문학상 특별상. 요산문학상.

한국 가톨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06년 광주대학교에서 정년퇴직하여 고향 담양에 <소설창작대학>을 열고

후진양성과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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