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수성최씨 일가족 4명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광복 65주년 기념식에서 故 최택현·광현·병현 형제와 아들 윤용
유족들 “만시지탄이나마 선조의 구국항쟁 얼 빛 보게 돼 기뻐”
1909년 음력 8월 10일 함평군 학교면 진례 들판. 최택현(48), 최윤용(26) 부자와 최광현(55), 최병현(47) 등 네 명이 들판에 세워둔 나무 형틀에 묶였다. 죄목은 의병운동을 했다는 것. 이들 네 사람은 나주의 명문가인 수성(隋城) 최 씨의 일가들로 한날한시에 일본군이 쏜 총에 살해됐다.
일주일 뒤인 1909년 음력 8월 17일. 시아버지(최택현)와 남편(최윤용)의 장례를 치른 나주 임(林)씨는 큰 돌을 가슴에 안고 동네 우물에 몸을 던졌다. 수성최씨 대종회 최병석(72) 서울지부회장은 “우물에서 발견됐을 때 치마에 돌이 묶여 있었다고 집안 어른께 전해 들었다”고 전했다.
제65주년 광복절을 맞아 의병활동을 하다 순국한 나주 수성최씨 일가 네 명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정부는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광복 제65주년 기념식에서 최택현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고, 그 사촌 최광현·최병현 선생, 그리고 아들 최윤용 선생에게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들 나주 수성최씨 일가의 포상은 남원의병장 기우만(1980, 독립장)선생의 ‘송사선생문집(1931)’ 속에서 관련 내용이 확인됨으로써 이루어졌다.
1910년 한일합방을 전후해 의병활동으로 부자나 형제가 함께 처형을 당한 경우는 있어도 일가친척 네 명이 한날한시 한 장소에서 일본군에 참살 당한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 학계의 주장이다.
이같은 사실을 발굴 추적해 온 재야사학자 정준영(71)씨는 “일제강점기를 전후로 일가족이 3명까지 참살 당한 기록은 있지만 5명이 함께 몰살한 기록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최택현 선생은 흥양(현 고흥군)현감을 지낸 최희량 장군의 10대손으로, 최희량 장군은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왜군에 맞서 싸운 것으로 ‘난중일기’에 기록돼 있다. 나주시 다시면 가흥리에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53호로 지정돼 있는 최희량 장군의 신도비(神道碑;고관의 무덤 앞에 세우는 석비)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항일독립운동을 한 혐의로 일제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한 나주 수성최씨 일가 4명이 광복 제65주년 기념식에서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사진은 프랑스 라 크로아紙 기자가 본 의병 공개 처형장면(1905. 5. 21)
최씨 일가가 참살 당한 1909년 일제는 호남지역 의병 대토벌 작전을 벌였다. ‘대한제국의 호남의병 연구’를 집필한 순천대 사학과 홍영기 교수는 “일제는 1909년 9월부터 10월까지 두 달 동안 ‘남한 폭도 대토벌’이란 작전명으로 호남 지역 의병에 대한 학살을 진행했다”며 “작전지역은 전남 전역을 비롯 전남과 전북의 경계지역 일대를 아울렀다”고 말했다.
최택현 일가가 붙잡혀 처형된 시점(1909년 음력 8월 10일)이 일제의 ‘남한 폭도 대토벌’ 작전 기간과 정확히 일치하는 셈이다. 홍 교수는 “당시 4,000~5,000명의 일본군과 경찰, 행정력이 총동원된 대토벌 작전으로 의병 500여명이 전사하고 2,000~3,000명 정도가 검거됐다”며 “검거된 사람들도 죽였고, 최택현 일가도 그 와중에 처형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씨 일가는 당시 나주 지역에서 암약 중이던 일제의 밀정에 의해 거사 계획이 발각된 것으로 보인다. 1955년에 나온 족보인 ‘수성최씨지장록’에는 “공(최택현)을 좋아하지 않는 자가 영산포 왜적 헌병소에 암통(밀고)하니 왜적이 크게 기뻐하며 그 암보자에게 큰 상을 했다”란 문구가 등장한다. 일본군 헌병 보조로 추정되는 암보자의 정체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일제는 나주 일대의 의병 부대를 일망타진하기 위해 최씨 가족에게 상당한 매질을 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성최씨지장록’에는 “왜적이 천번만번 때리고 두드려/ 몸이 온전한 곳이 한곳도 없었다”란 글귀가 나온다.
이같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이들 최씨 일가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것은 국가보훈처가 “일본측의 공식 재판 기록이 없다”며 독립유공자 지정에 난색을 표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수성최씨 대종회 최병석(전 재경나주향우회장) 서울지회장은 “독립유공자 심사를 맡고 있는 국가보훈처에서는 일제의 재판기록이 없다며 오히려 일본측 기록을 가져오라는 것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독립유공자 문제를 다루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최 지회장은 “선조들이 돌아가신 지 101년이 되는 올해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것은 만시지탄이나마 다행한 일”이라고 밝혔다.
수성최씨 대종회는 조만간 나주를 찾아 선조의 독립유공자 지정을 축하하는 행사를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성최씨 대종회 서울지회장인 최병석 씨는 최택현 선생 일가의 독립유공자 지정과 관련해 “만시지탄이나마 다행한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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