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 생태마을 사람들, 그들의 건강한 삶⑥
대자연과 교감하며 명상 통한 종교공동체
…자두마을 사람들
베트남 난민들의 피난처에서 지금은 세계인의 명상본거지로
종교도 자연의 일부, 도시민에게 삶의 여유와 안식 되돌려준다
이제 환경보전은 온 세계가 해결해야 할 생존의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다. 눈부신 경제성장의 이면에 환경오염과 자연파괴, 지구온난화로 재해가 되풀이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으로 친환경 농업,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태마을이 주목받고 있다.
이에 발맞춰 지방자치단체들도 생태복원과 생태환경을 활용한 관광사업, 생태계와 문화예술이 공존하는 생태문화촌 건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나주시도 지난해 12월 관광종합개발계획을 마련하고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에 부응해 생태환경에 걸맞는 관광인프라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이에 <나주뉴스>는 생태환경을 활용한 국내외 생태마을의 성공 노하우와 생태마을 주민들의 삶의 질을 비교해보고, 나주시가 추진하는 생태마을 조성과 생태관광자원화사업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이번호에서는 종교공동체로 시작해 전 세계인의 명상과 참선의 도장으로 자리를 잡은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한 작은 생태마을 ‘자두마을(le Village des Pruniers)’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보르도 포도밭 평원 한 가운데 작은 생태마을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서 테제베(TGV) 열차를 타고 남쪽을 향해 달리기 두 시간 남짓, 앙굴렘 역에 도착하자 민박과 현지 안내를 도와줄 브와이에(Boyer)씨 부부와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온지 일주일쯤 됐다는 고려대 불문학과 신승우 군이 함께 마중을 나왔다.
여기서 또 승용차로 두 시간쯤 달리자, 유난히 눈부신 지중해의 가을햇살과 드넓은 포도밭 평원 속의 보르도(Bordeaux) 지방이 눈앞에 펼쳐진다. 도로를 벗어나 포도밭길 사이를 한참 달리자 작은 야산이 나오고 그 곳에 ‘자두마을(Le Village des Pruniers)’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마침 길가에서 중장비로 길을 닦고 있는 사람이 있어 자두마을을 물으니, 바로 자신이 자두마을 수도승이라며 직접 마을로 안내를 한다.
스님의 안내로 자두마을에 도착하니 커다란 무화과나무가 마을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다. 마을이라기보다는 커다란 캠핑장 같다고 해야 할까? 집과 건물보다는 나무와 풀들이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팝 도’라는 이름의 그 스님은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 해야겠다며 총총히 자리를 떠난 뒤 이번에는 ‘팝 니엠’이라는 스님이 머나먼 이국 손님들을 맞는다.
시인승려 ‘틱낫한’이 창설한 베트남 피난민촌
팝 니엠 스님의 영접을 받으며 잠깐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감색 승려복 차림의 베트남인들과 몇몇 유럽인들이 느릿느릿, 조금씩 조금씩 걸으며 행선(行禪)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화학비료나 살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생태마을이라는 말을 전해들은 때문인지 무화과나무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무들이 벌레 먹은 상태다.
가끔 해외토픽으로 봤던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애써 가꾼 농산물을 도로 위에 쏟아붇고 시위를 하던 프랑스 농민들의 생존을 위한 격렬한 모습과 비교하면 한가하고 조용하기만한 자두마을은 어쩌면 농촌 속에서도 휴양지와도 같은 분위기였다.
손님대접으로 내온 무화과와 홍차를 앞에 두고 팝 니엠 스님으로부터 자두마을의 유래를 전해 들었다.
30여년 전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전쟁을 반대하는 베트남 스님들이 분신하는 등 격렬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런 베트남 전쟁의 참혹함을 뒤로하고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던 틱 낫 한 (Thich Nhat Hanh) 스님이 바로 이곳 자두마을의 설립자다.
프랑스에는 로마 가톨릭이 여전히 강한 힘으로 이곳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불교는 이 자리를 비집고 지금 두 번째로 많은 신자가 있는 종교이자 생활철학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부처의 가르침이 ‘똘레랑스(관용)’라는 문화 속에 살아가는 프랑스인들에게 어쩌면 일맥상통하는 친근한 이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팝 니엠 스님의 영접을 받고 있는 취재팀
매순간 호흡하며 명상하라
자두마을은 틱 낫 한 스님의 명상센터이기도 하다. 따라서 프랑스 전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그의 추종자들과 명상에 심취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매순간 호흡하며 명상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중심으로 공동체 안에서 함께 수행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모든 물자는 창고 안에 분리해서 쌓아둔 뒤 자체적으로 재활용하고, 음식을 남기지 않고 설거지물을 공동으로 쓰는 등 우리나라 사찰에서와 같이 기본적으로 환경친화적인 생활방식이 이용된다.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몇몇 사람들이 ‘배꼽손’을 하고 정원을 거니는 모습이 눈에 띈다. 물론 바쁘게 식당을 오가며 식재료를 나르는 사람들 속에서 저녁식사시간이 다 됐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팝 니엠 스님의 안내로 마을을 돌아보았다. 마을이라야 동네 반 바퀴 정도의 작은 공간이었다. 이 곳에서 약간 떨어진 마을에 자두밭이 있고, 2,500그루의 자두나무가 심어져 있다고.
봄부터 한여름까지 자두마을 사람들과 관람객들은 자두농사에 참여하느라 여념이 없지만 지금은 대부분 농사가 끝나 한가한 분위기였다.
이 마을이 어떻게 자두마을이 됐느냐는 질문에, 팝 니엠 스님은 “포화 속에 고국을 떠나 유럽 각지를 떠돌던 베트남 사람들이 프랑스 정부의 허락을 받아 이 마을을 개척하게 되면서 자두를 심게 됐는데 의외로 포도보다 생장속도도 빠르고 농약을 하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과일이 자두였다”는 설명이다.
이곳에서 생산한 자두는 베트남 현지의 굶주린 어린이들의 한 끼 식량을 위한 구호활동에 쓰여진다고 한다. 그래서 자두마을 사람들은 자두꽃이 필 때면 고국의 아이들의 미소를 떠올리고, 한여름 가뭄, 해충들과 싸울 때는 그들의 배고픔과 고통을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가을 수확기를 맞아 비로소 전 세계 어디에 있던지 그들은 하나의 공동체라는 기쁨을 나누게 된다고.
벌레는 잡아 야산으로 보내면 되고...
자두마을이 생태마을이라 하는 데는 모든 농산물과 생활환경이 자연적이라는 점에서 비롯됐다. 그들 스스로 먹는 농산물에 농약을 할 이유가 없고, 간혹 민달팽이가 잎을 갉아먹을라치면 조용히 잡아 야산으로 보내주면 된다는 생활습성에서 나온 듯싶다.
팝 니엠 스님의 안내로 그 곳의 농사현장을 둘러보았다. 한 마디로 얼키설키 제 멋대로 자라고 있는 토마토며 고추, 부추, 상추... 우리나라 여느 농가에서나 빈 텃밭에 아무렇게나 놔먹는 수준의 농사였다.
이걸로 마을사람들이 다 먹고 살 수 있느냐는 물음에 “먹을 것은 그때그때 심어먹으면 된다”는 것이 답이었다.
마을을 돌아본 뒤 스님의 배려로 저녁식사를 함께 하게 됐다. 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절대 침묵이지만 그날은 예외적으로 ‘게으름을 피우는 날’이라 해서 말을 해도 되는 날이라 했다.
어둑어둑한 테이블에 둘러앉은 십 수 명의 사람들이 정적 속에서 그릇에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만 빼놓고, 묵묵히 밥술을 뜨고 있었다.
명상서적 ‘평화로움’의 저자 틱낫한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한 명상서적 ‘평화로움’의 저자이기도 한 틱낫한 스님은 1926년 베트남에서 출생했으며 16세에 출가해 승려가 됐다. 그는 베트남 전쟁 이후 베트남을 떠나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100여권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이미 1960년대 반전운동을 계기로 1967년 마틴 루터 킹 목사에 의해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대됐으며, 유럽과 북미에서는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으며 베트남 참여불교(Engaged Buddism)의 맥을 잇고 있다.
이 곳에는 다양한 국적, 사회 배경을 가진 수행자들이 서로간의 종교, 자연, 인간의 갈등도 없이 조화로운 삶을 관찰하며 지혜를 배우며 살아간다.
숨을 들이쉬면서, 마음에는 평화
숨을 내쉬면서, 얼굴에는 미소
나는 느낀다, 내가 살아 쉼 쉬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경이로운 순간임을.
자두마을 사람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틱낫한 스님의 말 가운데 ‘지금 이 순간을 즐거워하라(Enjoy the present moment)’는 것이었다. 우리는 해야 할 일도, 가야할 곳도 없다(Nothing to do, nowhere to go). 내가 아닌 다른 것이 되려고 하지 마라. 나는 한 대의 텔레비전과 같이 욕망의 채널과 후회의 채널, 환희와 즐거움의 채널을 모두 내 안에 가지고 있다. 하나의 채널을 틀면 다른 채널은 모두 사라진다. 수행은 결코 어렵지 않으며, 명상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내 안의 채널을 돌리라. 부처의 채널로...
자두마을은 웃말(Upper Hamlet)과 아랫말, 새말(New Hamlet), 세 개의 작은 마을이 있고 각기 숙소와 법당, 산책길을 갖추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열리는 틱낫한 스님의 법문은 세 곳에서 돌아가며 열린다고 했다.
이곳의 하루 일정은 일손을 도와주는 일손 명상(Working Meditation), 다 같이 침묵 속에 터덜터덜 산책을 나가는 산보 명상(walking Meditation), 맛있는 과자 한쪽에 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수행 얘기를 나누는 차 명상(Tea Meditation)과 같은 프로그램은 모두 그러한 일상 속 명상의 연장이다.
자연 속의 종교, 쉼과 건강의 산실로
이 마을 사람들은 자두마을이 세상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의 은신처로 여겨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상처 입은 짐승처럼 마음에 피를 흘리며 자두마을에 들어온 사람은 평화로운 명상시간과 친절한 사람들 속에 머물며 얼마간의 평안을 찾는다.
그러나 자신의 상처를 덮어두고 거기서 달아나려고 하는 사람은, 곧 자기를 외면한 채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결코 평화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자두마을에 기거하기 위해서는 그 마을에서 정한 일정요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아도 아쉬울 것이 없는 곳이 이곳이다. 이 곳에서는 없는 대로 사는 것도 하나의 삶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왔다가 아무 것도 갖지 않은 채 떠난다 해도 후회스럽지 않은 곳이 또 자두마을이다.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향한 새로운 담을 빈 마음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해가 뉘엿뉘엿 지중해로 넘어갈 즈음, 자두마을 사람들의 소리 없는 환송을 받으며 다시 보르도 넓은 포도밭 평원으로 달려 나오는 길에 녹색 들판과 푸른 하늘, 유난히 흰구름이 오염되지 않은 이국땅의 정취를 더욱 깊게 전해준다.
◇자두마을 사람들은 이 마을이 세상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의 은신처로 여겨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지만 상처 입은 짐승처럼 마음에 피를 흘리며 자두마을에 들어온 사람들은 평화로운 명상시간과 친절한 사람들 속에 머물며 얼마간의 평안을 찾는다.<사진은 저녁식사 후 정원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파리에서 앙굴렘으로, 앙굴렘에서 보르도 자두마을로...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서 우리나라 KTX와 같은 기종이라는
떼제베(TGV)열차를 타고 두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앙굴렘역<왼쪽>과 떼제베 열차 승무원<아래>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보르도 지방은 포도와 함께 수수도 유명하다
보르도지방 포도나무는
우리나라 처럼 옆으로 가지를 뻗는 게 아니라 위로 곧게 자라고 키가 작다.
포도는 나무 아랫쪽에 가지런히 달려있어서
사람이 직접 수확하지 않고 기계로 한다.
자두마을 입구에서 팝 도 스님에게
간단히 마을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이 곳에 한국인 출신 비구니승이 한 명있는데
이 곳에서 조금 떨어진 다른 마을에 있으며
오래전에 한국을 떠나와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한다고 전한다.
감색 승려복 차림의 베트남인들과 몇몇 유럽인들이 느릿느릿,
조금씩 조금씩 걸으며 행선(行禪)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법회를 여는 공간
명상하는 사람
종각
여기서 보니 종에 새겨진 한자도 반갑더군요.
명상객들 숙소<위 사진>와
수도승들 거처<왼쪽 사진>
틱낫한 스님의 처소 가는 길. 작은 원두막 같다.<위>
처소에 걸려 있는 묵언고지와
창밖에서 들여다 본 실내풍경.
몇 권의 책이 꽂힌 책장과 앉은뱅이 책상과 침상이 전부다.
틱낫한 스님의 처소 앞에서...
고려대 불문과 다니다 어학연수 온 신승우 군,
조 선생님, 송이처녀, 홍 선생님, 박 선생님, 통역해 주신 고 선생님,
민박집 브와이에 씨 부부
솔방울이 축구공만 하다며 기어코 인증샷을 하는 송이처녀(↖)와 작물들(↙↓)
식당에서...
원래 식사시간에는 말을 하지 않으나
이날은 게으름을 피우는 날이라 말을 해도 된다고.
그래도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는
누구 말하는 사람이 없다.
식사 후 자기가 먹은 그릇은 자기가 씻는다.
그래도 동방예의지국 사람들은
장유유서를 아는지라
한 살이라도 적은 사람이 하겠다며
홍 선생과 송이가 도맡아 하고 있다.
◇프랑스 남부 보르도 지방 드넓은 포도밭 평원 한 가운데 위치한 자두마을은 30여년 전 베트남 보트피플의 정착촌으로 시작됐으나 지금은 세계적인 명상센터로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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