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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여행

프랑스이야기③ 남아있는 역사 그대로…사흘라&라 호끄 생 크리스토프

by 호호^.^아줌마 2010. 10. 12.

 

특별기획 … 생태마을 사람들, 그들의 건강한 삶⑦

 

◇ 온화한 해양성 기후와  풍부한 일조량, 폭이 넓은 계곡과 강, 드넓은 숲 등이 드물게 잘 어우러진 프랑스 남부 도르도뉴지방은 선사시대 이전부터 인류의 활발한 군집생활을 가능케 했다.

 


“기왓장 한 장 더 얹을 필요 없다”

 

남아있는 역사 그대로…도르도뉴 역사생태마을


켜켜이 쌓인 역사 위에 현대의 한 페이지 얹어놓는 사흘라 사람들

인류의 기원지 세계문화유산 ‘라 호끄 생 크리스토프’ 암벽유적 등


이제 환경보전은 온 세계가 해결해야 할 생존의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다. 눈부신 경제성장의 이면에 환경오염과 자연파괴, 지구온난화로 재해가 되풀이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으로 친환경 농업,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태마을이 주목받고 있다.

이에 발맞춰 지방자치단체들도 생태복원과 생태환경을 활용한 관광사업, 생태계와 문화예술이 공존하는 생태문화촌 건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나주시도 지난해 12월 관광종합개발계획을 마련하고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에 부응해 생태환경에 걸맞는 관광인프라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이에 <나주뉴스>는 생태환경을 활용한 국내외 생태마을의 성공 노하우와 생태마을 주민들의 삶의 질을 비교해보고, 나주시가 추진하는 생태마을 조성과 생태관광자원화사업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이번호에서는 과거 원시역사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현장을 훼손하지 않고 고스란히 생태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프랑스 남부 도르도뉴(Dordogne)지방의 역사생태마을 사흘라(Sarlat-la-Caneda)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암벽유적지 라 호끄 쌩 크리스토프(La Roque Saint Christophe) 등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자두마을 취재를 위해 프랑스 남부까지 내려갔다가 밤이 깊어 빌뚜레(Villetoureix)라는 마을의 한 농가에서 민박을 했는데, 주인내외가 새벽부터 서둘러 깨우기 시작한다.

이 고장에 들른 이상 인류의 시초가 된 도르도뉴지방의 원시생태마을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래전 교과서에서 보았던 라스코 동굴벽화와 5만5천년 동안 살아왔던 암벽유적지,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는 중세도시 등 보물들이 바로 지척에 있다는 설명에 서둘러 길을 나섰다.



역사와 함께 살아가는 사흘라 사람들


꽤 오랜 시간을 달려 도착한 마을 사흘라. 한 눈에 보기에도 칙칙한 돌담과 건축양식에서 중세 유럽의 풍모를 느낄 수 있다. 주차공간을 찾지 못해 동네를 한 바퀴 돌다 도로 양쪽에 마련된 주차공간을 겨우 차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건물과 건물 사이에 겨우 한 사람씩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골목길을 통해 마을 중심부로 향할 수 있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골목과 골목으로 이어진 도시를 미로찾기 하는 심정으로 돌다 우연찮게 한 노(老)화가의 화실을 찾게 됐다.

 

미레이요(Mireio)라는 이름의 이 화가는 부친이 처음 이 마을에 들어와 사들인 1100년대 건물에서 살고 있는데, 건물내부를 직접 볼 수 있느냐는 요청에 흔쾌히 자신의 집 내부를 보여주었다.

 

돌과 나무기둥으로 만든 3층짜리 건물은 수 세기를 살아오는 동안에도 퇴색되고 일부 귀퉁이가 떨어져나갔을 뿐 처음 건축 당시의 양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문화재감’이었다.

 

현재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냐는 질문에 대부분은 도시로 떠나고 지금은 관광업을 하기 위해 외지에서 들어와 장사를 하는 사람들과 마을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미레이요는 그 자신이 이 마을의 일부이며 자신의 그림과 생활양식이 곧 이 마을의 전통이 되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말했다.

 

손수 자신의 화집에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환영하며 친구가 되고 싶다’는 글을 써 선물하는 그녀에게 나주에서 가져간 쪽염색 스카프를 선물하자 “메흐시 보꾸, 트레비엥”을 연발하는 그녀는 오랜 역사도시 사흘라의 한 일부와도 같았다.

 


 

◇천여년 전에 건설된 프랑스 남부의 한 작은 마을 ‘사흘라’가 프랑스는 물론 유럽문명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벽돌 하나 기왓장 하나라도 보존하는 사흘라


골목길을 돌아 마을광장에 들어서자 한 여자 관광안내원이 마을의 유래와 도시의 특색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사흘라라는 마을을 알 수 있게 됐다.

 

사흘라는 9세기부터 형성돼 1153년도에 세워진 수도원을 중심으로 개발이 되었고, 로마제국의 특별한 보호와 지원에 의해 1125년부터 1160년도까지 도시계획을 세워 도시를 건설하게 됐다.

 

시대가 바뀌면서 도시의 모습도 다양한 건축양식을 선보이는데 17세기에 이르러 현재의 모습을 갖춘 도시의 면모를 완성하였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 마을도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이 하나 둘 도시로 떠나면서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는데 1962년 앙드레 말로(Malraux)에 의해 제안된 문화재보호법의 첫 번째 수혜를 입어 77개에 해당하는 기념물과 건축물들이 복원, 수리되어 중세시대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2002년 2월 1일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여름철에는 유럽 각지로부터 몰려온 인파로 혼잡한 장터를 방불케 한다고. 한국에서도 찾아오는 손님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자신이 만나 본 첫 동양인이라는 말에 공연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의 풍속도 변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카톨릭이 성한 이 마을에 오래전 개신교가 들어와 마을 중심부에 교회를 건축했는데 결국 지금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마을장터(marché)로 사용되고 있었다.



사흘라에 가면 ‘프와그라(거위간)’를 먹으라


파리에서 만난 한 인사는 사흘라에 가게 되면 반드시 ‘프와그라(Foie gras)’와 ‘트뤼포’라는 이름의 송로버섯을 먹어볼 것을 권했다.

 

프와그라는 거위 간 요리란다<왼쪽 사진>. 그냥 간 요리가 아니라 거위에게 억지로 사료를 많이 먹여 지방간을 만든 뒤 발효시켜 만든 요리라는 말에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 마을의 오랜 전통요리라는 말과 실제로 모든 식당들이 프와그라 요리를 주 메뉴로 내놓고 있어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나주가 곰탕을 나주의 대표적인 요리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찾기 위해서라도 먹어보기로 했다. 바게트 빵 위에 얹혀져 있는 것이 프와그라다.

 

그 맛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면, 푹 삶은 돼지고기 비곗살에 마가린과 땅콩버터를 듬뿍 발라먹는 느낌? 아무튼 느끼함의 복합체... -.-;;  거위간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닭볶음요리에서 먹었던 간 부분 맛과는 전혀 딴판이라는 사실. 아마도 식량이 부족했던 그 시절, 지방섭취를 위해 고안해 낸 식생활문화가 아닐까 싶다.  

 

인류문명의 산 교육장 도르도뉴지방


사흘라가 위치해 있는 도르도뉴(Dordogne)지방은 온화한 해양성 기후와 많은 일조량, 폭이 넓은 계곡과 강, 드넓은 숲 등이 드물게 잘 어우러진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천혜의 자연조건은 선사시대 이전부터 이곳에서 인류의 활발한 군집생활을 가능케 했으며 특히, 약 4만년 전으로 추정되는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 때에는 유럽동부에서 추위를 피해 이동해 온 인류에게 자연적 피난처가 되었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자연동굴, 자연피난처 등에는 약 40만년 전부터 이곳에서 인류가 군집생활을 하였음을 보여주는 선사시대의 유적들이 널려있으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류 최초의 예술적, 정신적 활동의 흔적 중 하나라 일컬어지는 라스코 동굴의 벽화는 그 중 대표적 유적의 하나이다.

 

이 지역에는 선사시대 뿐 아니라 로마시대 유적이 곳곳에 종교 건축물을 통해 남겨져 있으며 중세시대 특히 100년 전쟁 중에는 프랑스와 영국이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지은 견고하고 웅장한 성채와 요새들이 잘 보전된 채로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암벽도시 ‘라 호끄 생 크리스토프'

 

유유히 흐르는 베제르 강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 암벽도시 ‘라 호끄 생 크리스토프(La Roque Saint Christophe)는 약 80m 높이, 1km 길이의 절벽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암석바위 거주지를 중심으로 5만 5천년 전 구석기시대에 동굴생활을 하던 인류의 발자취부터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시대까지 내려오는 유적들을 찾아 볼 수 있다.

 

 

곳곳에 재구성된 당시의 모습을 통해 구석기시대 주거지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이 가능하며, 중세인들이 사용했던 다양한 도구들에 감탄하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암벽 거주지 중의 하나로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도르도뉴 지역을 돌아 나오는 동안에 암벽에 기댄 집체들과 성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라 메종 포르 드 헤이약(La Maison forte de Reignac)도 약 2만년 전 선사시대부터 절벽의 암벽 밑 자연 피난처에 인간이 거주한 것으로 보이는 곳에 700년 전 세워진 성이다.

 

이 지역에 세워진 성들 중 가장 독특하고 비밀스러우며 신비로운 성으로 옛 원형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유형의 성으로는 프랑스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유유히 흐르는 베제르 강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 암벽도시 ‘라 호끄 생 크리스토프(La Roque Saint Christophe)


라스코(Lascaux) 동굴벽화


도르도뉴를 돌아 나오는 마지막 코스로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소개돼 친숙한 라스코 동굴벽화를 향했으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관일이란다. 우리가 가기 하루 전날 사르코지 대통령이 방문하면서 휴관을 했기 때문에 이날은 열 수도 있다는 말에 기대를 걸고 행했으나 어긋난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친절한 관광안내소 직원으로부터 이곳의 유래와 가치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이곳 벽화는 약 1만8천년~1만5천년 전 구석기시대의 인류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그 수와 예술적 가치로 인해 이제까지 발견된 구석기시대의 동굴장식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라스코 동굴벽화가 있는 박물관

 

1940년 이 지역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던 어린이들에 의해 발견된 뒤 전문가들에 의해 여러 차례의 고증이 이루어지고, 1979년에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1948년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었으나 방문객들이 내뿜는 호흡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에 의한 벽화 및 동굴자체의 훼손이 심화되기 시작해 1963년 당시 문화성 장관이던 앙드레 말로에 의해 일반인 공개가 금지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 초부터 시작된 원 라스코 동굴 및 벽화의 정밀모사 결과로 1983년에 본래 동굴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원 동굴과 벽화의 복사판이 완성됐으며, 일반인들에게 똑같은 모습이 공개되고 있다.

 

과거 선조들이 이룩해 놓은 역사와 문화를 통해 프랑스의 작은 마을이 세계인의 시선을 받는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부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더구나 그들에게 역사는 지금 단지 먹고 사는 관광사업의 한 수단이 아니라 앞으로 후손들에게 영원히 남겨주어야 할 유산이라는 의식 속에서 그들의 역사가 유구할 수밖에 없는 비결을 읽을 수 있었다.

 

함께 동행한 박태후 화백도 “선조들의 피와 땀이 오늘날 프랑스 사람들을 먹고 살게 만든다”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이런 역사와 문화유적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원칙이 자연환경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현대의 모든 나라와 자치단체들이 역사와 문화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그것이 당대의 기준으로 탈바꿈하게 될 경우 우리 후세는 전혀 다른 기형의 역사와 문명을 보게 될 것이라는 교훈을 도르도뉴지방의 여러 문화유적지들이 전해주었다.

 

 

사흘라를 오가는 길목에 어렵지 않게 눈에 띄는 암벽주택들.

그 내부가 궁금했지만 그냥 지나쳐올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암벽 위에 지어진 성들이 오랜 세월에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한 곳인

‘라 메종 포르 드 헤이약(La Maison forte de Reignac)도

약 2만년 전 선사시대부터 절벽의 암벽 밑 자연 피난처에

인간이 거주한 것으로 보이는 곳에 700년 전 세워진 성이다.

 

이 지역에 세워진 성들 중 가장 독특하고 비밀스러우며 성으로

옛 원형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흘라 거리의 행위예술가.

멀찍이 떨어지게 놓아둔 동전바구니에서

그의 역할과 목적을 짐작하게 된다.

  

미레이요의 화실과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낡은 창틀.

그녀가 동양에서 온 낯선 이방인들을 위해 자신의 화집에 우정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마을 중심에 있는 우물이다.

성 마리아의 우물이라는데

아마도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던

우물인 듯 깊다.

 

 

 

 

 

사흘라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건물.

 

안내원에 따르면, 이 마을에 두 개의 교회건물이 있는데

하나는 개신교 건물인 이 곳이고 다른 하나는 카톨릭교회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 이 건물 안에서는 뭐를 하고 있느냐...

 

 

교회는 어디로 가고 마을장터로 사용되고 있다.

 

  

 

사흘라 광장의 도로와 오래된 건물들

 

 

사흘라 광장을 지나는 일행들.

(나만 없다)

 

 

즐비한 식당들 사이로 프와그라 요리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점심 시간이 지나면 손님을 받지 않는다 하여

서둘러 자리를 잡았다.

이미 여행경비가 바닥을 보이고 있는 상태라 가장 싼 곳으로...

 

 

제일 싼 요리라고 선택한 것들인데

20유로 이상이다.

20유로면...3만원이 넘는다는 것인데... 

대한민국이 먹기 살기에는 제일 좋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 곳은 앞에서 말했던 카톨릭교회다.

9세기경에 사흘라가 형성돼 1153년도에 세워진 수도원을 중심으로

발이 되었고, 로마제국의 특별한 보호와 지원에 의해

1125년부터 1160년도까지 도시계획을 세워 도시를 건설하게 됐다.

 

안으로 들어가 보자. 

 

여기는 그대로 교회다.

관광객들이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한국차

 

 

암벽도시 위에서 내려다 본 베제르 강.


그토록 오랜 세월을 흐르고 또 흘렀을 저 강물은

아직고 깊고 푸르기만 한데

왜 우리 영산강은 이렇게 신음하며 중병에 시달릴까

부럽기만 했다.


저 강물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울창하게 자라난 버드나무들도 우리는 볼 수 없는 풍경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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