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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이야기

내가 하면 심심풀이 네가 하면 노름인 세상

by 호호^.^아줌마 2011. 7. 11.

 

내가 하면 심심풀이 네가 하면 노름인 세상


차에 타고 있을 때는 늦게 가는 행인을 욕하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빵빵되는 운전사를 욕한다. 남이 천천히 차를 몰면 소심운전이고, 내가 천천히 몰면 안전운전이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 남은 내가 탈 때까지 열림단추를 계속 누르고 기다려야 하고, 나는 남이 타건 말건 닫힘단추를 눌러서 얼른 올라가야 한다.


부부에 관한 입장차이도 있다. 남의 집 남편이 설거지를 하면 공처가, 내 남편이 설거지를 하면 애처가. 남의 아내가 못생겼으면 ‘그 수준에서 여자를 골랐으니 당연하지’, 내 아내가 못생겼으면 ‘내가 여자얼굴에는 워낙 초연하잖냐.’


자녀에 대해서는 더욱 가관이다. 며느리는 남편에게 쥐어 살아야 하고, 딸은 남편을 휘어잡고 살아야 한다. 남의 자식이 어른에게 대드는 것은 버릇없이 키운 탓이고, 내 자식이 어른에게 대드는 것은 자기주장이 뚜렷해서다.


먹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서구에서는 개를 먹으면 야만인이고, 우리나라에서는 개를 먹으면 마누라한테 칭찬 받는다 했던가. 남이 외국산 담배를 피우는 것은 기본적인 애국심조차 없는 파렴치한 행위이고, 내가 외국산 담배를 피우는 것은 담배를 맛없게 만드는 담배인삼공사에 대한 근엄한 경고라 주장할 사람들이다.


나주시 공무원들이 심야에 화투를 치다 걸려 된통 혼쭐이 나고 있다. 하루 근무를 마친 시간에 지역경제를 살기기 위해서 외지로 나가지 않고 지역 식당에서 밥 먹고, 술 마시고, 남들 자는 시간에 조용히 점당 300원짜리 고스톱을 쳤기로서니 그것이 문제냐고 반문하고 있다.


내가 치는 고스톱은 심심풀이 친목도모용이고, 네가 치는 고스톱은 패가망신에 이르는 사행성오락이라고 할 것인가. 도박이 심심풀이면 땅콩장수는 뭘 먹고 살 것인가.


단란하던 한 가정의 비극은 점당 100원짜리 민화투에서 시작됐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둔 택시기사 A씨. 처음엔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에 소일거리 삼아 심심풀이로 시작했던 고스톱이 점점 판돈이 커지더니 밤과 낮의 구분이 없어지게 되고, 결국은 지입으로 굴리던 택시와 단란한 가정의 보금자리였던 연립주택마저 노름빚에 넘어가자 가정은 이혼으로 깨졌고 딸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키우는 신세가 되었다.


도박의 심리는 ‘대박이 터지기를 바라는 애정갈구의 상태’라 했다. 거기에다가 집착증세까지 가세하면 결국 패가망신하게 되는 것이다. 적절한 시기에 단념할 줄 알면 다행인데 많은 이들이 자기 통제력을 상실하고 집요하게 ‘본전만이라도 찾자’는 욕망을 충족시키려다가 자기 자신까지 잃게 되는 것이다.


나주에서 이름께나 있던 어떤 이도 한 때 폐광촌에 카지노를 차려 잘 나가는가 싶더니 얼마 안가 빈털터리가 돼서 태백시를 배회하더라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몇 년 전 경륜장 유치를 놓고 나주시와 시민사회가 심각하게 대립하던 것을 기억한다. 경륜이든, 경마든 손을 댔다가 시간과 건강과 재산을 다 잃고 땅을 치는 사람도 부지기수라 하지 않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가 나서 노름을 조장하고 있다. 7월부터 판매되고 있는 ‘연금복권 520’. 장당 1000원으로, 1등 2명은 매월 500만원씩 20년에 걸쳐 당첨금을 받게 된다. 당첨금 12억원을 240개월에 걸쳐 나눠 받는 것이다.

 

급속도로 진행되는 노령화사회에서 노후에 대한 복지정책을 강구하기 보다는 이마저 사행성으로 몰아가는 이런 정부에서 공무원들이 무슨 복무기장이 서고,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나오겠는가.


국민들 호주머닛돈이나 털려고 하는 정부가 아니라 자치단체장의 도덕률을 기대해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