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작지만 강한 농업 ‘강소농(强小農)’을 찾아서③
◇ 항생제를 쓰지 않고 유기농으로 돼지농사를 짓는 충남 예산의 가나안농장 이연원 대표.
“돼지농사 잘만하면 악취고 민원이고 없어요”
…충남 예산 가나안농장 이연원 대표
대한민국의 농업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재도약해야만 살아날 수 있다는 구호는 비단 정부만의 외침이 아니다. 이제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농업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사업도 성공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누가, 어디에서부터, 무엇을 목표로 농업을 살릴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이것이다’ 할 만한 묘안을 찾기 힘들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달 30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전국 지역신문사 기자들을 대상으로 정부의 농축산업 선진화 전략을 주제로 연수와 탐방교육을 실시했다. 이를 중심으로 우리 농업의 현주소와 성공하는 농업인의 자화상을 살펴보고, 나주시가 견지해나갈 농업선진화 전략은 무엇인지 그 돌파구를 찾아보고자 한다. / 편집자 주
돼지가 행복하면 농촌도 행복
돼지 구제역 파동, 돼지 인플루엔자 등으로 근래 영세한 돼지 농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수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항생제를 전혀 먹이지 않은 돼지를 길러 승승장구하고 있는 농가들도 있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의 가나안농장(대표 이연원). 돼지를 키우는 곳이라면 으레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냄새나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곳은 뭔가 특별했다. 축사에 들어섰는데도 냄새가 나지 않았다.
이연원 씨와 함께 돈사를 돌아본다. 일반 돈사에 들어가려면 방역복을 입어야 하지만 무항생제 사료를 먹이고 있는 이 곳 돼지들은 균에 대한 자체 저항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굳이 방역복이 필요 없다. 또한 유해균이 들어와도 돈사에서는 번식할 수 없는 조건이다.
돈사의 바닥에는 톱밥이 깔려 있는데 이곳에는 발효균이 서식하고 있어 배설물이 나오면 30~40분 안에 자연 분해시킨다. 그래서 유해균에 대한 우려가 없고 냄새가 심하지 않다. 배설물이 분해돼 있는 이 톱밥은 퇴비로도 최상급이기 때문에 친환경 농업을 하는 농민에게 공급하고 있다.
어미돼지를 위한 분만실과 모돈(母豚)사육장은 돼지농가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일반 돼지 사육장보다 마리당 차지하는 공간이 1.5배가량 넓다. 큼지막한 창문에 지붕이 슬라이드 개폐 장치로 돼 있어 맑은 날이면 햇볕이 따사롭게 비춘다. 이 대표는 “식물이건 동물이건 햇볕을 많이 쪼여주어야 건강하다”고 강조했다.
돼지 귀에 붙은 노란색 ‘인식표’가 눈에 띄었다. 400여 마리 어미돼지 각각을 구분해주는 전자태그(RFID)다. 이 칩에는 돼지가 하루에 먹어야 할 사료 양 등의 정보가 입력돼 있다. 배가 고파진 돼지가 사료통 근처로 가면 전자태그를 인식한 제어 장치가 사료통을 막은 문을 열고 일정량의 사료를 자동으로 투여한다.
만약 인식표에서 ‘그날 먹을 사료를 다 먹은 돼지’라는 정보가 파악되면 사료통 문은 열리지 않는다. 서로 먼저 먹이를 차지하려는 돼지들 사이의 다툼을 방지하는 장치다.
이 장치는 이 대표가 2억 원을 들여 독일에서 도입했다. 돼지의 과식을 방지하고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설명이다.
◇ 배가 고파진 돼지가 사료통 근처로 가면 전자태그를 인식한 제어 장치가 사료통을 막은 문을 열고 일정량의 사료를 자동으로 투여한다.
대접받는 돼지가 좋은 고기 준다
무항생제 돼지고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도 폭발적이다. 대형마트의 유통 업체들이 찾아와 고기를 납품해 줄 것을 요구하지만 공급할 여력이 없다.
무항생제 돼지고기를 먹어본 소비자들은 고기 비린내가 없다고 말한다. 집에서 구워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돼지고기를 구운 후 불판에 기름이 하얗게 굳는데 무항생제 돼지고기는 불포화지방 고기라 그렇지 않다.
이 농장 시설의 특허명이 ‘불포화지방돼지고기 사육시설’이었던 것. 이전에 불포화, 포화지방의 개념이 없었지만 이제는 많은 소비자들이 불포화지방 고기를 찾는 추세에 부응하고 있다.
현재 4,500~5,000마리를 기르고 있고 6개의 계열농장까지 합치면 6,000마리 규모다. 올해 돼지고기 생산량은 약 4,000마리로 매출은 연 20억 원. 내년 매출은 50억 원으로 보고 있다. 계열 농장을 2015년까지 50개로 늘리고 하나당 1,000마리씩 길러 총 5만 마리 수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무항생제 돼지 사육을 희망하는 계열 농가에 새끼돼지, 사료, 생산비용과 특허를 받은 사육 매뉴얼을 제공하고 있다. 계열 농장은 부업으로 하는 농가가 대부분. 보통 농사를 하면서 가나안농장에서 나오는 퇴비를 이용하고, 한 농가에 연 5,000만~6,000만 원의 수익을 보장해 주고 있다.
처음 계열농장이 들어설 때 돼지 배설물의 오염과 악취를 우려한 마을주민들의 반발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식으로 깨끗하고 분뇨로 인한 오염 걱정이 없는 농장을 보여주자 이제는 오히려 참여하겠다고 사람들이 늘고 있다.
현재 무항생제 돼지 농가는 전국적으로 가나안농장이 유일하고 저항생제 돼지 농가는 전국에 150농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기농 사료 먹여 항생제 없이 사육
모든 사료가 유기농산물로 만들어진 것은 이 농장의 특징이다. 2006년 국내 돼지 사육장으로는 최초로 ‘유기농인증’을 받았다. 서울에서 건설업을 하던 이 대표는 1997년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와 돼지 사육농장을 시작했다.
돼지고기의 일본 수출이 유망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잘나가던’ 사업은 2000년 구제역 파동으로 엉망이 됐다. 수출이 막히자 판로가 막막했다. 돼지 값이 폭락해 1마리를 팔면 몇 만 원씩 손해를 봤다.
살길을 찾아 유기농 축산으로 눈을 돌렸다. 항생제를 쓰지 않고 유기농 사료로만 돼지를 키운다는 구상이었다. 참살이 바람이 불어오던 시기여서 전망은 밝아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항생제를 쓰지 않자 면역력이 약해져 폐사하는 돼지가 늘었다.
이 대표는 “실패를 거듭한 끝에 개량종 돼지를 재래종으로 ‘퇴화’시키는 방법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랜 옛날처럼 넓은 공간에서 햇볕을 쪼여가며 자연스럽게 키우는 방식이다. 어미돼지의 혈청으로 새끼돼지의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도 개발했다.
2006년 ‘맛이 고소하고 육질이 쫄깃쫄깃한’ 유기농 돼지가 탄생했다. 가나안 농장은 ‘불포화지방산을 높이는 돼지 사육법’과 ‘혈청 투입 돼지 사육법’의 2가지 특허를 가지고 있다.
돼지고기시장의 ‘블루오션’ 발굴
이연원 대표가 항생제를 쓰지 않고 유기농으로 돼지를 키우겠다고 할 때 주변에서는 모두가 ‘미친 짓’이라며 말렸다. 그러다 사육을 2002년 시작한 것이나, 2006년 농가로는 최초로 유기농 인증을 받은 것 등이 그를 선도 농업인으로 불리게 하는 대표적 사례다.
이를 통해 돼지고기의 안전성과 희소가치를 크게 높인 그는 모든 농업인들의 꿈인 ‘내가 생산한 농축산물 가격은 내가 정한다’를 당당히 실현했다. 일반 돼지고기 가격의 2~3배를 받으며 판매하고 있는 것.
현재 그는 유기농 돼지는 유명 백화점 등 10곳에 ‘이연원 유기농 돼지’라는 브랜드로, 무항생제 돼지는 생협에 전량 납품해 연 3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물론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은 항생제를 끊으면서 사료 내 단백질 함량을 높이자 이유자돈들이 설사 등으로 엄청나게 죽어나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유럽 등지의 연구자료를 직접 찾아보며 고심한 결과 단백질 함량을 낮추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바로 실천에 옮겼고 이후 폐사가 크게 줄었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08년 ‘임신 모돈 군사시스템’을 도입했다. 최대 300마리의 임신 모돈을 990㎡(300평)가량의 돈방에서 함께 사육하는 것이다.
돈방에 설치된 5대의 자동사육기가 임신 모돈의 귀에 달린 센서를 인식해 개체별로 사료를 급여하고 백신접종 및 분만사 이동시기 등을 자동으로 알려 준다. 이 대표가 도입한 시스템은 개체 관리에 전혀 문제가 없으면서도 임신 모돈으로 하여금 적당한 운동을 하게 함으로써 면역력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 덕분인지 이 대표는 이번 구제역 광풍에서도 살아남았다. 농촌진흥청의 군사시스템 구축을 위한 장비 시제품도 설치됐다. 국산화가 완료되면 장비 가격이 크게 낮아져 케이지 돈사 시설비와 비슷한 수준이 될 전망이다.
돼지산업화 위해 연구와 투자 확대
이연원 대표는 돼지 생산량을 목표대로 늘리고 닭고기 생산·가공업체인 ‘하림’과 마찬가지로 가공공장을 갖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투자를 받고 있다. 그렇게 되면 연매출은 1,000억~1,500억 원이 될 전망이다.
그리고 밀기울인 소맥피를 발효, 사료로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돼지나 사람은 섬유질을 소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이제까지 이러한 것을 사료로 이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소는 4개의 위에서 섬유질을 발효시켜 에너지원으로 이용한다. 마찬가지로 소맥피를 외부 기계를 통해 발효시켜 포도당으로 바꾼 사료를 만든다면 현재 옥수수 등에 비해 비용이 70% 절감된다는 것.
또한 인간의 식량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갖추면 유기농 돼지도 수출할 수 있게 되고 부가가치도 크게 늘어난다. 축산이 단지 고기를 얻는 산업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식량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고부가가치산업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이 대표의 표정에서 굳은 신념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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