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49호 동문밖 석당간 ‘제자리로’
해체된 지 4년만에, 동점문 연계해 주변 개발키로
나주읍성의 동문 밖에 서있던 석당간(보물 제49호, 성북동 108-1)이 자취를 감춘 지 4년 만에 제 자리로 돌아왔다.
지난 2007년 9월 보존처리를 위해 해체된 뒤 기단부만 남긴 채 4년 동안 자취를 감췄던 11m 높이의 석당간은 해체 및 보존처리작업을 하던 중 기단부가 도로 보다 낮아 침수피해가 예상되고 또 당간 내부에 균열이 발생, 관계 전문가들과 문화재위원 등의 자문을 받는 과정에 공사가 늦어졌다.
이에 따라 사업비도 당초 1억6천만원에서 3억원으로 늘어났으며 (주)예담문화재가 맡아왔다.
원래 당간은 사찰에서 당(幢)을 걸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동국여지승람’ 나주목 고적조에 ‘처음에 주(州)를 설치할 때 나주의 지형이 주형(舟形)인 까닭에 그 안정을 빌기 위하여 동문밖에는 석장(石檣)을, 동문 안에는 목장(木檣)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1872년에 그려진 나주목지도에는 나주읍성의 동문밖과 안쪽에 석장과 목장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까지도 석장과 목장이 있었다. 목장의 형태는 지도에 나타난 그림으로 보아 석장(현재 동문밖 석당간)과 같은 형태로 보인다. 그러나 목장은 언제 없어진지 알 수 없다.
마을주민들은 1958년에 전봇대를 이용해 목장을 복원하기도 했다. 이후의 나주읍지나 ‘조선 고적도보’는 석장(石檣)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주민들은 ‘짐대’로 부르기도 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당간은 평양, 청주, 무주, 공주 등 몇몇 지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적이다.
나주시는 최근 석당간 복원작업을 마치고 곧이어 주변 주택가와 부지를 사들여 공원조성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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