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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야기

김진수의 들꽃에세이12…멀구슬나무(苦楝子)

by 호호^.^아줌마 2012. 6. 8.

김진수의 들꽃에세이12

 

◇ 망종(芒種)을 전후해 눈부신 ‘향기’와 그득한 꽃을 피워내는 멀구슬나무

 

 

보리 익는 들판에 춤추는 꽃그늘…멀구슬나무(苦楝子)

학명: Melia azedarah var. japonica

속씨식물 쌍떡잎식물강 무환자나무목 멀구슬나무과의 갈잎큰키나무

 

 

비 개인 방죽에 서늘한 기운 몰려오고

멀구슬나무 꽃바람 멎고 나니 해가 처음 길어지네

보리이삭 밤사이 부쩍 자라서

들 언덕엔 초록빛이 무색해졌네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03년에 쓴 ‘농가의 늦봄(田家晩春)’이란 시의 일부이다.

 

망종(芒種)은 양력으로 6월 6일경이다. 『멀구슬나무』는 바로 망종이 시작되기 전 5월 말에 꽃이 피어 6월 초에 꽃바람을 그치고 이제 일년 중 가장 해가 길어지는 하지(夏至)를 향해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까 그 사이 보리는 부쩍 자라야 하고, 새로 모내기를 하려면 보리이삭은 ‘초록빛이 무색’하게 점점 더 노래져야 맞지 않은가. 멀구슬나무 꽃이 농경(農景)속에서 싱싱하게 피어나는 참 흐뭇한 싯귀다.

 

노란 열매가 마치 구슬 같아 ‘금령자(金鈴子)’라고도 하는데 중국에서 고려 말에 들어온 귀화식물이라 한다. 단단한 씨로 염주를 만들 수 있어 ‘목구슬나무’였던 것이 ‘멀구슬나무’로 변했다 하고, 열매가 말똥처럼 동글동글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했다.

 

식물의 열매라는 것이 태반 둥글지만 이름을 매겨 구슬을 강조한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멀구슬나무의 핵과(核果: 겉은 과육으로 싸여 있고 안의 종자는 딱딱하다)는 여느 열매와 달리 한겨울에도 주렁주렁 매달리는데, 이듬해 봄을 지나 새 꽃이 필 무렵까지도 외딴‘구슬’의 유감을 여지없이 과시한다. 과연 이 나무를 대표할 만한 이미지며 특이성이다.

 

멀구슬나무의 남다른 이끌림은 또 눈부신 ‘향기’에 있다. 라일락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향기가 그윽하고 꽃도 그득하다.

 

필자가 해남에서 두 뼘도 안 되는 작은 것을 가져와 마당에 심었더니 4~5년 만에 성목이 될 정도로 성품이 훤칠하다.

 

나는 멀구슬나무 꽃바람이 불 때마다 그늘에 서성이기를 좋아한다. 아내는 평소 싸리꽃을 좋아했는데 싸리꽃과도 비슷한 멀구슬나무의 우아미에 공감하여 슬슬 이 나무를 사랑하게 되었다.

 

두 사람의 생월이 양력 오월과 유월이니 잘 되었다. 한 때 부부목((夫婦木)으로 삼았던 자귀나무(合歡樹: 부부의 금슬을 상징하는 나무)를 이젠 멀구슬나무로 바꿀 시기가 온 것이다.

 

멀구슬나무의 세 번째 감상 포인트로 ‘꽃그늘’을 들고 싶다. 멀구슬나무의 꽃그늘은 고슬고슬하며 가볍고 쾌적하다. 날개깃 모양의 잎(기수우상복엽)에 부드럽고 성근 (총상)꽃차례, 바람결에 쉬 흐느러지는 새 가지와 긴 잎줄기, 연보라 아이세도우 빛 짙은 꽃향기에 살충력이 있는 잎을 벌레가 먹지 않아 겨드랑이가 맑으며, 자귀나무처럼 꿀즙도 떨어뜨리지 않아 발등이 항상 깨끗하다.

 

모기도 없는 소만과 망종 사이, 벌레도 쫓는 멀구슬나무 그늘 아래 누워 차원이 다른 ‘晩春’의 돗자리를 깔아보자. ‘쉬폰치마’ 하늘거리는 아름다운 여인이 다가와 그대와 바람의 춤을 추자 유혹하거나, 유현한 깨달음 하나 내려와 문득 선인(仙人)의 경지를 물어올 것인즉!  / 김진수 전남들꽃연구회장<전남타임스 기고글>

  

 

◇ 하지(夏至)를 전후해 맺기 시작한 열매는 한겨울에도 주렁주렁 매달려 이듬해 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