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시 보도자료 유감천만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별관 제101호 법정. 오후 두 시부터 시작된 재판이 10분 간격으로 줄을 잇는다.
약간 높은 단상 위에 앉은 판사, 속기록과 업무연락을 하는 두 명의 직원, 그리고 판사 맞은편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은 원고와 피고. 소액재판이지만 금전관계를 다루는 재판이다보니 원고와 피고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
판사의 중재를 무시하고 서로 드잡이를 하다가 결국 퇴정을 당하고 밖에까지 나가서 싸우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두 시간 20분. 드디어 ‘나주곰탕’과 ‘구진포장어’ 사진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다.
잔뜩 긴장하고 피고인석에 앉았지만 차분하게 답변하리라 마음 먹고 기다리는데, 의외로 판사의 질문이 원고에게만 이어졌다.
“원고가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사진에 다른 사람이 갖다 써서는 안 된다는 표시가 돼 있어요?”
“나주시가 홍보하라고 준 사진인데 나주시에는 알아봤어요?”
“돈을 받고 파는 사진이라면 다른 사람이 함부로 가져다 쓸 수 없도록 장치를 해놔야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그리고 이어진 피고에 대한 질문, “피고는 업체로부터 저작권 침해를 했다는 통보를 받은 뒤에도 사진을 계속 썼습니까?”
“아뇨. 바로 다른 사진으로 교체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의 사진을 삭제했다는 내용을 증거로 제출하시기 바랍니다. 2월 7일 오전 10시에 선고하겠습니다.”
2011년 4월 28일 나주시가 기자의 이메일로 보내온 보도자료 한글파일에 첨부된 사진 4컷 중 2컷을 필자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올렸다가 저작권 침해 시비에 휘말려 결국 재판까지 받게 됐다.
처음에는 40만원만 주면 합의를 해주겠다고 하던 사람들이 뜻대로 되지 않자, 51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낸 것이다.
문제의 사진은 나주시 보도자료와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자료, 그리고 기자가 직접 촬영한 7컷의 사진으로 기자의 블로그 <나주라는 세상이야기>에 ‘5월에 가볼만한 곳 나주 10景 4味’라는 게시물로 올려졌다.
이 보도자료의 내용과 사진은 기자가 저작권 침해 고지를 받은 당시까지도 나주시 홈페이지 열린시정>알림마당>보도/해명 사이트에 그대로 게시돼 있었다. 만약 나주시까지 시비에 휘말리게 될까 싶어 즉시 홍보담당 직원에게 알려 사진을 내리도록 귀띔까지 해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주시 공무원들의 태도다. 필자가 계속되는 업체의 압력과 소송에 대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짐짓 오불관언(吾不關焉)의 태도를 보이며 무관심했다.
심지어 저작권 침해에 대해 나주시가 특채한 변호사의 조언을 구하고자 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무료법률구조공단에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결국 기자 스스로 저작권법을 들춰보며 주변 법률가들의 도움을 받아 답변서와 준비서면을 작성하고 꿈에서도 재판을 받는 광경에 가위를 눌리는 경험을 톡톡히 치르며 “두고 보자”는 다짐을 했다.
재판결과에 따라 나주시를 상대로 구상권 청구를 할 계획이다. 그런 무책임하고 엉터리 같은 보도자료로 골탕을 먹이고도 나 몰라라 하는 행정, 그것이 나주시 행정의 현주소다.
항차 이런 일이 기자생활 22년째인 나에게도 생기는데 다른 수많은 민원과 시비는 왜 생기겠는가?
기자는 이번 저작권 침해와 관련해 해당업체와 적당히 타협하는 선에서 일찍 마무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요구가 법적으로 정단한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고, 또 저작권 침해로 인한 갈등에 대해 언론인으로서 끝까지 실체를 파악해보겠다는 의지로 소송에 임하게 되었다.
2월 7일 대한민국 법정은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 진인사대천명의 심정이다.
*** 재판결과는 저에게 재판을 건 원고 패소로,
저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후 패소한 원고가 항소했으나 재판 없이 조정에 들어가
원고는 더 이상 피고에게 돈을 요구하며 소송 등의 방법으로 피해를 주지 않는다,
피고는 원고의 행위에 대해 실명을 거론하며 비난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종결 지었습니다.
결국, 저작권 사냥꾼들은 처음엔 돈을 요구하다가 지방에 있는 사람들을
서울 법원에 고소하는 식으로 으름짱을 놓아 부담을 줘서 돈을 뜯어내는 짓거리를 합니다.
저는 그 과정을 뻔히 알기에 조금은 번거롭지만 끝까지 응수를 한 거고요.
나주시에 대해서는 최초 원인을 제공한 공무원이 나름 성실하게 공직생활을 해오신
지역의 선배이신데다, 피해배상을 받는다 해봐야 돈을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라
그냥 조용히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당사자야, 그동안의 제 고통을 알지, 모를지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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