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주 이야기꾼 양성교육에 뜨거운 열의를 보이고 있는 수강생들
나주이야기꾼 ‘낙타 바늘귀’ 보다 어려울 듯
나주 이야기꾼 양성교육 20명 모집정원에 100여명 참가
매주 목요일 나주향교 충효관 수강생들로 발 디딜 틈 없어
나주시가 동신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위탁해 실시하고 있는 ‘나주 이야기꾼 양성교육’이 개강 초반부터 뜨거운 관심과 호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주시는 지난 6일 저녁 나주향교 충효관에서 나주 스토리 관광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게 될 ‘나주 이야기꾼 양성교육’ 개강식을 가졌다.
‘나주 이야기꾼 양성교육’은 나주시가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추진하는 ‘나주향교 굽은 소나무학교’ 프로그램으로, 지난 5일까지 참가 신청자를 마감한 결과 20명 모집정원에 100명이 훌쩍 넘는 인원이 접수해 관계자들로부터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했다.
개강식에는 동신대학교 평생교육원 조준 원장과 나주향교 박영욱 전교가 참가자들을 격려했으며, 첫 강의는 나주시 문화체육관광과 김관영 과장이 ‘나주 관광의 미래’를 주제로 첫 테잎을 끊었다.<강연요지 아래 참조>
김관영 과장은 ‘나주향교 굽은 소나무학교’ 전반에 관해 설명한 뒤 나주의 미래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게 될 스토리 자원화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며 “나주는 무한한 스토리를 보유한 스토리 관광의 최적지로 ‘5대 명품길 조성사업’을 중심으로 스토리 관광을 활성화할 계획이며 나주 이야기꾼은 훌륭한 길라잡이로서 나주 관광홍보를 선도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13일에는 조선일보 칼럼니스트이자 동양학자인 조용헌 선생이 ‘호남의 양반집안’을 주제로 두 번째 강의를 했다.
조용헌 선생은 “호남의 중심인물은 ‘나광장창(나주-광주-장성-창평)’을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소개하며 “인재를 귀히 여길 줄 알았던 호남의 사대부와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선덕을 베풀었던 재력가들이 있어서 호남의 문화가 융성하고 인물이 끊이지 않았다”고 그 역사적 배경을 소개해 관심을 끌었다. <오른쪽 사진>
참석자들은 이번 이야기꾼 양성교육에 참가하게 된 동기에 대해 “노후에 손주들에게 재미있는 나주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귀농 후 운영하고 있는 농촌체험농장 방문객들에게 나주를 홍보하고 싶다” “ 나주를 제대로 아는 나주인이 되고 싶다”는 등 다양한 참여 동기를 소개하며 모두 나주를 널리 알리는 야기꾼이 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나주 이야기꾼 양성교육’은 11월 6일까지 나주읍성과 영산포 근대거리 등지에서 총 24회의 강좌와 현장 실습을 통해 나주 역사문화 전반에 대한 내용을 익혀나가게 되며, 철저한 심사를 통해 최종 합격자를 배출할 계획이다.
이번 강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 블로그 ‘나주향교 굽은 소나무학교(http://najuhyanggyo.com )에서 살펴볼 수 있다.
“역사의 현장 나주읍성 서성벽, 함께 보존하자”
김관영 나주시 문화체육관광과장
잊혀진 호남 최대의 나주읍성
지금으로부터 꼭 120년 전 동학농민군들이 나주 서쪽 월정봉(‘달우물’이라는 뜻의 아름다운 금성산 봉우리)으로부터 물밀 듯이 내려와 나주읍성 서쪽 성문인 서성문을 공격했다.
당시 농민군은 ‘한쪽에서 성문을 쳐부수려고 하고 한편으로는 성 위로 오르려고 하며, 그 모인 수가 숲을 이룬 것 같다’고 할 정도의 총공격이었다.
이날 전투에서 패한 동학농민혁명이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면서 그날의 역사는 뒤안길로 사라지고 일제가 조선의 도시를 상징하는 나주읍성을 훼손하고 철거하면서 땅 없고 힘없는 백성들이 성벽 위에, 또 성벽을 기대고 슬픔 어린 집을 지었다.
그렇게 조상들의 지혜와 세월 속에서 견고하기만 했던 나주읍성은 우리의 눈에서 사라지고 마음에서 잊혀져 갔다.
나주읍성을 이야기하자
나주는 고려 건국에서 조선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약 천년동안 전라남도를 관할하는 ‘나주목’이라는 전국 8대 도시였다. 한국 최초의 오일장이 나주에서 시작될 만큼 활기찬 삶의 터전이었고 전국에서 가장 큰 객사를 지을 정도로 위상을 자랑하던 행정과 정치의 중심지였다. 1872년 나주목 지도를 보면 나주읍성과 읍성 안팎의 도시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오죽하면 전라도 사람들이 나주에 와서 서울구경을 하였을까?
이렇듯 전라남도의 서울이자 자랑이던 나주의 명성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나주읍성이라는 도시유산이다. 우리 선조들이 고려를 건국하고 조선을 지탱하는 막중한 역할을 거뜬히 해 내면서 건설한 도시, 그저 돌로 쌓고 길을 내고 집을 지은 것이 아니라 바람과 물을 거스르지 않고 좋은 자리를 정해 정성스레 키워낸 선조들의 지혜와 삶이 오롯이 남아 있는 인류유산이 바로 나주읍성인 것이다. 그중에 가장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 서쪽 성문으로부터 나주천까지 이어진 서쪽 성벽 250m이다.
문화재청과 나주시가 나주읍성을 국가 사적 제337호로 지정해 보존하고 복원해 온 세월이 25년이나 된다. 1993년 나주읍성의 남쪽 성문이 복원된 것을 시작으로 동쪽 성문 동점문과 서쪽 성문 서성문이 옛 모습대로 복원되면서 나주읍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남쪽 성문인 남고문만을 지정했다가 호남을 대표하는 나주읍성의 역사적 위상과 문화유산으로서의 보존가치가 새롭게 부각되면서 4대 성문과 성벽 일부분을 확대 지정한 것이다. 이후 성터를 사들이고 발굴조사와 문헌조사를 통해 모습을 갖춰 가면서 전라도의 자긍심을 되찾아 가고 있는 중이다.
恨과 희망의 성벽, 인류 유산으로 함께 보존하자
2014년 나주읍성 서쪽 성벽에 올라 지은 집들, 성벽을 기대고 살던 집들이 철거되었다. 100년만에 우리 앞에 성벽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비록 호남을 지키던 우람한 성벽의 모습은 간 데 없고 상처투성이의 모습이었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100년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지탱해 주던 성벽이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걸어오는지 숨죽이고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100년을 이어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성벽은 사람들을, 사람들은 성벽을 그렇게 지켜주며 100년을 이겨냈다. 우리는 이곳을 ‘恨과 희망의 성벽’이라 부르고 싶다.
이제까지 우리는 한국의 읍성도시들을 보존하면서 성안에서 삶을 이어오던 사람들은 성 밖으로 내보내고 과거를 재현하는 박제화 된 방향으로 진행된 것이 아닌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생명의 공간을 죽어버린 공간으로 만들어버린 것이 아닌지 되물어보아야 한다. 원래 읍성은 성문과 성벽으로 상징되는 물질유산으로만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읍성은 도시이다. 도시 안에 사람들의 삶이 있다.
전국에 천년동안 살아 있는 읍성도시는 나주읍성이 유일하다. 지금까지 그 안에 사람들이 문화유산과 함께 숨 쉬고 있다. 아침에 눈을 떠 읍성을 바라보고 천년 된 거리를 걷고 천년 된 터에서 삶을 이어 가고 있다. 나주읍성의 가치는 이러한 생명력에 있다.
그렇다면 죽은 공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공간으로 어떻게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인지에 대해 우리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읍성을 지키고 살았던 사람들, 읍성을 빼앗고 싶었던 사람들, 읍성을 없애고 싶었던 사람들의 슬픈 恨의 역사를 이제 우리가 함께 희망을 품고 이야기해야 할 때다.
많은 사람들이 나주읍성 서쪽 성벽을 만나고 어루만지고 나름의 방법으로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야기하자. 어떻게 보존하고 알려야 할지를. 너와 나를, 나주와 나주가 아닌 곳을, 한국과 한국 아닌 곳을 넘어서 인류의 유산으로 함께 지키고 부활시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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