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4939 나주중학교 學校史3...나주중학교총동문회 준비위원회 1차 회의 대한민국이 세운 나주 최초의 중학교 2만5천여 동문의 산실 제1차 준비위원회 회의내용 ◎ 일 시 : 2019년 2월 13일(수) 오후 6:30 ◎ 장 소 : 나주곰탕 노안집(정종필 동문 운영) ◎ 참석자 : 홍선량(8회), 이도형(14회), 김영학·이정석·홍길식(24회), 김재준(25회), 김선용(29회), 이근연·이상훈(36회), 김양순(여중22회) 총 10명 ◎ 논의안건 : 1. 총동문회 창립준비위원회 구성의 건 … 창립준비위원장 이정석, 실무간사 : 김양순·이근연 … 현재 카톡방에 참석한 동문과 금일 회의 참석한 동문을 준비위원으로 하고 기수별로 모임을 갖고 있는 대표 동문을 창립준비위원으로 들이기로 함 2. 총동문회 창립 일정 …1~72회 동문인명록 확보(나주중 행정실 협조) 후 기수별 대표자회의.. 2021. 8. 8. 나주중학교 學校史2...나주민립중~나주중 교사시절 장지량 회고담 ‘빨간 마후라’ 장지량 공군참모총장의 나주민립중학교 교사시절 회고록 1945년 11월 말의 일이다. 미군정이 들어서고 서울은 혼란상이 가중돼 무법천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경성대(서울대) 진학을 꿈꾸고 일봉암에서 입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육사 1년 선배인 홍승화가 갑자기 찾아왔다. “나주민립중학교 선생님들이 공석이래. 고향 후진들을 지도하러 나가자.” 해방 되자마자 인민공화국이 공포됐으나 미군정이 들어서고, 그래서 인민공화국은 불법화됐다. 이로 인해 좌익계 교사들이 모두 사퇴하면서 학교는 공백 상태가 돼버린 것이다. 학교의 딱한 사정을 들은 나는 고향의 중학을 살려야 한다는 신념과 후배들이 더 이상 향학의 꿈을 저버려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가보니 교사는 나와 홍승화를 포함해 단 세 명뿐이었.. 2021. 8. 8. 나주중학교 學校史1...나주의 오랜 숙원 나주민립중학교 설립(1945.10.30) 나주민들의 오랜 숙원 중학교를 설립하다 (1945. 10. 30 나주민립중학교 설립) 나주에는 1906년 설립된 사립영흥학교(현재 남평초등학교), 1907년 설립된 공립나주보통학교(현재의 나주초등학교) 등 24개의 보통학교가 각 면에 설립되었다. 이 학교들이 일제히 세워진 것도 아니고 1910년 2개교, 1928년 15개교, 1945년 24개교로 늘어났다. 이와 함께 실업교육을 위해 1926년 10월에 나주공립농업보습학교가 설립되었고, 1939년에는 금천면에 면업전수학교(해방 직후 호남원예학교)가 설립되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나주에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다음 단계의 인문계 교육을 받기 위한 중학교가 한 곳도 없었다. 보통학교 졸업생 중 비교적 부유한 층은 광주나 서울, 목포, 심지어 일본으로 유학을 갈.. 2021. 8. 8. 소설가 승지행 선생 13주기 추모식 나주문학의 노거수 3인방 남도 나주가 낳은 팔순문학의 노거수 3인방 수필가 박천도, 소설가 승지행, 시인 최병우 광주, 전남, 나주의 문학을 아끼고 사랑했던 3인의 총죽지교(葱竹之交),죽마고우, 죽마구의, 죽마구우인 세 사람 나주에서 낳고 유치원을 다녔고 한국문단에 등단하여 오로지 문학에 전념 서거 후 나주 땅에 묻힌 애향 문인 팔순문학회 창립을 기리기 위한 흠모의 시 한 수를 올려 금성산 그늘 같은 애향의 철학 앞에 영민의 문학 혼을 추모하노라 --고전과 현대를 잇는 수필 --수 백편의 소설을 평생 홀로 창작 --팔십 노구에도 신선한 시를 구사한 잊을 수 없는 나주의 삼인방 문인 항상 격려와 배려 부지런히 창작하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노신사들은 금성산 선영 아래 죽어서도 고향을 지키시고 광주 전남 .. 2021. 7. 20. 이전 1 ··· 3 4 5 6 7 8 9 ··· 12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