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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사람들

김노금의 세상보기2

by 호호^.^아줌마 2008. 6. 4.
 

오~ 반가워라, 황포돛배!


산업화와 더불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황포돛배가 다시 돌아왔다. 어떤 이는 30여년만이라지만 내 기억 속에 돛배가 사라졌던 때는 60년대 말 아니면 70년대쯤이었으니 황포돛배의 등장은 실로 40여년쯤이지 않나 싶다.

왕건과 궁예가 고려의 패권을 놓고 자웅을 겨루던 훨씬 이전부터 1970년 쯤 까지였으니 유구한 세월을 영산강과 함께한 황포돛배였다. 50대 이상의 남도사람이라면 누구나 영산강에 대한 추억과 향수가 없지 않을 것이다.

지난주, 황포돛배의 등장이 너무나 반가워서 어린이집 친구들을 가득 태우고 영산강을 오르내렸다.

물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갖는 아이들의 특성상 몇 명쯤은 나루터에서 무서워 못 간다고 떼를 쓸 줄 알았으나 영산강은 너무나 다정한 품으로 함께한 모든 어린이들을 태우고 굽이굽이 뱃길을 돌았다. 자기감정에 솔직한 천진한 아이들이 생전 처음의 멋진 체험에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던 모습과, 내릴 때 아쉬워하던 모습을 보면서 이 일은 분명 성공해야 한다는 강한 염원이 생겼다.

둘째 날은 가까운 지인 아홉 명을 부추겨 다시 배를 탔고, 좀 더 차분하고 세심하게 주변의 반응을 살폈다. 토요일이라서인지 나루터는 붐볐고, 시간을 연장하여 운항 할 정도로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한 때, 마르지 않는 어머니의 젖줄 같은 생명력으로 남도의 들녘을 풍요롭게 살 찌웠고 모든 문물은 물론, 곡물과 해산물의 집산지로서의 역할을 의연히 담당했던 영산강!

너나없이 가난하고 궁핍했던 시절이었지만 , 옛 어르신들은 영산강에 배가 드나들던 그때를 나주가 가장 흥성했던 때로 기억하고 있다.

어디 나주뿐이겠는가?

발원지인 담양 쪽은 위쪽이니 그렇다 치고 , 아래쪽으로 가까이는 함평 ,무안, 신안, 영광이며 영암, 강진과 장흥, 해남, 완도, 진도 등... 어느 한 곳 영산강과 무관한 고을이 없었던 그때였다.

지금 당장은 운영상 많은 어려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또한 지금 논란의 한가운데 있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과 맞물려 있는 터이라, 자칫하면 돛배를 다시 묶어두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싶게, 돌아가는 제반 여건과 운영상의 애로가 많이 불거져 나오고 있어 안타깝다.

지금 정부가 시행하려다 반대여론으로 인해 슬그머니 밀쳐버린 대운하 사업과, 영산강 뱃길 복원사업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발전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사업이다.

역사의 재발견, 그리고 영상간 뱃길 복원이라는 의미있는 사업을 시작해 놓고도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주춤거려서는 안 될 일이다. 열악한 나주시 만으로 이일 을 계속 추진해 나가기가 벅차다면 이 일은 전남도가 행․재정적으로 지원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영산강의 황포돛배가 갖는 상징성은 차치하고, 남도인 모두에게 지리적으로 정서적으로 가슴 깊숙이 자리한 영산강의 특성상 이제, 영산강 프로젝트 차원에서 가장먼저 선별적으로 시행해 주기를 주문한다.

바다여행의 막막함이나 불안감이 전혀 없이 내 집 앞 고샅길 같은 정겨운 물길...

잡힐 듯 가까운 그림 같은 푸른 들과 야트막하게 구릉진 솔숲이 감싸고도는 정취에 흠뻑 빠져들다 보면 지친 일상의 때가 말끔히 가셔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반대쪽에서 유람을 하고 오는 또 하나의 돛배를 보며 반가이 손 흔들 수 있는 여유는 아무데서나 맛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질박한 남도의 사투리가 정겹고 외갓집처럼 포근한 영산강 뱃길여행을 고단한 삶에 지친 남도인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