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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이야기

배고프던 시절의 곰탕, 나주 대표 아이콘으로 ‘우뚝’

by 호호^.^아줌마 2009. 2. 21.

신년기획…지역경제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⑥


배고프던 시절의 곰탕, 나주 대표 아이콘으로 ‘우뚝’


6천원의 성공철학 나주곰탕 명가들…하얀집.노안집.남평식당

“순수 한우고기만을 사용해 거짓 없는 맛으로 승부합니다”


 

 

절기상으로 입춘과 우수가 지났으니 날씨가 포근해질 만도 하련만 계속된 꽃샘추위로 몸과 마음이 움츠러드는 계절, 금성관 주변 곰탕거리에는 점심나절이 한참이나 지난 시간에도 손님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광주에서 일부러 곰탕을 먹기 위해 나주를 찾았다는 임재성(46․광주시 서구 치평동)씨.

“광주에도 곰탕집 많은데 굳이 나주까지 왔느냐”는 질문에 “다른 데서 먹는 곰탕은 그냥 곰탕이지 ‘나주곰탕’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또 다른 한 중년남성도 목포에서 일을 보고 광주로 돌아가는 길에 나주곰탕을 먹기 위해 점심시간을 넘기면서까지 나주를 찾았다고 밝힌다.

‘중국에 자장면이 없고, 인도에 카레가 없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전국에 퍼져있는 나주곰탕은 그저 곰탕일 뿐이요, 나주에 와야만 나주곰탕의 참맛을 볼 수 있다는 인식이 굳어진 듯하다.


시와 백과사전에도 <나주곰탕>

시인 정철훈 씨는 나주곰탕을 먹으며 이런 시를 지어냈다.


「석유내 이는 정제에서 아낙은 /마늘을 다지고 쪽파가 눈이 매웠습니다 /시집간 딸처럼 매웠습니다 ... 모든 울음이 가마솥에서 설설 끓고 /곰탕 같은 국물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곰탕 국물에 소금을 타고 파를 넣으면 /그게 바로 우리 슬픈 이야기가 아닙니까<나주곰탕 중에서>」


한 때는 춥고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서 즐겨먹었던 나주곰탕, 이제는 배가 고파서라기보다는 고향의 맛을 느끼기 위해, 건강을 위해, 진정한 식도락을 위해 나주곰탕을 찾고 있다.

두산세계대백과사전에서는 나주곰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나주곰탕은 전라남도 나주의 향토음식으로 나주에서는 약 20년 전(발행 당시 시점)부터 나주의 5일장에서 상인과 서민들을 위한 국밥요리가 등장하였으며 이것이 오늘날의 나주곰탕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주곰탕은 다른 지역의 곰탕과 다르게 좋은 고기를 삶아 국물을 만들어 국물이 맑은 것이 특징이다.」


현재 나주에는 금계동 매일시장과 목사내아, 금성관을 중심으로 곰탕집들이 밀집해 있어 자연스럽게 ‘곰탕의 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우선 전라남도가 남도의 대표적인 음식점 62곳을 선정, 소개하고 있는 ‘남도 음식명가·별미집’에 나주를 대표하는 식당으로 소개되고 있는 나주곰탕 <하얀집>, <남평식당>, <노안집>을 비롯해서 최근 들어선 <탯자리나주곰탕>과 <미향곰탕>, <이조곰탕> 등이 곰탕의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나주곰탕의 비결은 좋은 재료와 정성

곰탕은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지만 나주곰탕을 으뜸으로 치는 건 나주사람들만의 견해는 아니다. 담백한 맛을 내는 맑은 국물, 한입에 먹기에 버거울 만큼 크게 썰어낸 고기 등이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24시간 푹 고아낸 사골국물에 다시 순수 한우고기를 넣고 고아 국물이 맑으면서도 담백하고 곁들여 내놓는 김치와 깍두기도 빠질 수 없는 ‘찰떡궁합’이다.

<노안집> 이경자(69) 할머니는 새벽 4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고기를 앉힌다. 장장 50년 동안 해온 일이다. 그러면 아들인 정종필 사장이 국물을 만들고 양념을 한다.

그 뒤 아침손님이 찾을 때쯤 며느리가 내려와 고기를 손질하고 손님을 맞기 시작한다.

<남평식당>에서는 맑은 국물과 깊고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해 쇠뼈 없이 양지, 사태, 목살, 머리고기 등 살코기와 함께 양파, 마늘을 약간 넣어 3시간쯤 끓인다.

팔순을 훌쩍 넘긴 김양님(84) 할머니가 직접 맛을 관리하고 있다. 지금도 김치와 깍두기는 김 할머니의 몫이라고.

그 비법을 이어가고 있는 장행자(49)씨는 “다른 지역에서는 육수 맛을 좋게 하기 위해서 수입산 쇠고기를 넣는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만, 우리집은 100% 한우만 사용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곰탕을 끓이면서 기름기를 수시로 걷어내는 정성이 없다면 맑은 국물은 내기가 어렵죠.”

한창 손님이 밀려드는 점심시간. <하얀집> 주방에서는 뚝배기에 밥을 넣고 바로 곰탕국물과 건더기를 담아 손님에게 내도되련만 자꾸 밥에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며 시간을 끈다.

왜 그러느냐는 질문에 안주인 황순옥(67) 할머니는 “손님에게 곰탕을 내기 전 토렴을 잘해야 제 맛이 난다”면서 “미지근한 밥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해서 따뜻하게 만들어 내야 식사를 마칠 때까지 국물이 식지 않고 가장 맛있다”고 귀띔해 준다.

 

육문식당에서 하얀집, 남평식당, 노안집으로

지역의 곰탕집들이 이미 50년 전통, 60년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 것에 비춰보면 나주곰탕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0년대 나주 5일장에서 <육문식당>을 운영하던 할머니가 장터에서 잡은 소에서 나온 내장과 고기를 끓여 내놓은 국밥이 나주곰탕의 시작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나주 사람치고 이집 국밥과 막걸리 한 사발 안 먹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던 집이라고.

그 뒤를 며느리인 고(故) 임이순 할머니가 이었으며, 이후 1940년대 2대 할머니를 따라 국밥집 잔심부름을 하며 자란 길한수(75․현 하얀집 대표)씨가 3대째 뒤를 이었다.

나주곰탕 <하얀집>의 안주인인 황순옥 씨에 따르면, “내가 열아홉 살에 시집을 왔는데, 어제 시집을 왔다면 오늘부터 바로 곰탕 만드는 일을 거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게 시작한 곰탕을 지금은 딸들이 이어가고 있다. 장장 4대에 걸쳐 나주곰탕 명가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고 임이순 할머니로부터 곰탕기술은 전수받은 <노안집>의 이경자 할머니, 그 뒤를 아들 정종필(42)씨가 잇고 있으며,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남평식당>의 김양님 할머니의 뒤를 딸 장행자 씨와 며느리가 이어가고 있다.

 

편의시설.서비스 정신 아쉽다는 지적 속

현대인 입맛 부응하는 마케팅 전략 필요

 

 

성공신화 이대로 안주할 것인가?

이런 가운데 나주곰탕의 기술을 전수받아 분점을 내고 싶다는 문의가 최근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하얀집>의 경우 지난해 광주에 분점을 내 운영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까지 기술을 전수받아 창업을 하고 싶다는 문의가 잇따르고 있으며, <남평식당>도 나주시청 앞에 분점을 운영하고 있는 상태.

<노안집> 정종필 사장은 젊은 사람이 식당을 운영하는 게 녹록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우려를 뒤로한 채 적극적인 영업전략을 펼치고 있다.

“나주곰탕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브랜드 가치는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오는 손님만 받아서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겠죠. 한번 찾아온 손님이 다음에 다른 손님들을 데리고 다시 올 수 있도록 서비스와 편의시설을 확충하는데 좀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정 사장의 지적은 정확했다. 나주시청 홈페이지나 일부 곰탕집 홈페이지에는 심심찮게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는 지적과 불친절, 비위생적이라는 내용의 불평이 올라오고 있다.

곰탕국물에 밥을 말아주는 방식과 김치, 깍두기가 고작인 반찬도 젊은 소비자들에게는 불만이다.

이런 가운데 노안집에서는 다른 곰탕집들과는 달리 곰탕과 수육을 포장해서 가져갈 수 있도록 자체적으로 용기와 종이팩 등을 제작했다.

포장으로 판매를 할 경우 전체 음식값 6천원 가운데 표장용기 값으로 천원을 까먹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이문이 남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손님들에게 나주를 알리고 나주곰탕에 대한 이미지를 오래도록 심어주기 하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투자라고 밝히고 있다.


나주곰탕을 지역경제의 디딤돌로

이런 가운데 나주시가 ‘곰탕’과 ‘한우’를 특화한 ‘나주곰탕 식당가’를 조성, 외지인들의 입맛도 사로잡는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나주시는 성북동 나주5일장과 금계 상설시장을 묶어 삼도동 나주배원협 공판장 앞으로 이전하면서 ‘나주곰탕’을 특화시킨다는 계획으로 현재 용역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대다수 곰탕집들은 ‘귤이 회수(淮水)를 지나면 탱자가 된다’는 옛말을 상기시키며, 현재의 위치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종필 사장은 “정수루 앞에서 사매기떡방앗간 쪽으로 곰탕거리를 조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공판장쪽으로 곰탕집들을 끌고 간다면 위험한 발상”이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하얀집을 제외한 남평식당과 노안집은 매일시장 이전 계획에 따라 헐리게 된다. 앞으로 어떤 곳에 다시 자리를 잡게 될 지 아직까지는 오리무중이지만 오랜 세월 속에 푹 고아진 곰탕처럼 그 전통과 명성을 이어나갈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한 시기이다.

나주곰탕은 나주의 얼굴이며 문화요, 산업이 되고 있다. 이를 지역문화와 결부시켜 나주의 대표 아이콘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이제 지역사회의 몫이 아닐까? / 김양순 기자


 

 

곰탕명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하얀집> 황순옥 할머니와 <노안집> 정종필 씨, <남평식당> 장행자 씨

 

 

<하얀집> 황순옥 할머니

 

 

노안집 정종필 사장

 

남평식당 장행자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