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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이야기

운주사(雲住寺), 가을비

by 호호^.^아줌마 2009. 4. 9.

 

운주사(雲住寺), 가을비

                          

                                              - 르 클레지오 


흩날리는 부드러운 가을비 속에

꿈꾸는 눈 하늘을 관조하는

와불

구전에 따르면, 애초에 세 분이었으나 한 분 시위불이

홀연 절벽 쪽으로 일어나 가셨다

아직도 등을 땅에 대고 누운 두 분 부처는

일어날 날을 기다리신다

그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거란다.


서울거리에

젊은이들, 아가씨들

시간을 다투고 초를 다툰다.

무언가를 사고팔고,

만들고, 창조하고, 찾는다.

운주사의

가을 단풍 속에

구름 도량을 바치고 계시는

두 분 부처님을

아뜩 잊은 채


고요하고 정겨운

인사동의 아침

광주 예술인의 거리

청소부들은 거리의 널린 판지들을 거두고

아직도 문이 열린 카페에는 두 연인이 손을 놓지 못한다.


살며, 행동하며

맛보고 방관하고 오감을 빠져들게 한다

번데기 익는 냄새

김치

우동 미역국

고사리 나물

얼얼한 해파리냉채

심연에서 솟아난 이 땅엔

에테르 맛이 난다.


바라고 꿈을 꾸고 살며

글을 쓴다


기다리고 웃고 희망을 가지고

사랑하고 사랑하다

서울의 고궁에

신들처럼 포동포동한

아이들의 눈매는 붓끝으로 찍은 듯하다


기다리고 나이를 먹고 비가 온다

운주사에 내리는 가랑비는

가을의 단풍잎으로 구르고

길게 바다로 흘러

시원의 원천으로 돌아간다.

두 와불의 얼굴은 이 비로 씻겨

눈은 하늘을 응시한다

한 세기가 지나는 것은 구름 하나가 지나는 것

부처님들은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꿈꾼다

눈을 뜨고 잠을 청한다

세상이 벌써 전율한다.

 

 

시인의 작품세계, 한국에 대한 이해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는 1940년 4월 13일 프랑스 니스에서 출생했다. 나이지리아에 근무하는 영국계 의사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영국계 아버지를 두었지만 프랑스에서 교육받고 프랑스어로 작품을 쓰는 그는 프랑스어를 가장 잘 구사하는 현대작가로 분류된다.

그의 문학은제도와 집단보다는 인간을 서구 기독교 문명보다는 자연을 찬양한다.


본명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Jean-Marie Gustave Le Clezio)며 아버지가 모리셔스에서 군복무 중 만삭인 어머니가 니스로 돌아와 그를 낳았다. 그는 현재 프랑스 국적과 모리셔스 공화국 국적도 갖고 있다.


여덟 살 되던 해 나이지리아로 전근간 영국 군의관인 아버지를 처음 만난다. 그는 그곳에서 보냈던 시기를 "고통스러울 만큼 강렬한 자유이자 끊임없이 돌아가고 싶은 추억"이라고 회상한다. 니스 대학을 거쳐 60년 영국 브리스톨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그는 1963년 23세 나이로 첫 소설 `조서`를 발표한다. 이 소설로 그는 신인작가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인 르노도(Renaudot)상을 받았다. 물질문명에 희생되는 왜소한 인간군상을 다룬 `조서`는 프랑스 드골 정부에 대항한 알제리의 독립 전쟁을 모티브로 했다. 1966년 프랑스군에 입대한 그는 2년간 태국 방콕에서 교관으로 복무했다. 이때 접한 불교문화는 그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초반부터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새로운 문학적 가치를 찾아 나섰던 그는 남미 인디언의 삶에 매료돼 인디언 신화를 번역해 책으로 내기도 했다. 1980년 발표한 `사막`은 그에게 아카데미 프랑세즈 문학상을 안겨주었다. 클레지오를 가깝게 지켜본 사람들은 그를 `수도사`에 비유한다. 사색적이면서 엄격한 푸른 눈동자에 190㎝가 넘는 키, 짧은 머리에 수수한 옷차림은 그의 소박한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70이 가까이 된 나이에도 여행을 즐기는 그는 커피보다 녹차를 좋아한다.


르 클레지오 작품 세계는 크게 `서구 사회에 대한 비판`과 `원시적 신화 문명으로의 경도`라는 말로 정의할 수 있다. 인위적인 서구 문화를 떨쳐버리고 인간과 사물, 자연과 우주가 함께 어우러지는 세계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보여주는 것이 그의 소설이라는 얘기다. `조서`(1963) `발열`(1965)을 거쳐 1966년 `홍수`를 발표하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한 르 클레지오의 초기 작품은 상당히 어둡다. 서구 대도시 속에서 현대 도시인이 느끼는 불안감과 고독을 주로 그렸기 때문. 하지만 `거인들`(1973) 이후부터 작품 세계는 넓어지기 시작한다. 보다 안정된 모습을 보이면서도 폭넓은 주제를 담는 형태로 바뀐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극적인 변화의 이유를 르 클레지오가 지금까지도 그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남아메리카에서의 삶에서 찾는다. 그들에게서 서구 사회의 대안이 되는 원시적 신화 문명을 발견했고, 타락한 언어를 넘어서는 근원적인 세계를 발견했다는 것.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저편으로의 여행`(1975)부터 40번째 소설인 `혁명`(2003)까지 계속 일체의 생명과 시간이 관여하지 않는 신화적인 세계로 끊임없이 지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르 클레지오의 세계는 조금씩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예전 그의 작품들이 다른 민족과의 관계를 통해 개인의 삶을 그렸던 것과는 달리 요즘에는 자신의 삶과 선조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관심사가 옮겨지고 있다는 게 평론가들의 의견이다. 르 클레지오는 "상을 받는다는 건 (작가에게는) 시간을 얻는다는 걸 의미하며, 글을 계속 쓰고자 하는 욕망을 주기도 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르 클레지오 `情`이란 말 좋아해

 

"한국의 정(情)이란 개념이 참 오묘하고, 독특합니다. 영어나 프랑스어 사전을 뒤져봐도 번역할 길이 없어요. 정은 가족 간 친밀함을 초월해 인간 사이의 유대감을 내포합니다. 거기에 알싸한 고통까지 가미돼요. 제가 소설로 하려는 이야기가 `정`이란 개념에 묶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지난해 가을부터 1년 동안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강의를 했던 르 클레지오는 한국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작가다. 2001년 처음 방한한 그는 고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 등 한국 문학작품을 섭렵했고 황석영과 이승우 등 국내 문인들과 교류하고 있다. 르 클레지오는 "한국문학의 창조성과 상상력, 철학은 매우 개성적"이라며 "특히 역사와 사회, 정치를 반영하는 참여문학이 살아 있다"고 극찬했다.


서정적인 한국의 풍광에도 깊은 영감을 얻었다는 그는 첫 방문 때 전남 화순의 운주사를 둘러본 후 `운주사, 가을비`라는 시를 써 눈길을 끌었다. 두 번째 방한한 2005년에는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느낀 소감을 담은 시 `동양, 서양(역사-몽환 시)`을 완성해 서울국제문학포럼의 `작가의 밤` 행사에서 발표했다. 2006년에는 개인적으로 방한해 안내자 없이 한 달 동안 강원도 영월 일대를 여행하기도 했다.


그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서울의 역동적인 모습에 감탄하기도 했다. 지난해 내한했을 당시 르 클레지오는 "지난 번에 왔을 때는 기차역이 있던 신촌에 영화관이 들어섰더라. 서울을 일주일에 한 컷씩 찍어서 보여주면 마치 살아 있는 동물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르 클레지오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를 재미있게 본 한국영화 팬이기도 하다. 지난해 칸영화제 조직위원회에서 60주년을 기념하는 책 `영화와 문학과의 관계` 집필을 부탁받아 이창동, 박찬욱, 이정향 감독를 직접 취재하기도 했다. 프랑스 영화와 마찬가지로 한국 영화가 거대한 자본을 앞세운 할리우드 영화산업에 지배받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라는 게 그의 평가다.


"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마치 사기꾼의 희생양이 된 것 같다`는 이창동 감독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한국 영화는 할리우드에 저항해 제한된 시장을 대상으로 제작되고 있지만 영화예술을 존중하는 작품을 갖고 있어요."


그가 한국에 보여준 관심만큼이나 국내 독자들도 그의 문학을 사랑한다. 르노도상을 수상한 그의 처녀작 `조서`(2001년 민음사 펴냄)를 비롯한 `황금물고기`(1998년 문학동네)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2001년 다빈치) `성스러운 세 도시`(2001년 문학동네) `혁명`(2007년 열음사) 등 대표작 10여 편이 번역 출간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문명과 서구 중심 사회에서 탈피해 자연으로 나가는 문학세계가 도시인들의 마음을 매료시키며 `르 클레지오 마니아`층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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