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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김현임 칼럼… 반가(畔佳)

by 호호^.^아줌마 2009. 6. 19.

 

김현임 칼럼… 반가(畔佳)


 

생일을 맞아 아이들이 왔다. 누구보다 반가운 건 젖니박이 새 손녀려니 아들과 사위, 며느리와 딸, 그리고 동생을 본 후 제법 의젓해진 혜서로 해 조용하던 마당이 일순 떠들썩하다.

 

하긴 우리집 마당이 평소에도 그리 조용한 편은 아니었다. 먹이가 부족하면 개밥으로 해결하던 토박이 까치가족과 정확히 숫자 헤아려보지 않은 텃새 무리, 화단가 절구통을 서식처 삼은 홍초록 무늬 현란한 무당개구리 가족이 다섯, 고추밭 고랑의 두꺼비가 일곱, 하긴 그네들을 내가 거두는 식솔이라 말하긴 좀 뭣하다.

 

어쨌든 우리 부부와 한 솥밥을 먹는 아홉 마리의 개와 두 마리의 고양이들은 어엿한 내 식구가 아닌가. 댓돌에 발 내리기가 무섭게 달려드는 녀석들로 하여 쓸쓸할 겨를이 없었으니 그 또한 홍복(洪福)이다. 

 

죽순을 삶아 냉동고에 저장하고 큰 솥 가득 마늘장아찌를 담았다. 앵두와 보리수 열매로 술도 담그고 여느 집에선 김장이라 할 만큼의 넉넉한 김치도 담가놓고, 아픈 허리를 끙끙거리면서도 연신 콧노래가 나오니 참으로 행복한 노역이다. 이번 메뉴는 뭘까 오는 내내 궁금했다는 딸의 말처럼 머리 맞대고 함께 먹는 푸짐한 음식이야말로 가족 모임의 가장 큰 즐거움 아닐까.

 

우리 가족 모임 때마다 치루는 정례적 행사는 화투다.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굴지의 대기업에 당당히 합격한 실력 아니던가. 그런데 잡기엔 젬병인지 걸핏하면 바닥나는 자금난에 흑산도 새우잡이 어선에 실려 갈 처지에 이르는 사위다. 궁여지책 한 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석에 떨어진 먼지 줍기, 이른바 필드청소로 얻은 긴급구호자금으로 사위는 어렵사리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아들내외는 일찌감치 비축해 놓은 아이스크림을 高價(?)에 파는 약삭빠른 상술로 심야영업의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아직은 학생신분인 딸은 아예 떼어먹는 파렴치로 버틴다.

 

평소와 달리 과식한 탓에 심심찮게 체내가스를 배출, 환경벌과금이라는 엄격한 법령에 의거 구성원 각자에게 번번이 1000원의 거금을 무는 나, 가히 냉혹 살벌한 가족도박판인데도 웬걸 한옥천장을 뒤흔드는 웃음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눈발 날리는 풍경이 너무도 인상적이던 가위손, 줄리엣뜨 비노쉬와 공연한 낭만적 영화 초콜렛을 비롯, 그를 그답게 하던 영화가 카라비안의 해적 시리즈였다. 신산한 삶의 자락에 우울해질 때마다 장난꾸러기 배우 조니뎁을 생각하면 내겐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그가 이번에 일을 벌였다. 바하마 군도에 위치한 자신 소유 섬의 강, 그 이름에 요절한 친구 히스 레저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Heath's Place'다. 일찍이 이처럼 순수한 곳을 본적이 없단다. 번잡한 할리우드를 벗어나 보통 사람으로 될 수 있는 장소, 이곳에선 자신의 맥박이 느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고백했다.

 

열 두 해 전 영산강변에 집을 짓고 반가(畔佳)라 명명했다. 이른바 ‘물가의 아름다운 집’이다. 해마다 복숭아, 모과, 사과, 무화과, 석류 등속의 과실수를 심으며, 또한 과꽃, 나리, 분꽃, 봉숭아, 함박꽃 등등의 갖가지 토종꽃을 심으며 내가 한 간절한 기원이 무엇이었던가.

 

애써 세상의 규격에 맞추려 하지 마라. 누구와 비교되는 삶이 아니라 오롯이 네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꾸려라. 소중한 생의 기회를 헛짚지 마라. 네가 처한 모든 상황을 즐겨라. 어미의 이런 충고가 아직은 젊은 그들의 귀에 먹힐 리 없기에 입 감쳐문다.

 

아름드리나무와 무더기 꽃들이 어우러진 반가가 조니뎁의 히스플래이스처럼 언제까지나 그들의 맥박이 느려지는 느긋한 장소가 되기만을 부디부디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