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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김현임 칼럼… 달팽이집 예찬

by 호호^.^아줌마 2009. 11. 16.

 

김현임 칼럼… 달팽이집 예찬

 


잔뜩 웅크리고 자는 버릇은 나이가 들어서도 좀체 고쳐지지 않는다. 유년 시절, 고추 달린 막내만 빼고 우리 세 자매는 일하는 언니들과 어울려 한 방에서 잤다.

종이사람 오려 옷 만들어 입히는 일명 사람놀이라던가, 수건돌리기, 기껏해야 나란, 나란히 누워 언니들이 부르던 유행가 들어주기 따위였지만 어른들 눈을 피해하던 은밀한 놀이와 뒤풀이 밤참은 즐겁기만 했다.

 

고로케라던가, 동그랑땡 등등의 언니들이 솜씨 부린 밤 요리, 그 특별한 맛을 내 어찌 잊으랴. 그리고 밤마다 거의 쟁탈전에 가깝던 이불 차지해 덮기, 아마도 온몸 둥글게 말아 옹송거리며 자는 잠버릇은 그 후유증이리라. 어쨌든 방에 관한 한 나는 좁은 방 선호요, 컴컴하다 싶게 조도 낮춘 방이 편안하다. 

 

식구들이 빠져나가기 무섭게 커튼을 내리쳤다. 대낮에도 한밤중처럼 어둑신한 방에 램프를 켜고 책을 보고 있는 내게 어머니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꾸중하셨다.

 

“이 무슨 도적놈들 접굴도 아니고!”

 

들뜬 생각들을 끌어내려 조용히 반추하는, 내 삶을 어지럽히던 숱한 부유물들을 가라앉히는 소중한 침전의 시간이라는 것을 어머니께서 어찌 짐작하실까.

 

한 작가의 회상이다. 가난한 시절의 한이 맺혀서 자신의 아이들에게만은 넓은 방, 밝은 방을 고집하고 싶었단다. 부디 품 넓고 밝게 자라라는 소망이었다. 하여 너른 창에 햇살 무차별 드나드는 밝은 방을 꾸며 주었더니 필자의 표현대로라면 아이가 자꾸 울근불근 속을 썩이더란다. 심리학을 하는 친구 조언하기를 아이들은 적당히 숨을 데가 없는 구조의 공간에서 계속 살면 그렇게 산만해질 수 있단다.

 

남동생을 등허리에 올라 태워 말 노릇 해주다가 실수로 고 귀한 녀석의 코피를 터트리게 했다던가, 킬킬거리며 봉사놀이를 하다가 장롱유리를 깨트렸을 때라던가. 그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질러도 하루만 꽁꽁 어머니의 눈에 띄지 않으면 우리는 무사했다.

 

숨도 크게 쉬지 못하던 어린 도망자를 위해 누군가 참기름 냄새 고소한 비빔밥을 챙겨다 주던, 말 그대로 코딱지만 한 우리들의 피신처 다락방! 그 추억 때문인가. ‘숨바꼭질하기 좋은 집’이라는 글 속 표현이 마음에 와 닿는다.

 

칸칸이 나눠 작은 방을 너 댓개 만들어 놓은 내 집 구조를 보고 조카딸은 미로(迷路) 같단다. 그 미로 한 켠에 서식(棲息)하듯 고요히 깃들어 다만 환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노라면 스멀스멀 부피 큰 행복감이 밀려온다.

 

‘고독한 동굴을 너의 아버지로 삼고, 정적을 너의 낙원으로 만들라’는 인용구는 애써 해를 피해 활동하길 즐기는, 제 몸에 달라붙을 만큼 이 작은집에 대만족해 온갖 행태의 자랑과 거드름 피우고 있는 내 달팽이 기질을 충분히 변명해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