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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늙음이 이래서야

by 호호^.^아줌마 2010. 1. 16.

 

살며 사랑하며 늙음이 이래서야


김수평


삼희성(三喜聲)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듬이 소리,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 갓난아이의 울음소리. 이 세 가지 소리를 인생에서 가장 기쁜 소리라고 했습니다. 한데, 우리 마을은 이런 소리가 끊긴지 오래 되었습니다.


초등학교가 있었습니다. 풍선 바람 빠지듯 시나브로 학생 수가 줄더니 분교로 내려앉았습니다. 결국 전교생이 일곱 명이라는 기막힌 처지가 되어 문을 닫았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른 학교로 팔자에 없는 유학을 다니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 지경이니 사람은 살아도 ‘소리’가 없는 폐사지(廢寺址)같이 적막한 마을이 되었습니다. 가끔 공지사항을 알리는 확성기 소리가 그런대로 사람 사는 기운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노인들이 많이 사는 익은 마을이 되었습니다. 우리 마을은.


차를 몰고 시내에 갑니다. 저만치 앞서 허리 굽은 할머니가 보입니다. 지팡이에 의지한 채 안쓰럽게 바람 속을 걸어갑니다. 손을 듭니다. 차가 속도에 밀려 그대로 지나칩니다. 물론 운전자에게는 함부로 사람을 태우지 말라는 금기가 있습니다. 혹 좋지 않은 일이라도 생기면 덤터기를 쓸까 하는 계산 속 때문이겠지요. 더더욱 요즘같이 막된 세상에서 젊은 여자들은 생각도 말 일입니다.


그래도 허리 굽은 할머니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마음이 두 패로 갈리어 싸움질을 합니다. 그냥 가자. 아니다, 되돌아가 태워드려야 한다. 늙은이들이 모여 사는 우리 마을 할머니가 분명한데, 그러지 않더라도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돕는 게 마땅하고 마땅한 일인데….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었습니다. 차를 돌렸습니다. 할머니가 길가에 주저앉아 있습니다. 차에 모셨습니다. 혼자서 망설이고 혼자서 결정한 일에 혼자서 칭찬합니다.


“할머니, 어디 가세요?”

“농협에 가요.”

“아, 그러세요. 올해 연세는 몇이신데요?”

“야든 일곱이요.”

“집에는 누구랑 같이 사세요?”

“나 혼자 사요.”

“할아버지는 안 계시고?”

“하이고, 그놈의 영감탱이, 젊었을 때는 술 묵고 바람 피더니 힘 떨어징께 재끼(도박) 헙디다.”

늙어지면 어린애로 돌아가는가? 드러내지 않아도 될 치부를 저리 흔연스럽게 뱉어내다니.

“자식들은요?”

“하이고, 큰 아들이 실패해서 집도 잽혀묵어부렀소.”

말끝마다 기러기 한숨 같은 ‘하이고’를 입에 달고 사는 할머니. 이건 대화가 아닙니다. 아픈 상처를 덧나게 해 생피를 흘리게 하는 고문입니다. 차라리 입을 다물기로 했습니다.

“할머니, 농협 다 왔어요. 여기서 내리세요.”

“아이고, 고맙소. 아이고, 고맙소. 이것 받으씨요.” 하면서 천 원짜리 한 장을 내밉니다.

“할머니, 이 차는 돈 안 받는 차여라우. 그냥 내리세요.”

“아이고, 이러먼 안 댄디. 이러먼 못쓴디.”


인생의 노을을 밟고 이제 막 서산을 넘으려는 저 할머니는 홀로 어떻게 살까? 저런 몸으로 밥 짓고, 걸레질 하고 형광등은 어떻게 켤까? 이 추운 죽음 같은 겨울밤, 잠이 어지러울 때 뒤척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자나 깨나 ‘국민을 위한다’는 나랏님한테 혹시 서운한 마음은 없을까? 코스피 지수 1100선이 무너지고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서는 일이 할머니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천 리 밖에 딴 살림 차리고 사는 자식들의 의미는 또 무엇일까? 쇠토막같이 단단한 젊은 시절도 있었으련만 늙는다는 것이 정녕 저리 애잔한 일인가?


몹시 춥습니다. 없이 사는 사람들한테는 어쩌든지 그저 봄이라도 어서 와야 할 텐데. 책상 위의 자스민 꽃망울이 통통하게 부푸는 것으로 보아 봄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천하에 누구라도 늙지 않는 사람이 있으리오만 인생의 하오에 찾아오는 늙음이 이래서야 원.

날씨만큼이나 온종일 마음이 춥습니다. 찔린 데 없이 마음이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