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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야기

하늘을 능히 이겨먹는 꽃이라니...능소화(凌霄花)

by 호호^.^아줌마 2010. 7. 6.

 

나주시 금계동 주택가 담장에 핀 한무리의 꽃더미 능소화,

이름도 그렇거니와 생김새가 보통꽃 같지는 않다.

 

늘 오가며 멋지다는 생각만 했는데 오늘은 카메라를 들고 다가갔다.

 

 

취할 정도로 아름답지는 않다.

정신이 아득해질만큼 향기롭지도 않다.

적당히 화려한 꽃잎과 적당히 생생한 이파리,

한 줄기에서 꽃봉오리 하나가 머물면서 꽃이 피고, 또 지고...

그러면서 후텁지근한 여름 장마철을

화사한 자태로 꾸며주니 고맙지 아니한가.

간혹 비가 오는 날

더 피어있어도 될 꽃잎들이

길바닥에 축!축! 떨어져 나뒹구는 그 모습마저도 아름다운 꽃 능소화.

꽃이 떨어질 때도 시들지 않은 채 그대로 처연하게 떨어진다.

 

벌들이 윙윙 날아들고 있어

향기가 있나 코를 벌름거려보는데도 향기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능소화(凌霄花, Chinese trumpet vine)

속씨식물 쌍떡잎식물강 꿀풀목 능소화과 능소화속

학명:  Campsis grandifolia (Thunb.) K.Schum.

분포:  아시아

크기:  약 10.0m

 

능소화는 중국 원산의 갈잎 덩굴나무다. 담쟁이덩굴처럼 줄기의 마디에 생기는 흡반이라 부르는 뿌리를 건물의 벽이나 다른 나무에 붙여 가며 타고 오른다. 7~8월에 가지 끝에서 나팔처럼 벌어진 주황색의 꽃이 핀다. 추위에 약하다.

 

다른 종으로 능소화보다 꽃이 조금 작고 색은 더 붉으며 늘어지는 것이 없는 미국 능소화(Campsis radicans Seen)가 있다.

 

 

 

어느 꽃에나 전설 한 두 가지는 따라다니듯이 능소화도 예외는 아니다.

역시나 버림받은 여인의 恨이 서린 전설이 있다.

 

아마 조선시대쯤일 것이다. 아니면 중국에서 건너와 한반도에 뿌리를 내렸으니까 고려시대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 어느 왕조시대에 구중궁궐 깊숙한 곳에 복숭아 빛 뺨에 자태가 고운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단다.

 

어느날 임금의 눈에 띄어 하룻밤 사이 빈의 자리에 올라 궁궐의 어느 곳에 처소가 마련되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임금은 그날 이후로 소화의 처소에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소화가 장희빈 같은 여우기질이 있었더라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임금을 불러들였겠지만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어디, 임금의 승은을 입은 궁궐여인들이 한 둘이어야 말이지. 결국 그녀는 그 수많은 여인들의 시샘과 음모에 밀려 궁궐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밀려나게 됐고 그런 음모를 모르는 채 마냥 임금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혹시나 임금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왔는데 돌아가지는 않았는가 싶어 담장을 서성이며 기다리고, 발자국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장너머를 넘어다보느라 학모가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기다림에 지친 이 불행한 여인은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떴다.

권세를 누렸던 빈이었다면 초상이라도 섭섭치 않게 치러주었겠지만 잊혀진 구중궁궐의 여인은 초상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다만 그녀의  "담장가에 묻혀 내일이라도 오실 임금님을 기다리겠노라" 하는 유언에 따라 그렇게 사라져갔다.

 

이듬해 여름, 소화가 살았던  처소의 담장을 덮으며 주홍빛 꽃이 넝쿨을 따라 주렁주렁 피어났는데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높게,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고 꽃잎을 넓게 벌린 꽃이 피었으니 그것이 능소화가 되었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

 

 

 

하지만 이런 통속적인 전설과는 달리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능소화(凌霄花), 뜻을 풀어보면 하늘을 능히 이기는 꽃이 아닌가?  이 밖에도 금등화(金藤花), 양반꽃, 장마철에 핀다고 장마꽃이라고도 부른다.

 

'명예'라는 꽃말을 갖고 있다.

능소화는 조선시대에는 상민의 집에 심으면 잡아다가 곤장을 쳤다고 하는데 사대주의에 젖어있던 양반들이 중국에서 가져온 귀한 꽃이라며 애지중지했을 것도 같다.

 

능소화 꽃은 독이 있다고 하는데 꽃가루 그 자체성분은 독성이 전혀 없고 꽃가루에 갈고리 같은 것이 붙어 있어서 눈에 들어가면 안 좋으므로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인디안은 능소화를 먹기 때문에 당뇨가 예방되고 중풍이 예방된다고 믿고 있다. 정상인이 능소화 꽃냄새를 깊이 맡으면 냄새에 도취되고 중독이 된다는 설도 있고  또한 뇌를 손상한 정신이상자가 이 능소화의 꽃향기에 깊이 빠지면 정신을 찾는다고도 한다.

 

 

 

                      당신을 향해 피는 꽃


                                    박남준


능소화를 볼 때마다 생각난다

 

다시 나는 능소화, 하고 불러본다

두 눈에 가물거리며 어떤 여자가 불려 나온다

누구였지 누구였더라

한번도 본 적 없는 아니 늘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던

여자가 나타났다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어 나무에, 돌담에

몸 기대어 등을 내거는 꽃

능소화꽃을 보면 항상 떠올랐다

 

곱고 화사한 얼굴 어느 깊은 그늘에

처연한 숙명 같은 것이 그녀의 삶을 옥죄고 있을 것이란 생각

마음 속에 일고는 했다


어린 날 내 기억 속에 능소화꽃은 언제나

높은 가죽나무에 올라가 있었다

연분처럼 능소화꽃은 가죽나무와 잘 어울렸다

 

내 그리움은 이렇게 외줄기 수직으로 곧게 선 나무여야 한다고

그러다가 아예 돌처럼 굳어가고 말겠다고

쌓아올린 돌담에 기대어 당신을 향해 키발을 딛고

이다지 꽃 피어 있노라고


굽이굽이 이렇게 흘러왔다

한 꽃이 진 자리 또 한 꽃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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