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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여행기

국립나주박물관 성공 노하우, 왕의 도시 5대 국립박물관에서 찾아야

by 호호^.^아줌마 2010. 8. 25.

◇ 과거 왕들의 도시에 세워진 국립박물관들도 전시 컨셉과 운영 프로그램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사진은 공주박물관 뜰에 전시된 대통사터 석조물들> 

 

 

기획② … “와~ 박물관이 보인다”


 국립나주박물관 성공 노하우, 왕의 도시 5대 국립박물관에서 찾이야

 

유물전시위주 보다 다양한 역사·문화 체험공간 확보 ‘성공의 열쇠’


영산강 유역의 고대문화와 유적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국립나주박물관이 큰 이변이 없는 한 다음달에 첫 삽을 뜨게 될 전망이다.

반남면 신촌리 자미산 자락 7만4천㎡ 부지에 건축연면적 1만1천㎡ 규모로 지어지는 국립나주박물관은 반남고분군과 다시 복암리 고분군 등 영산강 유역의 고대문화 유물들을 비롯해서 호남지역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을 보장할 수장고, 영산강 고대문화에 대한 조사·연구·발굴 등을 위한 각종 시설,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역사·문화 체험장 등이 마련될 계획이다.

하지만 전국의 내로라하는 국립박물관과 문화시설 등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놓고도 관람객 유치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심에서 뚝 떨어져 들판 한복판에 들어서게 될 나주박물관이 ‘산지기집 거문고 신세’가 되지 않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나주뉴스>는 지난 166호(8월 9일치)에서 국립나주박물관 추진현황을 살펴본 데 이어, 이번호에서는 지방에 있는 전국 주요 국립박물관 비교답사를 통해 나주박물관 성공의 열쇠를 찾아본다. / 편집자주


국립박물관도 빈익빈 부익부 시대


국립나주박물관의 비전을 찾기 위해 다른 지방의 국립박물관을 찾아 나선 것은 폭염과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29일부터 나흘 동안이었다.

주제는 왕들의 도시와 당시의 문화유적을 보관하고 있는 국립박물관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백제의 수도였던 충남의 부여박물관과 공주박물관, 그리고 신라의 수도 경북 경주박물관, 가야의 건국신화가 깃든 경남 김해의 구지봉 기슭에 자리 잡은 김해박물관, 그리고 왕도는 아니었지만 광주전남의 유일한 국립박물관인 광주박물관이다.

오가는 여정 속에 독특한 주제와 테마로 운영되고 있는 문경새재박물관과 진주박물관, 그리고 조선왕조의 본산지인 전주 한옥마을의 경기전과 현대의 통치자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충북 청원군의 청남대를 다녀왔던 것도 우연한 맥락 속에 맞아떨어지는 코스였다.


백제의 흔적을 담아 부여박물관&공주박물관


백제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사비시기(538~660)의 수도인 부여에 위치한 부여박물관은 백제문화의 연구와 조사, 보존에 중축정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백제문화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박물관에는 제1전시실~ 제3전시실, 박만식 교수 기증실과 야외유물전시장이 있으며, 문화체험을 위한 체험교실이 마련되어 있다.

제1전시실에는 백제 이전의 선사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특히, 청동기시대의 생활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청동기문화 유물을 중심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제2전시실에는 백제의 생활문화를 주제별로 소개하고 있으며 백제의 문자, 토기, 도량형, 전쟁과 무기, 금속공예, 금동대향로로 나누어 당시 백제인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제3전시실에는 백제의 예술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불상과 공예품, 건축과 관련된 중요 유물을 선보이고 있는데 백제의 불교조각, 대외교류, 장신구, 건축과 기와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으며, 박만식 교수 기증실에는 백제토기의 소박함에 반하여 30여년간 틈틈이 수집한 박만식 교수의 기증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야외에는 부여석조(보물194호)를 비롯해 박물관 앞 뒤뜰에 탑, 불상, 석조 등 많은 석조유물이 전시돼 있는데 아쉽게도 연대를 보니 고려시대 부조물이 대부분이었다. 더구나 별다른 특색 없이 정원 군데군데 놓여있는 이들 유물들은 그저 오랜 세월을 이겨낸 역사적인 돌덩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부여박물관 앞 뒤뜰에 탑, 불상, 석조 등 많은 석조유물이 전시돼 있는데 아쉽게도 연대를 보니 고려시대 부조물이 대부분이었다. 더구나 별다른 특색 없이 정원 군데군데 놓여있는 이들 유물들은 그저 오랜 세월을 이겨낸 역사적인 돌덩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공주로 가보자.

웅진백제의 왕도였던 공주에 자리 잡은 국립공주박물관은 웅진백제시대의 문화를 주제로 하는 테마박물관이자 지역박물관이다.

1층 무령왕릉실은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으며, 2층 충청남도의 고대문화실은 원삼국시대부터 사비(부여)로 천도하기 이전까지 웅진(공주)을 중심으로 한 백제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고, 야외정원에서는 공주 일원에서 출토된 많은 석조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을 나와 건물 뒤편 언덕바지에 있는 공주 송산리5호분을 전사이전 해놓았다는 곳을 가보았다. 하지만 입구는 동아줄로 막혀있고 주변에 잡초만 무성해 선뜻 접근해보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다. 박물관이 그저 옛 유물을 보관·전시한다거나 역사를 흉내내는 것만이 제 역할이 아님을 보여주는 현실이기도 하다.

 

  

 

 

◇ 박물관이 단지 유물을 보관·전시하는 역할에 그친다면 그

것은 또 하나의 무덤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위 ↑사진은 공주박물관 뜰의 대통사터 석조미술품들과

← 백제 고유의 고분인 횡혈식 석실고분을 옮겨놓은 모습>

 

 

 

 

 

문화로 밥먹고 사는 도시 경주, 그리고 경주박물관


경주방문은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녹록치 않았다. 밤중에 도착해 숙소를 정해야 하는데 다른 지역에서 보통 4~5만원 하는 모텔의 숙박비가 10만원씩이다. 그것도 없어서 줄 수가 없단다. 시내를 몇 바퀴 돈 끝에 변두리에 허름한 숙소를 잡았다. 짐을 풀고 보니 개미들이 동침을 요구하는 방이었다.

다음날 아침 박물관을 찾아나서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이른 오전시간대였지만 이미 주차장은 만원이었고, 관람권을 받는 창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박물관인지, 놀이공원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경주박물관은 올해 1975년 경북 경주시 동부동에서 현재의 인왕동으로 이전 개관한 뒤 35년 만에 관람객 5천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 5월 부모와 함께 체험학습을 위해 박물관을 찾은 대구의 한 초등학생이 5천만 번째 관람객에 선정돼 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국보 제188호) 복제품을 받았다고.

경주박물관은 1945년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출범했다가 1975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승격하며 현 위치인 인왕동으로 이전 개관했다. 1982년에 안압지관, 2002년에는 미술관을 신축했고, 1994년에는 경주박물관 대학을 열었으며, 2005년에는 어린이 박물관을 개관했다. 현재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 등 국보 13건과 천마총 금제 관식(보물 제617호) 등 보물 30건 42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런 정도의 규모로도 모자라 내년까지 박물관 남쪽 부지 6만여㎡를 매입하고 북쪽의 정문을 남쪽으로 이전하는 등 박물관 시설을 대폭 확충해 명실상부한 경주관광의 관문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경주박물관에서는 과거 이 도시의 위엄과 이 도시사람들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의 모습에서, 과연 토기와 무기, 장신구 몇 가지에 시선을 빼앗기는 경우는 드물다. 그들의 발길이 오래 머무는 코너는 당시의 시대상과 왕권의 위엄을 잘 드러내는 왕관 앞, 교과서와 10원짜리 동전에 나오는 다보탑, 그리고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인 성덕대왕 신종(국보 제29호)앞이다. 종의 규모와 모양도 국보급이지만, 무엇 보다 아기를 시주해 넣었다는 전설로 아기의 울음소리를 본 따 에밀레종이라 한다는 전설이 관심을 끄는 건 유난히 전설과 야화를 좋아하는 우리 국민성에도 들어맞는 설정이다. 

경주박물관은 그런 점에서 발 딛을 틈 없이 밀려오는 관람객이나 전시유물 앞에서 그 시대를 반추하는 모습에서 돌아본 박물관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박물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더구나 다른 박물관들이 전시실 안팎에 관람객들의 쉴 곳을 마련해놓은 곳이 거의 없으나 경주박물관은 관람 규모가 크고 넓은 만큼 쉬엄쉬엄 관람할 수 있도록 휴게시설을 설치해놓은 것은 좋은 발상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인

성덕대왕 신종(국보 제29호)앞.

종의 규모와 모양도 국보급이지만,

무엇 보다 아기를 시주해 넣었다는 전설로

아기의 울음소리를 본 따 에밀레종이라 한다는 전설이

관심을 끄는 건 유난히 전설과 야화를 좋아하는

우리 국민성에도 들어맞는 설정이다. 

  

 

◇경주박물관의 위엄과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천마총 금관(국보 188호)

 

가야의 전설 김해박물관 그리고 봉하마을


국립김해박물관은 고대국가의 하나인 가야(加耶)의 문화유산을 집대성하기 위해 1998년 7월에 개관했다. 가야의 건국설화와 문화재를 집약 전시하고 있으며, 부산·경남지역의 선사시대의 문화상과 가야의 성장 기반이 된 변한(弁韓)의 문화유산을 살펴볼 수 있다.

가야는 다른 고대국가들에 비해 역사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유물·유적의 발굴을 통해 가야사를 복원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나주박물관과 얼개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김해박물관은 다른 국립박물관들과 달리 고고학 중심의 전문박물관으로 특성화 돼 있다.

김해박물관에서는 마침 창녕군에서 발굴된 16세 순장 소녀 ‘송현이(인골 출토지역인 창녕 송현동의 지명을 이용하여 보다 친근감 있게 부르고자 만든 애칭)’를 주제로 한 ‘비사벌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내세에서 주인을 모시라는 엄명에 따라 꽃같은 나이에 목숨을 버리고 함께 매장됐던 순장 소녀를 스토리텔링으로 엮어낸 기획전시회에 관람객들의 관심과 호응이 남달랐다.

사실, 몇가지 유물 외에 특별한 역사와 생활상이 밝혀지지 않고 반남고분군과 복암리고분군에 비추어 이같은 기획은 앞으로 들어서게 될 나주박물관이 벤치마킹해 볼 의미있는 기획이 아닐까 싶다.

아울러 김해박물관을 들른 관광객들이라면 김수로왕릉과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와 묘소를 빠뜨릴 리 없을 것이다. 과거 왕도로서의 위엄 보다는 전직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점에서 6년 전 방문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도시의 발전상을 볼 수 있었다. 통치자들의 음덕은 그 후세에 이르기까지 빛을 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야는 다른 고대국가들에 비해 역사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유물·유적의 발굴을 통해 가야사를 복원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나주박물관과 얼개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김해박물관은 다른 국립박물관들과 달리 고고학 중심의 전문박물관으로 특성화 돼 있다.

 

   

 

김해박물관을 들른 관광객들이라면

김수로왕릉과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와 묘소를 빠뜨릴 리 없을 것이다.

과거 왕도로서의 위엄 보다는 전직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점에서

6년 전 방문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도시의 발전상을 볼 수 있었다.

통치자들의 음덕은 그 후세에 이르기까지 빛을 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주의 역사가 고스란히...광주박물관


광주와 전남 일원에 있는 문화재를 수집·보관하고 있는 광주박물관은 선사시대 유물로부터  백제·통일신라·고려·조선시대에 걸친 불교미술품과 각종 도자기 등이 있고, 신안 앞바다의 해저유물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기획전시실에는 그동안 그림과 모형으로만 봐왔던 반남 신촌리9호분 출토 국보 제295호 금동관이 전시돼 있다. 아울러 복암리고분군과 오량동 옹관가마터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 전시물들은 오는 2012년 나주박물관이 개관하게 되면 본래의 고향으로 환고향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광주박물관은 다음달 3일 개관을 목표로 현재 휴관한 상태에서 본관 전시동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역시 다른 박물관들과 마찬가지로 전시실을 찾는 관람객의 발길이 뜸한 상태에서 주말이면 무료 영화상영을 하고, 어린이들의 위한 체험학습 프로그램과 규방공예 강좌, 청소년들을 위한 밀리터리 뮤지엄교실 등으로 꾸준히 지역 관람객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박물관은 유물전시관만이 아닌 역사와 문화를 현대에 되살리고 체험하는 곳이라는 운영방침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나주박물관과의 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운영의 컨셉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는 관계자의 설명에서 나주의 현실도 별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나주박물관의 가장 큰 관건은

광주박물관과의 차별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위↑ 사진은 광주박물관에 보관·전시중인 반남 신촌리9호분 출토 금동관(국보 제295호)과

다시면 복암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철제칼들↓↓>

 

 

 

국립박물관, 짓기만 하면 끝나나?


지난 2008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전국 14개 국립박물관이 관람료를 폐지해, 실질적으로 무료관람이 이뤄지고 있다. 국민들의 문화에 대한 향수를 높인다는 게 무료관람을 추진한 정부의 입장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고질적인 경영난을 해결하지 못해 결국 정부에서 언제까지 박물관 경영에 투자할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다.

실제로 박물관의 주된 업무인 유물의 발굴, 보존, 전시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이 비용은 입장료나 기념품 판매 등을 통한 박물관 자체 수입과 지역 경제전반에 미치는 영향 등에 의해 상쇄될 수 있는데, 국내 박물관의 경우 관람객과 수입원 적어 대다수 박물관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박물관들도 빈익빈 부익부에 따른 편차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박물관은 살아있어야 한다. 역사와 유물, 그리고 인물이 현실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주박물관의 시대적 배경이 될 마한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여기에 우리지역 대문호인 승지행(1920.8.4~2008.3.7)선생의 단편소설 ‘가라전(현대문학 1958.7)’을 꼽을 수 있다. 낙랑에서 마한으로 이주한 도공 가라전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아내 달아기의 얘기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 속에서 마한의 생활상과 풍습을 엿볼 수 있는 줄거리가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이 작품을 모티브로 1982년에 김상열 각색연출로 연극이 만들어져 호평을 받기도 했다.

아마도 이 소설을 모티브로 영화나 드라마가 제작이 된다면 나주의 중심세력이었던 마한, 그리고 그 시대상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역민들의 숙원사업으로 지어지는 나주박물관이 유물저장창고 역할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해외 유명 박물관들은 차지하고라도 국내에서 잘 나가는 박물관 몇 곳이라도 벤치마킹하고 혁신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전남지역 최초의 국립박물관이 될 국립나주박물관 청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