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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여행

프랑스이야기⑦…파리 약방의 감초 '에펠탑'

by 호호^.^아줌마 2010. 11. 10.

프랑스이야기⑦…파리 약방의 감초 에펠탑

 

 

 

파리 어디를 가나 눈에 띄지 않는 곳이 없는 에펠탑.

 

 

1889년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

박람회를 계획하면서 이에 적합한 기념물의 설계안을 공모했다.

100여 점의 설계안이 제출되었으나,

100주년기념위원회는 유명한 교량기술자

귀스타브 에펠의 설계안을 채택했다.

 

높이 300m의 노출격자형 철구조를 세우려는 에펠의 구상은

경이와 회의를 불러일으켰으며

미학적 측면에서도 적지 않은 반대를 받았다.

 

당시 파리 시내의 건물, 다리, 길은 모두 돌로 되어 있었다.

그러한 때에 철재로 된 괴물 탑의 등장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에펠탑인지 무언지가 파리의 아름답고 절제되어 있는 도시경관을 해친다고 주장했다.  

조금이라도 이와 비슷한 구조물은 여태껏 지어진 적이 없었을 뿐더러 이 탑은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이나 

대(大)피라미드보다 2배나 높았다.

 

그러나 이러한 옛날 기념물과는 달리 에펠의 탑은

적은 노동력과 싼 비용으로 몇 달 만에 세워졌다.

 

 

 

반대론자 중에서도 작가 모파상이 에펠탑을 제일 싫어했다.

모파상은 신문, 잡지, 강연회, 토론등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철괴물 에펠탑을 비난했다.

심지어는 몽소공원에 있는 자기의 동상을 에펠탑에 등을 돌려 세우게 할 정도였다.

어느 날, 모파상의 친구들은 그렇게도 에펠탑을 증오하던 모파상이 바로 에펠탑 1층의 식당 한 구석에서

기분 좋게 식사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친구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모파상이 거의 매일같이 에펠탑 식당에 와서 식사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의아해 하는 친구들에게 모파상은 "뭘 그리 놀라시나? 파리 시내에서 에펠탑이 안 보이는 유일한 장소는

바로 이곳밖에 없기 때문일세."라고 답변했다.

과연 모파상은 에펠탑을 가장 싫어했을까? 또는 가장 좋아했을까?

 

 

 

미국의 오티스엘리베이터회사에서 설계한 유리 승강기는

이 건축물의 주요특색으로, 에펠 탑을 세계 최고의 관광명소 가운데 하나로 부각시켰다.

에펠 탑은 1930년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이 완공될 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로 자리를 지켰다.

 

 

 

풍력(風力) 등의 하중을 받는 금속 아치와

금속 트러스의 성질에 관한 앞선 지식을 활용해 건설된 이 구조물은

토목공학과 건축설계 분야의 일대 혁명을 예고했으며,

계속된 반발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미학적 가치를 입증했다.

4개의 반원형 아치로 이루어져 있는 탑의 기단은

공학적인 배려와 함께 에펠의 예술감각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에는 곡선을 따라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했다.

 

 

에펠탑에 새겨진 프랑스 시민혁명의 영웅들

Seguin, Lalande, Tresca...

그들의 민중의 피로 이뤄진 자유와 평화의 진가를 아는 사람들이다.

 

 

에펠탑은 1909년 박람회의 사용권이 만료되었을 때,

허물어질 위기에 처했으나 라디오 방송을 위한 안테나로서의 가치 때문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

텔레비전 방송을 위한 증축으로 원래 300m이던 탑 높이가 18.4m 더 높아졌다.

3개의 단 중 가장 높은 단에 서면 64km 이상까지 시야가 미친다.

20세기에 와서 에펠 탑은 파리의 낭만을 상징하게 되었다.  

 

 

 

에펠탑 앞에서 바라본 영화박물관 전경 

 

 

에펠탑 주변에서는

많은 이국인들이 기념품과 길거리 음식을 파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

 

 

 

파리의 어느 곳을 가든지 따라 붙는 에펠탑은 생각하기에 따라 파리의 상징이지만,

더러는 탑 꼭대기에 누군가 감시카메라를 설치해놓고 파리시 전체를 감시하고 통제하려 한다는 괴담이 나올만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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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기고가 조성 씨, 한불교류협회 회장 고영의 씨, 나주시 홍웅민 주사, 박송이 양, 박태후 화백

 

그리고...

 

대한민국 나주의 나!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남의 나라 가면 그 나라가 온통 좋아보인다고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확실하게 좋은 것 한가지가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이 프랑스인이라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인 아닌 사람을 무시하거나 경멸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이 가장 모욕적으로 생각하는 말이 "저런,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말이라고 하는데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복잡한 파리 시내를 두리번 거리다 내가 잘못해서 몇번 부딪히거나 걸려 넘어질뻔한 적이 있는데 그들은 남녀노소 예외없이

"빠흐동 무와" "엑스뀌제 무와"를 연발한다.

우리 같으면 "눈을 폼으로 달고 다녀?" 할 만한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