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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의시인

백석의 시를 읽다

by 호호^.^아줌마 2011. 8. 17.

 

백석(1912~1995)

 

가즈랑집


승냥이가 새끼를 치는 전에는 쇠메 든 도적이 났다는 가즈랑고개


가즈랑집은 고개 밑의 산(山) 너머 아을서 도야지를 잃는 밤

생을 쫓는 깽제미 소리가 무서웁게 들려오는 집

닭 개 즘생을 못 놓는 멧도야지와 이웃사춘을 지나는 집


예순이 넘은 아들 없는 가즈랑집 할머니는 중같이 정해서

할머니가 마을을 가면 긴 담뱃대에 독하다는

막써레기를 몇 대라도 붙이라고 하며


간밤엔 섬돌 아래 승냥이가 왔었다는 이야기

어느메 산(山)골에선간 곰이 아이를 본다는 이야기


나는 돌나물김치에 백설기를 먹으며

옛말의 구신집에 있는 듯이  가즈랑집 할머니

내가 날 때 죽은 누이도 날 때

무명필에 이름을 써서 백지 달어서 구신간시렁의 당즈깨에 넣어

대감님께 수영을 들였다는 가즈랑집 할머니

 

언제나 병을 앓을 때면

신장님 단련이라고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

구신의 딸이라고 생각하면 슬퍼졌다


토끼도 살이 오른다는 때 아르대즘퍼리에서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산(山)나물을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를 따르며

나는 벌써 달디단 물구지우림 둥굴네우림을 생각하고

아직 멀은 도토리묵 도토리범벅까지도 그리워한다


뒤울안 살구나무 아래서 광살구를 찾다가

살구벼락을 맞고 울다가 웃는 나를 보고

미꾸멍에 털이 몇 자나 났나 보자고 한 것은 가즈랑집 할머니다

 

찰복숭아를 먹다가 씨를 삼키고는 죽는 것만 같어

하루종일 놀지도 못하고 밥도 안 먹은 것도

가즈랑집에 마을을 가서

당세 먹은 강아지같이 좋아라고 집오래를 설레다가였다



 가즈랑집 : '가즈랑'은 고개 이름. '가즈랑집'은 할머니의 택호를 뜻함.

 쇠메 : 쇠로된 메, 묵직한 쇠토막에 구멍을 뚫고 자루를 박음.

 깽제미 : 꽹과리

 막써레기 : 거칠게 썬 엽연초.

 섬돌 : 토방돌.

 구신집 : 귀신이 있는 집. 무당집.

 구신간시렁 : 걸립(乞粒) 귀신을 모셔놓은 시렁. 집집마다 대청 도리 위 한 구석에 조그마한 널빤지로 선반을 매고 위하였음.

 당즈깨 : 뚜껑이 있는 바구니로 '당세기'라고도 함.

 수영 : 수양(收養). 데려다 기른 딸이나 아들.

 신장님 단련 : 귀신에게 받는다는 시달림.

 아르대즘퍼리 : '아래쪽에 있는 진창으로 된 펄' 이라는 평안도식 지명.

 제비꼬리 : 식용 산나물의 한 가지.

 마타리 : 마타리과의 다년초. 어린잎은 식용으로 쓰임.

 쇠조지 : 식용 산나물의 한 가지.

 가지취 : 참치나물. 산나물의 한 가지.

 고비 : 식용 산나물의 한 종류.

 물구지우림 : 물구지(무릇)의 알뿌리를 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낸 것.

 둥굴레우림 : 둥굴레풀의 뿌리를 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낸 것을 계속해서 삶은 것.

 광살구 : 너무 익어 저절로 떨어지게 된 살구

 당세 : 당수. 곡식가루에 술을 쳐서 미음처럼 쑨 음식.

 집오래 : 집의 울 안팎.

 

◇ 보성만 갯벌


여우난골족(族)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적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려(承女) 아들 승(承)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洪)동이

배나무접을 잘 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엄매 사춘누

사춘 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뽂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 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 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 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

닭이 몇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 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

틈으로 장지 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마가리 : 오막살이.

* 고조곤히 : 고요히, 소리없이.



늙은 갈대의 독백


해가 진다

갈새는 얼마 아니하야 잠이 든다

물닭도 쉬이 어느 낯설은 논드렁에서 돌아온다

바람이 마을을 오면 그때 우리는 섧게 늙음의 이야기를 편다


보름달이면

갈거이와 함께 이 언덕에서 달보기를 한다

강물과 같이 세월의 노래를 부른다

새우들이 마른 잎새에 올라 앉느 이 때가 나는 좋다


어느 처녀가 내 잎을 따 갈부던 결었노

어느 동자가 내 잎닢 따 갈나발을 불었노

어느 기러기 내 순한 대를 입에다 물고 갔노

아, 어느 태공망이 내 젊음을 낚아 갔노


이 몸의 매딥매딥

잃어진 사랑의 허물 자국

별 많은 어느 밤 강을 날여간 강다릿배의 갈대 피리

비오는 어느 아침 나룻배 나린 길손의 갈대 지팽이

모두 내 사랑이었다


해오라비조는 곁에서

물뱀의 새끼를 업고 나는 꿈을 꾸었다

ㅡ 벼름질로 돌아오는 낫이 나를 다리려 왔다

   달구지 타고 산골로 삿자리의 벼슬을 갔다


갈거이 : 옆으로 기어가는 게. 정주에서는 가을에 나오는 게를 말하며 봄에는 '칠게'라고 한다. 둘다 바다 게로 갈게는 등껍질이 아주 매끈매끈한 게로 칠게 보다는 크다.

갈부던: 갈잎으로 엮어 만든 장신구, 갈잎 세 개로 서로 엮어 가운데는 빈 공간으로 된 두툼한 갈잎 덩어리. 또는 그렇게 복잡하고 얼기설기한 정경.

입닢 : 대롱이처럼 구멍이 있는 줄기닢.

태공망 : 중국 주 나라의 재상인 태공망이 낚시질을 즐겼다는 데서 '낚시질을 좋아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벼름질 : 무디어진 쇠붙이 연장을 불에 달구에 두들겨 날카롭게 하는 행위.주로 낫과 같은  날카로운 연장을 만드는 데 벼름질이 많이 쓰임.

산글 : 산골.

 

◇ 순천 와온마을

 


고독(孤獨) 


나는 고독과 나란히 걸어간다

휘파람 호이호이 불며

교외(郊外)로 풀밭길의 이슬을 찬다


문득 옛일이 생각키움은 ―

그 시절이 조아졌음이라

뒷산 솔밭 속의 늙은 무덤 하나

밤마다 우리를 맞아 주었지만 어떠냐!


그때 우리는 단 한 번도

무덤 속에 무엇이 묻혔는 가를 알려고 해 본 적도 느껴 본 적도 없었다

떡갈나무 숲에서 부엉이가 울어도 겁나지 않었다

 

그 무렵 나는 인생의 제1과(第一課)를 즐겁고 행복한 것으로 배웠다

나는 고독과 나란히 걸어간다

하늘 높이 단장(短杖) 홰홰 내두르며

교외(郊外) 풀밭길의 이슬을 찬다


그날밤

성좌(星座)도 곱거니와 개고리 소리 유난유난 하였다

우리는 아무런 경계도 필요없이 금(金)모래 구르는 청류수(淸流水)에 몸을 담갔다

별안간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울부짖고 번개불이 어둠을 채질했다

다음 순간 나는 내가 몸에 피를 흘리며 발악했던 것을 깨달었도

내 주위에서 모든 것이 떠나 갔음을 알았다

 

그때 나는 인생의 제2과(第二課)를 슬픔과 고적(孤寂)과 애수(哀愁)를 배웠나니

나는 고독과 나란히 걸어간다

깃폭인양 옷자락 펄펄 날리며

교외 풀밭길의 이슬을 찬다


낙사랑(絡絲娘)의 잣는 실 가늘게 가늘게 풀린다

무엇이 나를 적막(寂寞)의 바다 한가운데로 떠박지른다

나는 속절없이 부서진 배(船) 쪼각인가?


나는 대고 밀린다

적막(寂寞)의 바다 그 끝으로

나는 바닷가 사장(沙場)으로 밀려 밀려 나가는 조개 껍질인가?

오! 하늘가에 홀로 팔장끼고 우―뚝 선 저―거무리는 그림자여…….



집게네 네형제


어느 바다가

물웅덩이에

깊지도 얕지도 않은

물웅덩이에

집게 네 형제가

살고 있었네


막내 동생 하나를

내어놓은

집게네 세 형제

그 누구나

집게로 태어난 것

부끄러웠네


남들 같이

굳은 껍질쓰고

남들 같이

고운 껍질 쓰고

뽐내며 사는 것이

부러웠네


그래서

맏형은

굳고 굳은

강달소라 껍질 쓰고

강달소라 꼴을 하고

강달소라 짓을 했네


그래서

둘째 동생은

곱고 고운

배꼽조개 껍질 쓰고

배꼽조개 꼴을 하고

배꼽조개 짓을 했네


그래서

셋째 동생은

곱고도 굳은

우렁이 껍질 쓰고

우렁이 꼴을 하고

우렁이 짓을 했네


그러나

막내동생은

아무것도 아니 쓰고

아무 꼴도 아니 하고

아무 짓도 아니 하고

집게로 태어난 것

부끄러워 아니 했네


그런데

어느 하루

밀물이 많이 밀어

물웅덩이 밀물에

잡겨버렸네


이때에 그만이야

강달소라 먹고 사는

이빨 센 오뎅이가

밀물 다라

떠들어 와

강달소라 보더니만

우두둑 우두둑

깨물었네


강달소라 껍질 쓰고

강달소라 꼴을 하고

강달소라 짓을 하던

맏형 집게는

이렇게 죽고 말았네


그런데

어느 하루

난데없는 낚시질꾼

주춤주춤 오더니

물웅더이 기웃했네


이때에 그만이야

망둥이 미끼하는

배꼽조개 보더니만

낚시질꾼

얼른 주워

돌에 놓고 돌로 쳐서

오지끈 오지끈

부서졌네


배꼽조개 껍질 쓰고

배꼽조개 꼴을 하고

배꼽조개 짓을 하던

둘째 동생 집게는

이렇게 죽고 말았네


그런데

어느 하루

부리 굳은 황새가

진창 묻은 발 씻으러

물웅덩이 찾아왔네


이때에 그만이야

황새가 좋아하는

우렁이 하나

기어가자

황새는 굳은 부리

우렁이 등에 쿡 박고

오싹 바싹

쪼박냈네


우렁이 껍질 쓰고

우렁이 꼴을 하고

우렁이 짓을 하던

셋째 동생 집게는

이렇게 죽고 말았네


그러나

막내동생

아무것도 아니 쓰고

아무 꼴도 아니 하고

아무 짓도 아니 해서

오뎅이가 떠와도

겁 안 나고

낚시질꾼 기웃해도

겁 안 나고

항새가 찾아와도

겁 안 났네


집게로 태어난 것

부끄러워 아니하는

막내동생 집게는

평안하게 잘살았네

 

 

수박씨, 호박씨


어진 사람이 많은 나라에 와서

어진 사람의 짓을 어진 사람의 마음을 배워서

수박씨 닦은 것을 호박씨 닦은 것을 입으로 앞니빨로 밝는다

                

수박씨 호박씨 입에 넣는 마음은

참으로 철없고 어리석고 게으른 마음이나

이것은 또 참으로 밝고 그윽하고 깊고 무거운 마음이라

이 마음 안에 아득하니, 오랜 세월이 아득하니, 오랜 지혜가

또 아득하니 오랜 인정(人精)이 깃들인 것이다

태산(泰山)의 구름도 황하(黃河)의 물도 옛임금의 땅과 나무

의 덕도 이 마음 안에 아득하니 뵈이는 것이다

                

이 작고 가벼웁고 갤족한 희고 까만 씨가

조용하니 또 도고하니 손에서 입으로 입에서 손으로 오르나리는 때

벌에 우는 새소리도 듣고 싶고, 거문고도 한 곡조 뜯고 싶고,

한 오천(五千)말 남기고 함곡관(函谷關)도 넘어가고 싶고

기쁨이 마음에 뜨는 때는 희고 까만 씨를 앞니로 까서 잔나비가 되고

근심이 마음에 앉는 때는 희고 까만 씨를 혀끝에 물어 까막까치가 되고

               

어진 사람이 많은 나라에서는

오두미(五斗米)를 버리고 버드나무 아래로 돌아온 사람도

그 녚차개에 수박씨 닦은 것은 호박씨 닦은 것은 있었을 것이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베개하고 누었던 사람도

그 머리맡에 수박씨 닦은 것은 호박씨 닦은 것은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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