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주사람들

나주반 장인 김춘식

by 호호^.^아줌마 2011. 10. 24.

 

나주반 예찬

 

소반小盤 '자그마한 밥상'을 뜻하는 말로, 과 상을 뚜렷이 구분하지 않고 예부터 소반이라 불렀다. 통영반, 해주반, 나주반을 삼대 소반으로 쳤으며, 그중에서도 나주반을 제일이라 했다.

 

나주반 장인 춘식 선생을 만나기 전까지는 '소반 하면 나주반'이라는 명료한 말에 담긴 참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느끼지도 못했다. 나주반을 보고서야 알았다.

 

나주반은 오로지 나무의 뼈대만으로 광휘光輝를 뿜어냈다. 별다른 무늬나 장식 없이 질감과 형태만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백자처럼, 절제된 기교로 아취雅趣를 내보이고 있었다. 결이 고운 사람에게 끌리듯 나주반에 매료되었다. 당연하지 아니한가. 품격이 있는 물건은 존중해야 하는 법이다.

 

나주반을 탐하다

 

"61년도에 나주반을 만들려고 보니까 자료가 없어. 수소문하고 박물관에도 가 봤지만 나주반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었어요. 선생들도 나주반의 형식적인 것만 알고 있었지 전통 나주반이 죽어버린 지 오래됐더라고요." 김춘식 장인을 나주반의 계승자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는 계승자가 아니었다. 그는 형태가 소멸해 버린 나주반의 자취를 집요하게 추적해 나주반을 부활시켰다.

 

"당시 나주반을 만들던 사람들은 대부분 상 공장에 들어가서 직장 생활을 한 거야.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상 하나 만드는 데 얼마씩 주는 구조여서 대량생산을 해야 돈벌이가 되는 상황이더군요. 그곳에는 기능인들만 있었어요." 선생이 스승들에게 배운 것은 대패 등의 연장 다루는 방법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그가 스스로 찾아낸 것들이었다.

 

"61년도에 서울에서 한 자산가가 나주반을 사러 내려왔어요. 그런데 나주반을 살 수가 없는 거라. 이 분이 나한테 찾아왔어요. 그때부터 나주반에 상당히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나주반의 원형을 찾으려고, 헌 상을 잘 고친다는 소문을 내가 냈어요. 그래야 귀한 상이 나한테 올 것 같아서." 소반을 만들어서 팔면 수입이 상당해서 소반 만드는 일을 시작했던 선생은 이때부터 나주반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그의 집념은 몇 년이 지나면서 슬슬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옛말에 '닭이 천 마리면 봉도 들었고 학도 들었다.'라는 말이 있어요. 드물게 공부할 수 있는 자료가 나오는 거예요." 백 년이 더 된 종가의 귀한 상을 만질 수 있게 되기만을 기다리던 날들이었다.  

 

 

"나한테 걸렸다 하면 새 상이 되는 거야. 다른 사람은 쇠못을 두들겨서 고쳐 주는데 나는 제대로 복원을 해 줬던 거지." 선생은 활달한 손동작을 하며 헌 상을 고치던 일을 회상했다. 영산포의 시장통에 '광주상집'이라는 상호를 내걸고 '막상 공장'을 하던 시절이었다. 선생은 낮에는 막상 공장 그는 이런 상을 '장따래기'라고 불렀다을 해서 돈을 벌었고, 밤에는 헌 상을 고치면서 나주반의 원형에 다가가고 있었다. "아교나 민어 풀은 한도가 있어서 오래되면 접착 기능이 없어져요. 그걸 두들기면 저절로 해체가 돼요. 그걸 해체를 해서 제대로 복원을 해줘요. 때를 다 긁어내고 칠을 새로 하면 새 상 부럽지 않게 됐죠." 선생의 말에 따르면, 좋은 나무로 만들어진 상은 관리만 잘 한다면 대를 물리면서 써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선생의 자재 창고에는 최소한 십 년 묵은 나무들이 쌓여 있다. 그는 이것을 '나무의 진을 뺀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전통 공예는 나무의 진을 빼야 해요. 사람도 성질 안 죽이면 일 나지 않아? 살인도 나고. 나무가 성질이 안 죽으면 변형이 생겨요. 나무를 베어다가 자연 건조를 해야 이런 것들을 막을 수 있어요." 이렇게 십 년 넘게 성질을 죽인 나무로 나주반을 만든 후 옻칠을 하면 하나의 소반이 완성된다. 이 옻이라는 귀한 재료는 그 공정을 '생칠生漆'이라고 하기도 한다. "옻칠은 한 번 하면 변화가 많이 와요.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요. 수백 년 이상 된 목기를 보면 대추색이 돼요. 생칠을 하게 되면 십 년은 돼야 칠꽃을 봐요." 한 그루의 나무의 씨앗이 땅에 뿌려져서 자라고 성질을 죽이는 과정을 거쳐 칠꽃이 피는 것까지 보는 데에는 사람이 나서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해주반이나 통영반처럼 화려하지 않아. 복잡하지가 않아요." 나주반의 매력에 대해 묻자 선생은 이렇게 답했다. 자개를 붙인 통영반에는 빛이 화려하게 머물렀고, 조각술이 화려한 해주반은 웅장한 느낌이 들었다. 나주반에서 무엇보다 감탄스러웠던 것은 절묘한 비례의 아름다움이었다. 황금 비율의 실젯값을 측정해 보지는 않았지만, 품에 품고 싶은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상판을 둘러싸고 있는 운각雲閣의 적절한 굴곡과 그 아래로 뻗어내린 미묘하게 가늘어지는 다리, 그리고 다리를 감싸 안은 족대는 서로를 견제하며 각각의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선생은 작업장에 걸린 수많은 족대와 가락지, 운각 등의 모형을 형형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내 일생이 저기 다 있어. 남이 보면 밥 한 끼 못해 먹을 땔감인데, 저기가 내 오십 년이야."

 

 

제작 과정

 

개탕 치다

 

논 사이에 물길을 내는 것을 개탕이라고 한 것에서 온 말이다. 변죽의 안쪽에 골을 내는 도구인 개탕으로 골을 파는 것을 '개탕 치다'라고 한다.

 

변죽 두르다

 

상판에 변죽을 끼우는 것을 이른다. 쥐 이빨을 닮은 부드러운 톱으로 변죽을 잘라야 한다. 하나의 천판에 총 8개의 변죽을 두르게 된다.

 

운각 두르다

 

하나의 상에는 4개의 운각이 필요하다. 목재에 운각을 그려서 깎음칼깎는 칼로 운각을 깎고 물을 촉촉하게 축인 뒤, 운각의 속을단면이 이것보다 폭이 좁고 길게 모양으로 판 후 천판상판과 변죽에 운각을 휘어 붙이는 과정을 말한다.

 

 

제작 도구

 

타랭개 톱

 

타랭개가 달려 있는 톱으로, 목재를 자를 때 쓴다.

 

홀테

 

상판의 귀를 둥글게 자를 때 사용하는 톱이다. 양 모서리를 양손으로 쥐고 상판의 귀를 둥글게 만든다.

 

개탕

 

상판에 끼울 변죽의 골을 팔 때 쓰는 도구다. 개탕으로 변죽에 골을 파는 것을 '개탕 친다'라고 한다.

 

1 상판

2 변죽

3

4 운각

5 가락지

6 다리

7 족대

 

나주반의 종류

 

 

 

정화수 상

 

소원을 빌거나 치성을 드릴 때 썼던 상이다.

 

반월반半月盤

 

상 모양이 반달 같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대궐에서 특별한 행사 때 쓰였던 것으로 궐반闕盤 혹은 별반別盤이라고도 한다.

 

일인반一人盤

 

한 사람을 위한 음식을 차릴 때에 사용하는 상으로, 단반單盤이라고도 한다. 양반층일수록 남녀유별과 장유유서의 세칙을 따르기 위하여 일인반으로 음식을 대접하였다. 양반가의 남자아이는 7살 때부터 일인반을 받았다.

 

호족반 다리를 한 십이각반

 

다리 모양으로 분류를 하면 호랑이 다리 모양이라고 해서 호족반虎足盤이라고 하고, 천판상판과 변죽을 기준으로 하면 십이각반이라고 할 수 있다.

 

구족반

 

호족虎足과 구족狗足은 무속 신앙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호랑이를 산신의 사자로, 개를 가문의 호신護身으로 상징하였으므로 소반의 다리를 호족형호랑이 다리 모양 또는 구족형개 다리 모양으로 만들어 애용하였다.

 

일주반一柱盤

 

하나의 기둥으로 반을 받치고 있어 일명 단각반單脚盤이라고도 한다. 상판의 형태를 원형이나 연잎 형태를 따서 조각했으며, 수려한 기둥을 받쳐 주는 사족四足에도 우아한 조각 장식을 한다. 소형이어서 일인용 주안상이나 약상으로 사용한다.

 

 

소반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소반은 천판상판과 변죽과 하장운각, 가락지, 다리, 족대으로 이루어지는데 만드는 지역인 나주와 통영, 해주에 따라 모양과 제작 방식에 차이가 있다. 통영반은 통영의 특산물인 자개를, 해주반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화려한 조각을 가미했다면 나주반은 장식이나 화려한 조각이 없이 간결한 선으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다.

 

상판을 깎아 양면을 매끄럽게 다듬은 후, 골을 낸 변죽을 상판에 끼우면 천판이 완성된다. 다른 반과는 달리 상판 가장자리에 촉을 내어 변죽을 둘러 접합하기 때문에 상판이 휘거나 갈라지는 것을 방지한다.

 

다음에는 천판의 아랫부분에 운각을 만들어 붙이고 다리를 제작해 네 귀퉁이에 박는다. 그 다음에 족대를 만들어 두 다리 사이를 연결해 주고, 가락지를 만들어 운각의 아랫부분의 다리 사이에 끼운다.

 

나주반이지만 호족반 같은 경우처럼, 형태에 따라 가락지가 없는 소반도 있다. 소반의 뼈대가 완성된 후에는 각각의 부분을 풀로 붙이고, 접합 부분이나 이음새에는 반드시 대나무 못을 쳐서 견고하게 한다.

 

이후에는 옻칠을 해 견고함과 심미성을 더한다. 옻칠한 소반은 해가 갈수록 점점 붉게 변하는데, 이것을 '칠꽃이 핀다'라고 한다. 칠꽃이 피는 데는 1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국립국어원 소식지 쉼표,마침표>에서

나주반 장인 김춘식

1936년 나주에서 태어나 20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50년간 나주반을 만들고 있다. 1986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14호 나주 소반장羅州 小盤匠으로 지정되었으며, 우리나라에 한 명뿐인 나주 소반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