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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이야기

한국전쟁과 집단학살 쓴 김기진 부산일보 탐사보도팀 팀장

by 호호^.^아줌마 2012. 11. 8.

 

《한국전쟁과 집단학살》 쓴  김기진 부산일보 탐사보도팀 팀장

 

출처 : 동글방구네 은자, 검돌이 그리고 댄브

http://blog.naver.com/kadmon/120021734466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스위스 국제적십자본부 소장 기밀자료 발굴

출판전문가들, ‘사료 발굴․저술 노력만으로도 평가할 만’

 

◇ 2000년부터 기사를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부산 태종대 인근에 있는 한 집단암매장지를 우연히 알게 되면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노인으로부터 300명가량이 묻혔다는 증언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누가 왜 죽였는지 파악하는데 거의 8개월이 걸렸습니다. 물론 회사 업무와는 별개로 진행했습니다.

취재결과 그들은 부산형무소에서 끌려온 재소자들이었고 이미 죽은 상태에서 그곳으로 실려와 암매장 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국민보도연맹원이란 증언을 토대로 취재가 시작됐고 결국 오늘에 이르게 됐습니다.  이렇게 장기간 이 일에 매달린 것은 도무지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해자 대부분이 사망했고 국내에 남아 있는 기록도 없었습니다. 답이야 뻔히 정해져 있지만 그렇다고 주장만으론 진상규명이라 할 수 없지 않습니까? 2002년 ‘끝나지 않은 전쟁- 국민보도연맹’은 학살현장과 증언을 담았고 이번 책은 ‘문서로 된 증거’입니다. 

 

◇ 다른 지역보다 특히 부산․경남지역에서 이러한 연구와 조사가 활발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부산과 경남에서 연구가 상대적으로 활발하다고는 하지만 이는 다른 지역에서 관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지, 특별한 이유가 있어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부산경남에서 이 문제 관심을 갖고 꾸준히 일하는 사람도 따져보면 몇 사람 되지 않습니다.

 ‘운동’차원에서 접근했다가 시들해 버린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물론 부산경남지역이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 점령되지 않았던 지역이라 보도연맹 학살에서 큰 피해가 났기 때문에 이 지역이 부각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부산형무소에서도 대규모 학살이 저질러졌고.

 

◇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과 스위스 국제적십자본부에 소장된 문서에 접근하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 미국의 이중성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미군이 저지른 학살사건은 철저히 숨기고 인민군이 저지른 사건은 부풀려 부각시키는 이중적인 태도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싶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 내면을 들여다보면 미국이 결코 ‘대국’이 될 수 없는 이유가 함축돼 있습니다.모조리 기밀로 묶어 둬 접근이 안 됩니다. 한국정부의 학살도 결국 군통수권을 갖고 있던 자신의 책임이니 이 역시 숨기고 있습니다.

결국 미국정부가 기밀로 묶다 실수로 남긴 파편들을 주워 모아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내야 하는 고달픈 작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차장 경비원, 식당 아줌마들 다 알고, 일본 연구자들에겐 자문을 해줄 수 있을 정도로 NARA에 살다시피 했는데도 결과는 이렇게 초라합니다.적십자도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한국전쟁과 관련한 기록을 반세기가 넘도록 기밀로 묶어두었으니까요. 여러 차례 비밀해제를 요구했는데, 그래도 미국보다는 좀 나아 조사기간 막판에 비밀해제는 해 주었습니다.

 

◇ 잔혹성이나 비극성의 정도가 히틀러(나치)의 그것에 비해 작지 않은 것 같습니다. 《끝나지 않은 전쟁-국민보도연맹》을 작업할 때에 비해 이번에 조사하는 과정에서 또 다르게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 우선, 히틀러의 만행과 한국정부의 학살만행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자국민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비무장 민간인, 양민이죠. 일각에선 좌익사상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서 양민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양민과 민간인으로 구분 짓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입니다.

군이 자국민에게 총부리를 돌린 것은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일입니다. 피해규모도 ‘최소’ 수 만 명 아닙니까. 역사는 아무리 숨기려 해도 결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역대 군사정권이 학살과 관련한 모든 기록을 불태워버렸지만 그렇다고 만행의 역사까지 소멸된 것은 아니니까요. 비록 다른 나라 문서 창고에서 나왔지만, 이렇게 문서로 된 증거가 나오지 않습니까.  

한 민족인데도 단지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어떻게 이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국제적십자 대표단원 비에리는 “한국정부가 페닉상태에 빠져있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때와 별반 달라진 것도 없지만.   

 

◇ 전쟁 중이었기는 하지만 또 다른 학살자인 미군이 우려(?)할 정도로 그 대응방식이 너무 극단적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러한 학살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제노사이드》를 낸 최호근 씨 설명은 유목문화권에선 사람들의 목을 자르진 않는다고 합니다.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오히려 농경문화권이 훨씬 잔인하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이건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얘기고, 한국전쟁은 이 설명만으론 이해하기 힘듭니다. 

결국 당시 한국사회가 그만큼 야만적이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공산주의란 이름 앞에선 ‘이성’이란 단어는 존재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승만은 모든 공산주의자들은 죽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했습니다. 공산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적개심은 이승만 정권이 정권 유지차원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적대세력은 ‘공산주의자’로 몰아버리면 손쉽게 제거할 수 있었으니까요. 보도연맹에 공산주의 사상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사람들이 대거 가입 된데도 이런 이유가 상당히 작용했습니다.  한국정부는 공산주의자들의 목을 잘라 대로변에 전시한 것은 공산주의자에 대한 강력한 경고였을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은 이렇게 죽여야 한다는 일종의 본보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중은 이를 통해 살인에 대해 죄의식을 갖지 않게 됐고 공산주의자는 누구든지 죽여도 된다는 일종의 세뇌교육을 받은 겁니다. 학살의 잔혹성과 조국에 대한 충성심은 서로 비례한다는 야만의 등식이 성립된 것이지요  

 

◇ 우리정부의 공식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 책을 보셔서 알겠지만, 그동안 국내의 거의 모든 시설을 다 찾아다녔습니다. 국가기록원, 국회도서관, 경찰서 문서고, 하다못해 과거 관보까지 모조리 뒤졌습니다. 그 결과 공식기록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다만 군은 접근은 허용하지 않아 확인을 하지 못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국가정보원이나 국방부, 경찰 등이 과거사위원회를 구성해 자체 가동하는  것에 대해 반대합니다. 오히려 남아 있을지 모르는 기록들을 ‘정리’해 버릴 기회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들 기관의 자체 과거사위가 가동된 뒤 이번에 창립된 과거사위가 다시 조사하러 갔을 때 과연 새로운 기록이 나오겠습니까? 

 

◇ 보도연맹원 예비검속과 학살에 대한 정보보고서, 형무소 집단학살 계획에 대한 비망록, 포항 여남동 피란민 함포사격 작전일지, 네이팜탄 사용에 관한 CIA 보고서 등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한국전쟁과 집단학살》에서 소개하지 않은 자료 중 의미 있는 문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 많은 문서들이 있습니다. 특히 학살의 배경과 관련한 문서들이 있습니다. 책의 분량이 제한돼 모두 수록할 수 없었습니다. 중요한 사건에 대한 기록이 몇몇 있지만 문서 한 장으론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라 보완조사가 필요합니다.

 

◇ 이번 조사를 통해 관련자료 중 몇 퍼센트나 입수를 했다고 보십니까? 앞으로 더 발굴해야 할 문서가 있다면요.

 

 - 이번 조사는 정부차원에서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또 제주4.3이 조사를 해 보고서를 냈지만 학살일반에 대한 자료조사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특히 저는 형무소 집단학살과 보도연맹 학살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다른 사건들은 자료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단편적인 기록들입니다.

이번 작업은 어린아이가 첫발을 내디딘 것에 불과합니다. 몇 퍼센트라 말할 정도도 못됩니다. 노근리 사건은 정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미국언론이 보도하자 그동안 침묵하던 한국의 메이저 언론도 덩달아 날뛰면서 일이 커진 것이지, 그보다 심각한 사건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당장 포항 여남동 피란민 함포사격 사건만 해도 해당 부대 작전일지까지 나오지 않았습니까. 피해규모도 훨씬 크고. 노근리 사건은 작전일지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 이번 문서조사에서 집단학살 이외에 부수적으로 얻은 성과가 있다면 소개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울러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과 스위스 국제적십자본부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소개해주셨으면 합니다.

 

 - 미국이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분명히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한 미군은 보고서에서 이승만을 son of a bitch라고 표현했습니다.

 상급기관으로 올라가는 공문서에다 한 나라의 대통령에 대해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다는 게 놀랍지 않습니까? 어떤 미군은 한국에 대한 종합보고서에서 “한국인은 풀과 흙으로 집을 짓는데 하루면 끝난다. 주로 감자를 먹고 산다”고 했습니다.    

물론 50년 전 문서를 통해 본 그들의 인식이지만 아직도 그 같은 인식에는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무부에서 40년 넘게 근무했던 한 미국인은 저에게 이런 충고를 했습니다. “동북아에서 중요한 국가는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국이다. 특히 일본을 배제한 한국은 있을 수 없다. 한국이 과거의 뼈아픈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  NARA의 존재이유. 앞서 말했지만, 국내에는 기록이 없습니다.

국내 사학자들, 특히 현대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이 도대체 무슨 자료를 갖고 연구를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NARA에 있으면 여름 방학 때마다 한국 교수 몇 명이 나타나 기록을 들고 갑니다. 찾는 기록들이 평범한 내용이라 찾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NARA에 한번 왔다 가면 3년은 먹고 산다고 합니다. 기록 몇 장이면 소논문 몇 편을 써낼 수 있다는 뜻이죠.   NARA와 국제적십자에는 우리 역사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비록 그들의 눈을 통해 본 한국의 역사지만, 국내에 남아있는 기록이 없으니 대안이 없지요.

 

◇ 이 자료들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2월 1일 출범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위원장 송기인, 이하 과거사위원회)의 진상조사활동에 주요한 기초 자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계신데요, 단지 여기서 그치는 것인지 아니면 나아가 처벌이나 혹은 보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 과거사위 출범에 맞춰 책을 낸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저술지원을 받기 위해 기다리다 보니 이렇게 출판이 늦어졌습니다. 자금 부담이 워낙 큰 작업이라 외부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이번 책은 학살의 진상을 규명하는데 필요한 문서로 된 직접적인 증거입니다.

한국정부가 늘 증언으론 부족하다고 하니 이렇게 문서를 제시하는 것입니다.지금 학살과 관련해서는 처벌과 개별적인 보상은 계획돼 있지 않습니다.

저 역시 반대합니다. 처벌은 하려 해도 거의 모두 사망했고 그렇다고 하위단위 책임자까지 처벌할 수는 없는 문제이니까요. 또 진상규명에 돈 문제를 개입시켜 일을 그르쳐선 안 된다는 생각이고, 보도연맹 학살처럼 전국적으로 자행된 대규모 학살은 구체적인 피해자를 입증하기가 불가능합니다. 명부가 없으니까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책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과거사위 활동이 앞으로 길면 6년인데 위원회 조직도 문제가 있고 또 학살문제만 다루는 것도 아니라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까마득히 남았습니다. 

 

◇ 요즘처럼 팔릴만한 책을 선호하는 출판계 분위기에서 조사한 내용을 책으로 출판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책을 출판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해주셨으면 합니다.

 

- 지난 얘기인데, 출판사 몇 곳과 접촉했습니다. 그런데 푸른역사에서 이메일을 보낸 지 몇 시간 되지 않아 바로 연락이 왔어요. 대형출판사에선 회의를 열어가며 몇 주가 지난 뒤 출판의사를 밝혀왔는데 푸른역사는 곧바로 수락했습니다.팔리지 않을 책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또 원고도 보지 않은 상황에서 메일 한통에 흔쾌히 답해 주었습니다.

저자의 입장에선 대형출판사와 계약하면 많은 이점이 있지만 그보다는 제 뜻을 바로 이해해 주는 푸른역사가 고마웠습니다. 똑 부러지는 성격의 사장님도 마음에 들었고.

 

◇ 출판이 제노사이드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전 역사학자가 아닙니다. 대학전공도 행정학이고. 매달리다보니 여기까지 왔을 뿐입니다. 그래서 책도 ‘자료집’으로 냈습니다. 화려한 형용사를 동원해 가며 책 두께를 늘여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능력도 안 되고.학살문제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 게 기자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후속연구자들에게 연구의 밑거름이 될 수 있길 기대합니다. 해석은 학자들에게 맡깁니다.

 

 

한국전쟁과 집단학살

 

[ 책소개 ]

이 책에 수록된 모든 기록은 미국정부와 국제기구가 생산한 소위 '공식기록'이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과 육군역사연구소, 해군역사관, 그리고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국제적십자본부 등에 수장돼 있던 문서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사상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다.

 

기록은 군 정보(혹은 첩보)보고서와 작전일지가 가장 많고 국무부와 CIA 기록도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이 책에 실린 기록은 대부분이 미국이 만든 것이다. 따라서 그 속엔 한국에 대한 미국의 인식도 그대로 담겨 있어 주목된다.

 

[ 목차 ]

머리말

서설

 

제1장 한국정부에 의한 학살의 진상

국민보도연맹원 집단학살

국민보도연맹 조직

보도연맹원 대학살

 

형무소 집단학살

에머리치 비망록

홍제리 집단처형

집단학살에 대한 국제적 비난

국제적십자 활동

부역자 체포 현황

감형

 

북한지역에서 발생한 학살

공산주의자 사냥

사리원 학살

신막 학살

평양 포로수용소 불법처형

 

보복학살

 

 

기타 학살 사건

용유.대부동 전쟁포로 즉결처형

용담리.산음리 성폭행

오대산 하진부리 공산주의자 집단처형

 

학살 책임

이승만의 극단적 반공주의

"먼저 죽일 뿐이다"

미국의 이중성

 

제2장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네이팜탄 폭격

포항 여남동 피란민 함포사격

클라우스 상병 포로 사살

 

제3장 인민군에 의한 학살

개요

주요 사건

문제점

 

제4장 학살의 증거 - 미국 기밀문서

민간인 학살 사건 자료현황 및 문제점

미국 기밀문서 자료

 

주요 군사용어

찾아보기

 

 

[ 출판사 서평 ]

 

▶ 기획 의도 및 특징

 

1. 100명의 증언보다 한 장의 ‘문서’가 절실했다.

저자는 2002년 5월 《끝나지 않은 전쟁-국민보도연맹》이란 단행본을 낸 적이 있다. 이 책은 그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전쟁 당시 한국정부에 의해 저질러진 국민보도연맹 학살의 진상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부산ㆍ경남지역 학살현장 26곳을 조사하고 직접 유골을 발굴했으며 가해자와 생존자를 찾아내 증언을 수집했다.

이 책은 보도연맹 학살에 대한 최초의 종합보고서로, 문화관광부가 선정하는 ‘올해의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고 상당수 논문과 단행본에 인용되고 있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반쪽’에 불과했다.

학살을 입증할, 특히 한국정부의 학살책임을 증명할 ‘문서’로 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당시 국내에 있는 모든 정부기록보관시설을 찾아다니며 형무소 재소자 명부, 형무소 재소자 인원 일표, 1960년 국회에 접수된 민간인학살 피해신고서 등 상당수 기록을 발굴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학살의 실상과 그 책임을 규명할 기록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기본적으로 남아 있는 기록이 없었고, 군 관련 시설은 접근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행을 결심했다.

 

2. ‘문서’로 된 증거를 제시한다.

저자는 만 1년 동안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등 미국 내 각종 정부기록 보관시설과 스위스 등지를 오가며 민간인 학살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6천 여 장의 기록을 입수할 수 있었고 그중 중요한 것만 간추려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

이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기록’으로만 말하고 있다. 주관이 개입될 수 있는 증언은 철저히 배제했다. 저자의 앞선 책이 ‘증언과 현장’을 담고 있다면 이번 책은 ‘기록’으로만 만들어졌다.

이 책은 기록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다. 영어로 작성된 데다 난해한 군사용어까지 뒤섞여 ‘대중성’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지만, 사건을 입증할 ‘문서로 된 증거’를 제시한다는 근본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원문을 있는 그대로 수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죽고 죽이는 이야기뿐이다. 사진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장면만 담고 있다. 결코 흥미롭지도, 감동스럽지도 않다.

그러나 이 책은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한 매우 중요한 증거자료임에 틀림없다. 아울러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에겐 연구의 토대가 될 것이다.

 

▶ 어떤 기록이 수록돼 있나?

이 책에 실린 모든 기록은 미국정부와 국제기구가 생산한 소위 ‘공식기록’이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과 육군역사연구소, 해군역사관, 그리고 스위스 제네바 있는 국제적십자본부(ICRC) 등에 수장돼 있던 문서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사상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다.

기록은 군 정보(혹은 첩보)보고서와 작전일지가 가장 많고 국무부와 CIA 기록도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이 책에 실린 기록은 대부분이 미국이 만든 것이다. 따라서 그 속엔 한국에 대한 미국의 인식도 그대로 담겨 있어 주목된다. 

 

▶ 어떤 내용인가?

2005년 12월 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출범했다. 위원회가 제대로 가동된다면 한국현대사는 상당부분 새로 쓰여 져야 할 것이다.

위원회가 ‘정리’해야 할 과거사의 중심에 한국전쟁 중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사건이 있다. 그중 핵심은 ‘한국정부’가 저지른 학살 사건. 물론 미군이 저지른 학살사건도 철저히 규명되어야 할 사안이다. 널리 알려진 노근리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 책은 한국정부의 학살행위 뿐만 아니라 미군의 집단학살 행위도 해당부대의 작전일지 등을 통해 직접 고발하고 있다. AP는 노근리 사건을 보도하면서 당시 주변정황에 대한 보고서만 근거했을 뿐 사건을 직접적으로 입증할 해당부대의 작전일지는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엔 포항 여남동 피란민 함포사격사건과 미군의 네이팜탄 폭격 등 미군의 학살행위에 대한 매우 구체적이며 직접적인 증거가 제시돼 있다.

 

저자 김기진

 

지난 2000년부터 한국전쟁 중 한국정부가 저지른 민간인 학살사건을 추적해 왔다. 국민보도연맹 피학살자 유족을 주축으로 '부산ㆍ경남유족회'를 2000년 결성했다.

 

2003년 6월부터 2004년 6월까지 미국 메릴랜드대학에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며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문서 발굴 작업을 벌였다. 민간인 학살 문제와 관련해 강연하고 세미나를 개최했으며 현재 제노사이드학회 회원이다.

 

연구 성과로 2002년 단행본 《끝나지 않은 전쟁-국민보도연맹》을 냈고 2004년 교육인적자원부 국사편찬위원회로부터 용역을 받아 <미국 소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관련 문서 현황> 해제논문을 썼다.

 

부산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 현재 부산일보 탐사보도팀 팀장을 맡고 있다.

한국기자협회에서 시상하는 한국기자상(1997년)ㆍ이달의 기자상(5차례)과 봉생문화상(2002년ㆍ언론부문)ㆍ일경언론상(2005년ㆍ대상) 등을 총 12차례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