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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마을의 가치,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②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마을

by 호호^.^아줌마 2016. 9. 10.

기획…마을의 가치,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②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마을

 

충남 아산시 공세리마을. 공공디자인 공모사업(시골마을 풍경스케치)에 신청해 선정돼 낡은 공공시설물이나 간판을 깨끗이 정비했고, 담장과 벽면에 멋진 그림을 그렸다.

 

 

마을의 유일한 자원 ‘공세리성당’을 마을만들기의 ‘마중물’로 삼다

 

공세리마을협동조합 김미화 실장 “교육문제를 시작으로 마을의 희망 일궈나가”

 

“마을만들기는 운동인가, 사업인가?”

지난 12일 마을만들기 전국네트워크 회원 50여명이 전남 영암군 모정마을에서 쉰 세 번째 대화모임을 갖는 자리에서 한 참석자가 던진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가 실시되고, 각 지역단위로 주민이 주체가 되어 공동체를 회복하는 마을 사업들이 진행돼 오고 있는 가운데 과연 이 사업들은 ‘운동(Movement)’의 의미가 될 것인지, ‘사업(Business)’의 의미가 될 것인지 늘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마을공동체 사업은 부처별 목적에 따라 하향식 시설사업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

행정자치부(마을기업, 정보화마을, 특성화마을, 희망마을), 농림축산식품부(색깔 있는 마을, 신규마을, 농촌체험휴양마을, 농촌공동체회사 설립), 문화체육관광부(문화도시·문화마을 조성, 관광두레, 문전성시프로젝트), 문화재청(문화재 행복마을 가꾸기), 국토교통부(도시재생, 도시활력증진지역 개발사업), 환경부(자연생태 우수마을), 해양수산부(어촌6차산업화·바닷속 체험마을 시범사업), 고용노동부(사회적기업), 산림청(산촌생태마을) 등 20여개에 이른다.

하지만 주민들의 역량이 미진한 상황에서 경쟁적으로 추진되는 사업은 예산이 지원되는 동안에만 ‘반짝’ 성과를 나타냈다가 지원이 끝나면 곧바로 흐지부지 되기 십상이다.

주민 스스로 만들어 가는 마을공동체사업, 그 답은 무엇인지 지난 5월 한국언론진흥재단 대전지사가 전국의 지역신문 기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잘 사는 마을 만들기 전략’ 전문연수에서 찾아본다. 두 번째 마을만들기 현장은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마을이다. / 편집자 주

 

 

아름다운 공세리성당

 

충남 아산군 인주면에 위치한 공세리성당. 울창한 숲과 건장한 가지를 자랑하는 거대한 느티나무들, 고색창연한 유럽식 건물이 언덕 한 가운데 떡 버티고 서 있는 풍경에서 마치 유럽의 한 중세도시를 찾은 듯했다.

 

설립연도는 자료에 따라 엇갈리는 부분이 있지만, 성당입구 안내판에는 1890년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파스키에 신부에 의해 예산 간양골에서 교회가 처음 시작되었으며, 5년 뒤인 1895년 에밀 드비즈 신부가 현재의 자리에 교회를 설립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성당이 들어서기 전 이 일대는 성종 9년(1478)부터 영조 38년(1762)까지 300년 동안 충청도 일대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저장하던 공세 창고지였다.

 

2005년 한국관광공사가 공세리성당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하면서 관광객이 부쩍 늘어났지만 그 곳은 신유박해와 병인박해 때 이 지역에서 순교한 32위의 순교자들을 기리는 통한의 순교성지이기도 하다.

 

이곳은 <태극기 휘날리며>, <사랑과 야망>, <에덴의 동쪽>, <미남이시네요>, <아내가 돌아왔다>, <미워도 다시 한 번>, <그저 바라보다가> 등 70여 편이 넘는 영화와 드라마, CF의 배경이 됐다.

 

성당 내부풍경이 궁금했지만 그 곳은 예배드리는 목적이외에는 구경을 삼가 달라는 안내문을 존중해 잠시 묵상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성당을 돌아보는 길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길을 상징하는 12코스가 이어진다. 순례자들은 그 곳에서 성경을 읽기도 하고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성당 그늘 아래서 마을의 희망 찾기

 

공세리마을은 오랜 역사를 가진 공세리성당을 제외하면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히는 공세리성당이 중심에 위치해 연간 20만 명의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오고 감에도 불구하고 공세리는 그저 지나치는 시골마을이었다.

 

하지만 시골의 작은 마을 공세리가 주민들 손에 의해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마을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머리를 맞댔고 공세리마을협동조합(이사장 한기형)을 결성했다. 공세리마을은 노인부터 아이들까지 함께 어울리며 공감하고 대화가 어우러지는 마을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내세울 만한 관광자원이라고는 성당밖에 없던 공세리마을이 확 달라졌다. 언뜻 보면 관광객을 불러오기 위해 꾸민 것 같지만 마을길 곳곳을 걷다 보면 주민을 위한 변화라는 걸 알 수 있다.

 

마을 사람들 스스로 힘을 모아 ‘공세리 공감마을’ 사업을 펼친 성과다. 공세리마을협동조합 김미화 실장<왼쪽 사진>으로부터 아름다운 공동체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보았다.

 

 

공세리 느티나무도서관

 

 

마을만들기는 배움에서부터

 

공세리 마을만들기의 시작은 교육문제에서 싹이 텄다. 2010년을 전후해 귀농·귀촌을 통해 마을에 정착하게 된 도시인, 엄밀하게 말하면 이 마을 출신으로 도시에 나가 살던 출향민들이 한 명, 두 명 고향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열악한 교육환경에 대해 서로 문제인식을 같이 하게 된 것.

 

이들은 인주학부모협의회를 결성해 학교주면 기업의 매연문제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지역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도서관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학교 스쿨버스의 필요성을 제기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자녀교육문제라면 물불 안 가리는 학부모 특유의 근성으로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 가기 위한 주민들의 모임이 점차 지역문제로 눈을 돌리게 됐다.

 

도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농촌도 아니어서 각종 정책의 사각지대가 된 마을에서 ‘어떻게든 아이들을 제대로 키워야겠다’는 주민들의 뜻이 모아진 것이다.

 

첫 단추는 도서관이었다. 생활밀착형 도서관인 ‘5분 걸음 도서관(아트컨테이너)’ 사업을 신청해 2011년 전국에서 두 번째로 개관하는 행운을 얻었다. 이름을 ‘꿈꾸는 팽나무 도서관’으로 붙였다.

 

이렇게 시작된 마을 사업이 평생학습마을 선정, 공세리마을협동조합 인가 등으로 이어졌다. 마을 어르신들이 한글과 붓글씨를 배울 수 있는 평생학습관을 지었다.

 

또 친환경 농업을 위해 하우스영농사업단을 만들고, 주민들이 수시로 만나 마을 사업을 논의하고 공부할 수 있는 북 카페를 열었다.

 

얼마전에는 충남도 공공디자인 공모사업(시골마을 풍경스케치)에 신청해 선정되기도 했다. 1억6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낡은 공공시설물이나 간판을 깨끗이 정비했고, 담장과 벽면에 멋진 그림을 그렸다. 이 같은 변화 노력 덕분에 공세리 마을 주민이 되겠다고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났고, 관광객도 많아졌다.

 

 

마을기업 북카페 ‘공세리이야기’

 

마을주민 30명이 한 푼 두 푼 자본금을 모아 공세리마을협동조합을 결성했다. 마을에서 아이들이 웃고 노인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조합은 2013년 마을기업으로 선정돼 북카페 ‘공세리이야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평소에는 마을사랑방으로써 영화상영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랑방인 ‘공세리이야기’에서는 자연스레 공세리마을이 이야기의 주제가 돼 대화의 꽃을 피운다.

 

언젠가 주말 인기예능프로인 1박2일에 공세리팥빙수가 소개되면서 요즘은 팥빙수 먹으러 왔다가 마을도 구경하고 공세리성당도 가본다고 하니 맛과 멋을 찾아가는 요즘 여행세태를 제대로 저격한 셈이다.

 

김미화 실장<왼쪽 사진>은 “요즘은 공세리성당보다 공세리마을을 찾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면서 “충청도는 물론이고 수도권부터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찾는다”고 자랑한다.

 

이제 북카페 ‘공세리이야기’는 공세리마을협동조합에서 직접 운영해 지역 주민의 사회적 서비스와 주민 교류 등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는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마을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는 사업으로, 단순한 영리활동을 넘어 지역주민 스스로 삶을 개선해 나가는 공동체증진 사업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영농사업에서 마을장터까지

 

농촌마을이지만 공세리에는 이렇다 할 특별한 농산품이 없다. 조합에서는 공세리성당이라는 자원과 인주공단 입주로 인근에서 생활하는 젊은 세대를 자원으로 꼽았다.

 

이를 위해 공세리성당에서 마을 일요장터를 열고 집집마다 생산한 작은 농산품들을 직거래로 판매할 수 있도록 마련했다. 조합에서 직접 운영하던 장터는 현재는 공세2리 부녀회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

 

또 친환경 토마토영농사업을 시작했다. 연간 두 번 생산할 수 있는 토마토를 재배해 수익금을 내기도 하고 카페 ‘공세리이야기’에서 판매하는 팥빙수에 사용하기도 한다.

 

공세리마을협동조합 김미화 실장은 “막연한 꿈을 안고 귀농을 했지만, 아이들을 키울 수 없는 열악한 교육환경에 뜻을 같이 하는 학부모들이 머리를 맞대면서 공세리마을의 역사는 다시 짜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현재 영농사업과 카페를 운영하고 있지만 더 많은 일자리 창출과 수익성 있는 사업을 통해 안정적인 마을 발전 기반을 갖춰 나가야 하는 시점이다.

 

한 이사장은 “문화와 교육, 복지가 있는 마을로 거듭날 수 있도록 방향을 잡고 조합을 통해 마을을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꿈’ 공방은 공세리성당을 구경하러 왔다가 눌러앉은 이석호 씨가 주인이다.<위 사진> 공직에 있다가 솟대를 만드는 게 좋아 명예퇴직하고 공방 겸 카페를 공세리에 차렸다. 서각가로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공세리마을을 찾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다.

 

마을에서 재배한 콩으로 손두부를 만들어 파는 ‘공세뜰두부집’도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따끈하고 담백한 두부를 집 간장에 찍어 먹는 맛이 환상적이다. 두부가게를 운영하는 안성진·유경숙 씨 부부는 10년간 무상으로 북카페 공간을 내준 주인공이기도 하다.

 

마을공동체로 살아난 공세리마을

 

공세리성당으로 시작된 공세리마을 여행은 좀 특별함이 있다. 마을 골목길을 걷다 보면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다양한 생활시설이 눈길을 끌고, 주민들과 대화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마을도 공세리처럼 만들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공세리마을 한가운데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 이름은 ‘꿈꾸는 팽나무 도서관’. 꿈을 키우며,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라는 어린이 학습의 장이며, 주민들의 쉼터 역할을 한다.

 

마을주민들이 고구마, 감자, 옥수수 등을 삶아 도서관에서 나눠 먹으며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마을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책을 읽는다. 도서관에서는 활발한 정보 교류가 이뤄지기도 하고, 잠시 어린 아기를 맡길 수 있는 공동육아 장소가 되기도 한다.

 

학교를 마친 어린이들이 귀가하면 자연스럽게 들르는 곳이 팽나무 도서관이다. 도서관 바로 맞은편에는 하얀 벽면을 가진 신용협동조합 건물이 있다. 한여름이면 이 벽면이 영화 스크린이 된다. 마을 주민들은 별이 쏟아지는 한여름 밤 삶은 옥수수를 나눠 먹으며 영화를 감상한다.

 

110년 전 이명래 고약

그런데 마을 입구에 벽화 한 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금은 추억 속의 이름이 된 이명래 고약의 본고장이 바로 이 곳 공세리마을이었던 것.

 

우리나라 신약 제1호로 알려진 이명래 고약은 중국을 통해 조선에 들어왔던 프랑스인 드비즈(Devise) 신부가 라틴어로 된 약용식물학 책과 한의학 지식을 응용해 고약 만드는 비법을 창안해냈고, 이 성당을 다니던 신자 이명래에게 그 비법이 전수됐다.

 

처음엔 드비즈 신부의 한국식 이름을 따서 ‘성일론(成一論)고약’으로 불렸다가 이명래가 이 고약에 민간요법을 더해 1906년 ‘이명래고약집’을 개업했다 하니 벌써 110년 전의 일이다.

 

 

100년 전 모습 관광자원으로

 

공세리마을은 100여년 전의 골목길이 그대로 있다. 그 골목길은 모두 벽화가 그려져 있다. 버스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마을 진입로는 승용차도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비좁다.

 

이 길로 버스와 승용차는 물론이고 경운기, 트랙터, 오토바이, 자전거, 손수레, 유모차 등이 통행을 위해 차례를 기다린다. 그러나 누구 하나 다툼이 없다.

 

공세리성당을 찾는 천주교 신자나 관광객들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마을이던 공세리마을은 주민 스스로 마을을 상품화 하는데 성공했다.

 

매주 일요일에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로 직거래 장터를 열어 성당을 찾는 사람들에게 신선하고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을 팔고 있다. 또 한여름에는 직접 재배한 팥을 삶고 떡을 지어 '공세리 팥빙수'를 만들어 팔고, 친환경으로 공동생산한 토마토로 '생 토마토주스'를 만들어 북카페에서 판매해 마을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마을 자체가 아기자기한 간판과 벽화로 단장해 아름답다. 또 이 마을 주민들에게는 특별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80대 어르신들이 한글을 깨쳐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표현해 낸 이야기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마을뿐만 아니라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을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 보다 휄씬 더 많은 자원과 인적자원을 가진 우리 지역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이 자원들을 꿰어내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들어 갈 것인지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공세리마을은 오랜 역사를 가진 공세리성당을 제외하면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히는 공세리성당이 중심에 위치해

연간 20만 명의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오고 감에도 불구하고

공세리는 그저 지나치는 시골마을이었다.